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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섬 군함도, 목숨을 건 탈출일제강점기 당시 열여덟 나이에 미쓰비시 탄광, 미쓰비시 조선소에 징용 끌려간 부천 진말 백상현 선생
한도훈 조합원  |  hansa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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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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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섬 군함도, 목숨을 건 탈출 

 

  
   
 

 

일제강점기 당시 열여덟 나이에 미쓰비시 탄광,

미쓰비시 조선소에 징용 끌려간 부천 진말 백상현 선생

 

미쓰비시 탄광으로 징용 끌려가

부천 진말에 사는 백상현 선생은 연세가 97세이다. 이 긴 세월동안 파란만장한 삶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일제강점기 때 미쓰비시 탄광으로 징용을 끌려가 히로시마 원자폭탄에 피폭되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세월이 가장 끔찍하다고 회고 했다. 징용자이자 원자피폭자이지만 이날 이때까지 정부에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한 칸짜리 방에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백 선생과의 인터뷰는 고통스러웠다. 나이 18세에 징용에 끌려가 겪은 온갖 모진 고통에 대해 상세하게 기억했다. 그 기억들을 되살려서 담담하게 풀어놓는 백 선생의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었다.

나이 열여덟에 일본 뭐야 저 미쓰비시에서 운영하는 가와나미 탄광으로 끌려갔어. 그 탄광은 하카타에 우미마치라는 곳이었지. 가자마자 탄광에 들어가서 탄을 캐야 했어. 석탄이 있는 탄광 끝에다가 구멍을 뚫고 솔질을 했어. 그 구멍에다 다이나마이트를 묶어서 박아 놓아. 탄가루로 그 다이나마이트를 묻고 오면 일본인이 스위치로 터뜨리지. 그러면 엄청나게 큰 먼지가 나고 탄가루가 쏟아져. 그걸 삽으로 퍼서 담아 내오지.

그런데 어느 날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리니까 탄광 벽이 허물어졌어. 하늘에서 막 바위가 떨어지더라고... 근데 그 사이를 피해 사람들이 다 나왔지만 한사람이 넘어졌어. 그런데 바위가 몸뚱이 위에 떨어져서 다리를 눌렀지. 바위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빼낼 수가 없었지. 그러니까 일본놈들이 톱으로 그 사람의 다리를 썰어 내드라고. 옆에서 그걸 보고 겁을 잔뜩 먹었어. 이러다가 죽겠구나 생각했지.”

백 선생은 탄광에서 2년 넘게 일을 했지만 언제 죽을지 몰라 무섭고 두려워서 도망을 칠 기회만 엿보았다. 그러다가 그런 기회가 생겨 탄광을 빠져나와 도망을 쳤다. 도망을 간다고 갔지만 어디가 어딘지 몰라 붙잡히고 말았다.

미쓰비시 탄광 관리부에 붙잡혔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마구잡이로 두들겨 맞았지. . 가죽으로 만든 채찍으로 얼마나 볼기짝을 얻어맞았는지 일어나서 걸을 수가 없었어. 그 뒤로 병원에 가서 입원했지. 다 나아서 탄광 일을 다시 했는데 얼마나 혹독하게 맞았는지 마음속으로 이제 안 도망가려고 그랬어. 도망가다가 잡히면 또 죽도록 두들겨 맞을까봐 그런 거지.

그런데 충청남도 강경 사람들 여럿이 들어왔어. 다들 학생들이었어. 그 사람들이 도망가자고 꼬드겨서 함께 도망을 나갔지. 도망가다 잡히면 죽도록 맞는다는 게 두려웠지. 그렇지만 마음 독하게 먹고 도망을 쳤지.

미쓰비시 탄광에서 죽도록 일만 하고 급여고 뭐고 받은 기억이 없어. 도망가는 것만 목적이었지. 그곳이 생지옥이야. 요즘에도 꿈속에 자주 나와. 용케 이번에는 잡히지 않았어. 그런데 밖으로 나오니까 먹고 살 수가 있어야지.”

   
군함도
 

   
군함도 미쓰비시 탄광

  

야하타제철소에서 석탄연료 만드는 징용

백 선생은 야하타제철소로 자리를 옮겼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면서 생존하려면 그 길밖에 없었다. 조선으로 오는 배를 타려고 해도 탈 수가 없었다. 도시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잡히면 다시 미쓰비시 탄광행이었다. 미쓰비시 탄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야햐타제철소였다. 하지만 이 제철소도 미쓰비시 탄광 만큼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야하타제철소는 후쿠오카 현 기타큐슈시(北九州市)에 있었다. 이 야하타(八幡) 제철소는 태평양 전쟁 때 일본 본토 내 철강 생산량 절반을 점유할 정도로 군수산업의 거점이었다. 여기서 생산된 철강으로 군함과 전투기, 어뢰 등이 제작되었다.

전시 대규모 철강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조선인 3,400여 명이 끌려와서 노역 중 18명이 사망했다. 당시 조선인들은 40짜리 석탄을 운반하거나 쇠를 녹이는 석탄연료를 만드는 등 휴일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 중노동을 했다. 세 끼를 주먹밥 한 덩이로 때웠다. 일본인 감시를 받았기 때문에 부당한 노역에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야하타제철소에서 석탄연료 만드는 일을 했지. 미쓰비시 탄광에서 도망쳐서 거리를 헤매니까 어떤 사람이 돈 많이 벌려면 자신을 따라오라고 은근하게 그러더라고... 그래서 얼른 따라갔지.

야햐타제철소를 소개해 준 거야. 그곳에서 무슨 일을 했냐면, 탄광에서 캐낸 탄가루를 아주 큰 가마 같은 곳에다 퍼 담아놓고 불을 지르지. 그러면 탄가루에 불을 붙어서 활활 타오르고, 그 구멍을 막아버려. 그럼 안에서 불이 서서히 꺼지고 굳게 되지. 그걸 쇠 녹이는 공장으로 가져가. 그 일을 한 거야.

아주 큰 멜빵 단 소쿠리에다 가루를 담아가지고 옮기는 거지. 배로 올라가려면 배를 댄 곳에 넓은 널빤지를 지나야 하는데 다리가 휘청거리기 일쑤였어. 까닥 잘못하면 아래로 추락하기 쉬웠지. 그렇게 죽은 사람이 많았어. 나도 하마터면 떨어질 뻔 했지. 그렇게 쉴새없이 소쿠리에 탄가루를 담아 날랐어. 한 달 동안 일하니까 어깨가 빠지고 온몸이 말이 아니었어. 그런데 월급을 달라고 하니까 돈을 안 주잖아. 그래서 밥하는 사람에게 물어봤지. 왜 돈을 안주냐고... 누가 내 돈을 찾아갔다고 그러더라고... 야하타제철소를 소개해준 사람을 찾아가서 따지니까 자기는 돈을 안 가져갔대. 환장하겠더라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들게 일하고 돈을 떼이고 만 거지. 어깨가 막 붓고 온몸이 쑤셔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데 말야. 돈을 달라고 그렇게 졸랐는데도 끝내 안 주더라고... 그래서 그 일을 그만 두었지. 욕만 실컷 하고...”

 

   
야하타 제철소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징용생활

백 선생은 나가사키에 있는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미쓰비시 탄광에 징용으로 끌려와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징용생활을 한 것이다.

미쓰비시 조선소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무한 자랑해온 무사시 전함을 비롯해 수많은 군사용 선박을 건조한 곳이었다. 일본군이 사용한 어뢰의 8할을 만들었다는 병기제작소이기도 했다. 어뢰 17천개가 생산되었다. 그밖에 제강공장과 각종 탄광 등 일제 침략전쟁을 뒷받침하던 작업장들을 나가사키 곳곳에서 가동했다.

이 미쓰비시 탄광, 조선소 등지에 수만 명의 조선인 노무자가 투입됐다. 1944년 당시 조선인 노무자 및 그 가족이 나가사키시에는 20,000명 정도 살았다. 나가사키현 전체에는 75,000명이나 거주했다. 미쓰비시 소속으로 조선소에만 6,000여명이 일했다. 백 선생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이 미쓰비시 조선소에선 큰 배를 만드는데 투입이 되었다. 배가 얼마나 큰 지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다 못 돌 정도였다. 기름을 싣는 배였다. 배의 바깥에다 상판을 붙이는 일이었다.

배 바깥에 철판을 딱 붙이면 거기에서 구멍을 뚫어가지고 연결하는 거야. 철판에다 구멍을 뚫어서 거기에 보드를 박는 일이었어. 석탄연료에 보드를 구워가지고 철판에 박으면 다른 쪽에서 그걸 잽싸게 돌려서 마감을 했어. 짱짱하게 붙으라고 탕탕탕탕 쳤어. 그렇게 마감을 해 놓으면 일본인 감독이 와서 망치로 보드 마다 따따따따 쳤지. 소리가 짱짱하면 합격이고 텅텅거리면 불합격이야. 불합격 맞으면 다시 보드를 빼서 다시 붙여야 했지. 그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야. 아주 힘들었지.

그렇게 일을 하면 하루 일당으로 10원을 준다고 했어. 그런데 6원밖에 안 주는 거야. 중간에서 빼 먹어서 그런 거지. 식사비가 2원이어서 별로 많은 돈을 벌지 못했어. 내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어린애가 돈만 밝힌다고 지랄하더군. 정말 죽을둥 살둥 모르게 일을 했는데 말야. 그렇더라도 달리 방법이 없어서 몇 달을 일을 했어. 조그만 배까지 합쳐서 8대를 만들었지.”

백 선생은 일을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빠져 나왔다. 거리를 정처없이 떠돌다가 헌병에게 붙잡혀서 다시 생지옥같은 일을 해야만 했다.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

 

   
 

<다음 호에 계속>

 

| 한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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