조마루 여인들이 빨래하던 빨래터

▲ 뒷골

머리통엔 뒷골,

조마루에는 뒷골이 있다.

 

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hansan21@naver.com

 

멀미인 원미산의 뒷골이자 조마루의 뒷골이 있다. 골치가 아파 뒷골이 땡기는 그런 골짜기가 아니다. 산골짜기.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마루 마을 뒤 멀미의 골짜기를 가리켜 뒷골이라고 하고, 머리 뒤통수 고랑도 뒷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어째 교묘하지 않는가. 자연을 닮은 머리통이라니... 자연이 숨을 쉬어야 인간에게 살아있는 먹거리를 제공해준다. 하지만 자연이 숨을 쉬지 못하면 결국 인간에게 썩고 병들은 그런 먹거리만 제공해 줄뿐이다. DDT로 범벅된 땅에다 친환경 닭농장을 차렸던 농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몇 십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사람에게 치명적인 독성(毒性)이 살아남아 복수(復讐)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독성은 사람이 뿌려놓은 것이라 결국 사람에게 부메랑을 선사한 것이다. 그래서 먹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뒷골이 땡기고 아프다.

멀미는 부천의 원미산의 원형이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철학(哲學)이 있다. ‘멀’은 ‘머리’라는 뜻하고 일맥상통한다. 으뜸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뒤에 붙은 ‘미’는 산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멀미는 인간의 머리통 같이 소중하고 으뜸인 산이다. 우리네 머리를 소중하고 으뜸으로 여긴 것하고 한 치도 틀림없다. 그러니 머리 뒷골이나 멀미의 뒷골이나 그 의미가 같다.

인간의 머리통만 소중한 것이 아니다. 동물의 머리통, 새의 머리통도 소중하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머리통은 정말 소중하다. 그러기에 생명(生命)이라는 존귀한 언어가 탄생한 것이다.

이 멀미의 뒷골엔 참 많은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원미공원 충혼탑, 부천시립도서관, 어린이 교통나라, 주차장 등등이다. 원미공원이랍시고 여기저기 콘크리트로 범벅을 만들어 놓았다. 몇 군데 소나무, 느티나무, 왕버즘나무, 향나무, 섬잣나무 등속을 심어놓았을 뿐이다.

예전에는 싱싱한 도랑물, 개울물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은 뒷골 윗부분만 쫄쫄 흐르다가 땅 밑으로 스며들고 만다. 우수관이 개울물의 생명력을 빨아들여서 부천의 땅 밑을 돌고 돌아 굴포천에 뱉어놓은 뿐이다. 뒷골의 깨끗하고 싱싱한 개울물은 그대로일까? 오염투성이로 변하고 괴물로 변해서는 굴포천을 썩게 만드는 주범으로 탈바꿈하고 만다.

▲ 뒷골

원미공원 아래에 있는 주차장은 예전에 저수지가 있던 곳이다. 조종제(朝宗堤). 조종(朝宗)은 조마루의 한자어이다. 이 저수지를 메워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공원만들기였다. 멀쩡한 산을 깎고 뒷골을 메워 시멘트 범벅을 만들어놓고 공원이랍시고 던져 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웃긴 공원만들기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공원이 이런 모양, 이런 꼴을 갖추고 있다. 블록이나 시메트를 발라 놓아 신발에 흙이 묻지 않게 과잉된 친절을 베풀어 놓은 것이다.

조종제(朝宗堤) 빙 둘러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여러 물고기들이 저수지에서 살았다. 수많은 수서곤충들이 살았다. 물방개, 물땡땡이, 물자라, 장구애비, 달팽이 등이 어울렁 더울렁 살았다. 더불어 조마루 아이들이 여름이면 이 저수지에서 수영을 하면서 물놀이를 즐겼다. 자연이 선물해준 마을 놀이터였다.

그러던 것이 원미공원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주차장으로만 쓰고 있다. 물론 주차장엔 왕버즘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렇지만 주차장하고 저수지하고 어떤 것이 공원에 어울릴까? 지금 그 저수지가 살아 있다면 부천에서 유일한 생태공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 아래 조마루로 들어가는 길목엔 뒷골에서 흘러내린 개울물로 조마루 여인들이 빨래를 하던 빨래터가 있었다. 조마루 아낙네들은 함지박에 빨래거리를 담아 와 방망이를 두들기며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내고 설화를 만들어냈다. 그 빨래터 아래로 피라미들이 조고만한 꼬리를 흔들며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을 터이다. 개울을 건너던 징검다리... 이제 이런 것들은 나이 드신 어른들이 건져내는 추억담일 뿐이다.

▲ 뒷골 측백나무

멀미의 조마루 뒷골엔 셀 수 없이 들락거렸다. 멀미 장대봉을 오르면서 으레 들르는 곳이다. 부천시립도서관을 찾아 읽고 싶은 시집이나 소설을 읽기 위해 들르기도 한다.

충혼탑 언덕에 올라 바라보면 예전에는 논으로 가득하던 곳에 아파트 숲으로 변해버린 부천시가 이물질처럼 징그럽게 다가온다. 저 아파트 숲엔 애벌레처럼 인간들이 고물고물 살고 있을 것이다. 해넘이 땐 빠알갛게 물들은 구름들이 우르르 몰려오기도 한다.

뒷골 위쪽은 서울에서 유명병원을 운영하는 병원장의 소유이다. 일 만평은 부천시립도서관을 만들 때 부천시에 팔고, 남은 일 만평을 가지고 있다.

부천시 대부분의 산은 이렇듯 사유지이다. 그러고 보니 뒷골의 개울물도 소유권이 있는 것 같다. 뒷골 언덕엔 산림 관리인이 살고 있는 주택 두 채가 있다. 원미공원을 만들 때도 살아남은 옛집이다.

▲ 조마루 뒷골 저수지(1970년 편집한 지도2만5천분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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