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불안한 위험사회 탈피해야’

 

“우리가 예상치 못한 위험 시시각각 발생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땡방처방 아닌

‘위험사회’로부터 벗어나도록 지혜 모아야”

 

 

 

 “차 조심하고, 버스 안에서 소매치기 조심해라. 서울에는 위험한 것들이 많다.” 필자가 시골에 살던 어린 시절에 모처럼 서울을 갔다 올 때면 어른들께서는 신신당부하듯이 하던 말씀이셨다. 생각해 보면 당시 시골에는 차가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도둑도 없어 살아가는데 불편한 것들은 있어도 위험하거나 불안하게 하는 일들이 없었다. 과학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은 늘 불안하고 위험이 상존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책에서 오늘날 사회를 “문명의 화산 위에서 살아가는 위험사회”라고 표현했다. 1994년 32명의 사상자를 낸 성수대교 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502명의 사망자를 낸 대형사고가 발생하면서 우리나라도 울리히 벡이 말했던 ‘위험사회’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직 미수습자를 찾고 있는 2014년 세월호 사고까지 위험사회의 안타까움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대형 사건의 위험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웃 일본에서 2011년 일어난 동북부 지방 지진으로 쓰나미에 의한 후쿠시마현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로 엄청난 불안감을 조성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사건에서 이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위험이 시시각각 발생해 스스로 통제하기도 어려운 실정에 있다.

 

 지난 7월 벨기에, 네델란드, 독일산 계란에서 금지 성분인 살충제가 검출되면서 이들 국가 계란과 가공식품을 수입한 국가들로 사건이 확대됐고, 국내에서 유통되는 계란에서도 살충제가 검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8월 한 달 내내 온 국민에게 살충제 계란에 대한 불안을 심어 주었다. 살충제 검출 사육 농가가 전국 55개 농장에 사육 규모도 적게는 6천 마리에서 24만 마리까지 사육하는 농가들인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 농가 중 31곳이 친환경 인증농가라는 점이다(9월 13일 조사 기준).

 이들 농가가 금지된 농약을 사용한 이유는 닭의 진드기, 모기, 벼룩 등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닭은 본래 땅에 몸을 문지르면서 흙이나 모래를 뿌리는 동작으로 해충을 퇴치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닭 사육 농가에서는 A4 용지 한 장 정도 크기의 철제 우리에서 사육하기 때문에 진드기가 퍼지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살충제를 쓸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러한 사육 농가 현실을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필자도 집에 사놓은 계란을 살펴보니 살충제 사용 농가의 계란임을 알게 됐고, 한 판 중에 두 개 남은 계란을 버린 적이 있다. 정부는 이제 유통되는 계란을 먹어도 되고, 어느 전문가는 하루에 몇 개 이상 먹어도 된다고 하다가 그런 말이 쑥 들어가고 정부의 발표는 불신을 초래하기도 했다.

 

 필자는 그 이후 지금도 계란을 사먹지 않고 있다. 곧 맞이할 추석 명절에 계란이 들어간 음식은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할 것 같다.

 

 며칠 전, 경북도청에서는 이틀간 계란 먹기 날을 정해 도청 구내식당에 계란 반찬이 나왔고 도청 방문객들에게 구운 계란을 주기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전국 계란 생산량의 26%를 차지하는 경북도가 계란 농가를 돕고 안심한 계란만 유통되니 하는 행사였을 것이다.

 정부의 대책을 보니, 생산 단계에서는 농가의 사용 약제 강화와 선진국형 동물복지 농가 확대, 유통 단계에서는 계란에 대한 이력 관리 강화와 부적합 농가나 유통업체 검사를 강화하고 위반시 공개하며 마지막으로 인증기관의 책임 강화와 감독을 철저하게 한다는 것이다.

 

 울리히 벡에 따르면 첨단 과학과 기술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미리 연출할 수 있다면 우리는 연출된 위험에서 영감을 얻어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한다.

 어디 살충제 계란뿐이겠는가. 눈부신 과학문명의 발전 못지않게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모든 요소요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인에 대해 언제까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땜방 처방이 아닌, 조금 불편하더라도 불안하지 않는 ‘위험사회’로부터 벗어나도록 지역사회는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글 | 김인규 전(前)부천시오정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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