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역할(役割)

'붉은 손가락 - 히가시노 게이고'

가족의 역할(役割)

 

 

 현대 사회는 빠른 속도로 발전해 가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삶은 더 윤택해졌고 세계화로 인해 문화의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한편에서는 더욱 다양한 사회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현대화에 따른 가족의 기능 약화, 고령화에 따른 노인 부양에 대한 부담 증가, 청소년 범죄 등 우리 사회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미스터리한 추리소설로 풀어낸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을 읽어 보았다.

 

 <붉은 손가락>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평범한 중년 가장 마에하라 아키오는 오늘도 집에 돌아가길 망설인다. 집에는 치매의 시어머니를 귀찮아하는 부인과 게임에만 빠져있는 아들이 있다. 아키오에게 '가정'은 안식을 주는 곳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라면 전화를 걸어올 일이 없는 아내 야에코에게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라는 전화를 받는다. 불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 보니 아들 나오미가 어린 소녀를 집에 데리고 와서 제멋대로인 이유로 살해한 것이었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공원 화장실에 시체를 유기하지만 어설픈 처리로 사건의 용의자 선상에 오르자 어머니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 과연 그들은 형사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을까….

 

 미국의 소설가 척 팔라닉은 이렇게 말했다. '부모는 그대에게 삶을 주고도 이제 그들의 삶까지 주려고 한다.' 자식을 위해 헌신해 온 부모와 그 은혜를 배신하고 베풀어 준 덕을 잊은 것도 모자라 은혜에 보답하기는커녕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식.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배은망덕(背恩忘德)의 자세를 갖고 부모를 대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매년 증가하는 친족 살인율은 현대 우리 사회의 삭막함을 가장 잘 보여 쓸쓸하기 짝이 없다.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가족의 의미도 바뀌어 가고 있다. 가족 구성원 간의 끈끈한 유대감이 떨어져가는 가정에서는 애정적 욕구도 충족할 수 없고 심리적인 안정도 취하기 어렵다. 스마트폰과 소통하는 것이 더 익숙한 부모와 방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이 없는 자식, 이렇게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들 나오미도 아버지의 무관심과 어머니의 과도한 애정으로 자라 사회와 가정, 그 어느 쪽에도 적응하지 못한다. 어린 소녀를 살해했을 때엔 죄의식도 전혀 느끼지 않았고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 떠 맡겨버린다. 이 작은 괴물의 탄생을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괴물마저 감싸고 도는 것이 과연 부모의 역할인 것일까? 하지만 우리도 누군가의 자식이며 부모이고 이것들은 그저 반복되기만 할 뿐이다. 이런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시 한번 가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겉에서 보면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평범한 가정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 안에는 썩은 물이 고여 흐르지도 못한 채 심한 악취를 풍기며 그곳을 감싸고 있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마에하라 씨, 당신은 어머님의 눈을 진지하게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느껴야 한다. 그리고 깨달아야 한다. 대화에서도 그럴 것이다 서로 다른 곳을 보며 나누는 대화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온 신경을 상대방에게 집중해 그 대화 속에 스며드는 것이 중요하다. 소통이 단절됨에 따라 관계도 소홀해져갈 것이다. 가족이 하루에 한 번 모이는 저녁 식사시간. 서로의 눈을 마주쳐가며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글 | 석가현(꿈드림 청소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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