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 벌

 

신선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요동을 친다. 요양 차 고향에 내려서니 몸이 먼저 반응을 한다. 꼬막으로 유명한 벌교라는 작은 읍이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청정지역이라 펄 속에 사는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가는 천혜의 땅, 지명보다는 꼬막이라는 생물로 더 유명하다. 벌교는 내게 포근한 안식처이자 유년시절의 그리움이 탱글탱글 영글어 있는 곳이다.

비릿하고 찐한 갯내음이 바닷바람에 실려 온몸을 휘감는다. 고향 냄새이자 엄마의 포근한 품속 냄새다. 드넓은 펄이 펼쳐지는 곳에 갯가를 따라 바닷물이 들고 난다. 펄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갈대가 양 옆으로 줄지어 우거져 있다. 젖가슴과 같은 보드라운 진흙은 갈대의 정화작용 속에 살아 숨 쉬는 바다가 된다.

조석으로 들고나는 바닷물이 궁금하여 물이 드는 포구에 눈길을 주었다. 작은 생명체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짱뚱어다. 물이 들 때는 펄 속에 숨어 있다가 물이 빠지면 산소와 먹이를 찾아 밖으로 나온다. 어린 새끼들이지만 재빠른 몸놀림으로 주위 환경을 살피면서 천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며 방어태세를 갖춘다. 작은 소리에도 즉각 반응이다. 빠르기는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곤 한다. 갯벌이나 작은 바위틈에 숨어 있다가 잠잠해지면 순간 이동해 나타난다. 저들의 긴박한 숨바꼭질을 지켜보는 내 눈동자도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짱뚱어의 등에 난 지느러미는 위험을 느낄 때 상대에게 몸집을 부풀려 위협하는 수단이 된다. 그 작은 몸집에 촉수 같은 지느러미를 펴고 나를 향해 위협한다. 보고 있자니 귀엽기도, 가소롭기도 하지만 행여 도망이라도 갈까 싶어 위협을 그대로 받아 들였다. 작은 생명체의 자기보호 본능이야말로 자연의 순리가 아닐까. 나는 삶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걸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나태해져 몸과 마음이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닌지 조용히 되짚어 본다.

또 다른 생명체 칠게가 번개처럼 나타난다. 눈치 빠르기를 자랑하듯 경계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펄에서 나올 때는 먼저 눈자루라는 촉수를 세워 안전 여부를 살핀다. 그런 다음 안전하다고 느껴지면 갯벌 위로 나와 양쪽에 솟아 있는 집게로 연신 펄을 쪼아 입으로 가져간다. 펄을 먹는 것이 아니라 펄 속에 있는 플랑크톤이나 작은 유기물을 섭취하는 것이다. 마치 양손을 번갈아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밥을 먹는 모양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몹시 가난하여 끼니를 거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쩌다 맛있는 음식이나 반찬이 밥상에 오를 때면 눈치작전은 극에 달했다. 아버지께서 수저 들기를 기다렸다가 드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섯 형제들의 젓가락은 행여 뒤질세라 맛있는 반찬으로 한꺼번에 몰려 들었다. 순식간에 반찬은 누구의 입으로 들어갔는지 모르게 사라지고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기 위한 경쟁은 찬그릇이 비워질 때까지 치열했다. 욕심쟁이 동생은 한 손에는 숟가락을 다른 한 손은 젓가락을 쥐고 밥과 반찬을 가져다 먹었다. 양손잡이가 가능한 동생의 밥 먹는 속도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밥 먹기를 시작해서 우리가 두어 숟가락을 채 뜨기도 전에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밥상머리에서 일어서는 동생의 모습은, 내 발치의 칠게 모습과 너무 닮아 있어 웃음이 난다. 얼마나 급하면 양쪽의 집게로 연신 퍼 나르는 것일까. 동생처럼 남에게 빼앗기는 것도 아닐진대, 갯벌에서 사는 생명체들의 살아가는 생존법일 테지만 동생의 모습과 흡사해 욕심스러워 보인다.

포구를 따라 바람이 살랑대며 불어온다. 갈대들은 갯벌에 뿌리를 박고 서로의 몸을 부비며 바람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다. 가늘고 연약한 몸이지만 쓰러질지언정 부러지는 경우는 드물다. 갈대가 울면서 서로를 의지할 때 갯벌의 생명력은 더 위대해진다. 아기의 포동포동한 엉덩이 같은 펄 은 꼬막을 키우는 어미의 품이다. 그 품에서 꼬막은 생명을 유지하고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한다. 펄 속의 유기물은 꼬막의 자양분이 되고 꼬막의 분비물은 또 다른 생명의 자양분이 되어 갯벌이 순환 유지 되는 것이다.

펄 속에서 자라는 꼬막을 캐기 위해서는 아낙들의 고된 작업이 동반된다. 한평생을 꼬막을 캐서 자식들 뒷바라지와 학비를 보내느라, 굽어진 허리는 꼬막인생을 대변하고 갯벌에서의 짓이겨진 고생을 보상하듯 꼬막은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하다.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필수아미노산, 성장발육을 돕는 철분과 무기질도 풍부하여 빈혈에 도움을 준다. 타우린과 베타인 성분은 숙취해소에 간을 보호하는 효과까지 있다 하니 꼬막을 키우는 갯벌의 중요함은 더 열거하지 않아도 되겠다.

잘 삶아진 꼬막은 쫄깃쫄깃하게 씹히면서 감칠맛이 더해져 일품이다. 꼬막을 키우는 갯벌은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이곳 순천만과 고흥의 여자만으로 이어져 있다. 그 사이에 있는 벌교의 갯벌은 보드랍고 고운 퇴적물로 이루어져 펄에서 살아가는 짱뚱어와 맛조개, 꼬막, 칠게 등이 서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어서 세계 람사르협약 보존습지로 등록된 보물로 가치가 높은 곳이다.

자연이 살아 있는 이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 잡다한 아픔이 싹 가시는 느낌이다. 비릿한 갯내음만으로 몸의 독소를 씻어내고 깊은 곳에서 잠자던 영감을 흔들어 깨워놓는 신선함이 가득한 이곳. 갯벌이 주는 청정함을 나는 감히 거부할 수 없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엄마의 품이 그리웠던 건 아니었을까? 푸른 하늘은 구름조차 범접치 못하게 햇살이 쏟아진다. 갯벌을 향해 두 팔을 양껏 벌려 갈대바람을 맞으며 내일의 희망까지 품어본다. 내 인생에 고난도 거뜬히 넘을 탱탱한 충전이다.

 

글 | 전해미

 

-. 전남 보성 출생

-. 방송통신대 국문과 졸

-. 2016년 부천신인문학상 수필 부문 당선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