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발자국을 새길 정도로 힘이 센 아기장수

 

 매봉재 아기장수바위 전설

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각색

hansan21@naver.com

 

옛날부터 원적산 산 속에서 양어깨에 날개가 달린 천마가 살았다. 그때는 천마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단지 천마가 살고 있는 산이라는 말로 불려졌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엄청난 괴물 메두사의 목을 영웅 페르세우스가 베었을 때 흘러나온 피에서 생겨난 페가소스처럼 백마는 아니지만 양어깨에 날개가 달려 어디든 날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마을 사람들에게 보인 적은 없었다. 이따금 말 울음 소리가 들리고, 동이 터 오는 새벽하늘에 날개를 힘차게 저으며 날아가는 천마를 멀리서 본 사람은 더러 있었다. 천마는 워낙 신비한 말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은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구태여 산에 올라가 천마를 보려 하지 않았다. 호기심 많고 극성스런 청년들이 온 산을 헤매었으나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단지 천마가 마시고 떠났을 법한 맑은 샘물이 있었다. 그 샘물에서 물을 마시며 마을 청년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근처에 영웅이 태어나고, 그 말을 타고 출정할 것이라는 신령스러운 전설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조선 초기, 천마산 남쪽 아랫마을에 고려 때부터 마을을 이루며 살아온 합천이씨(陜川李氏)가 몇 가구를 이루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농사를 지으며 천마산에서 버섯이나 나물을 캐며 살았다.

이 집안에 젊은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건강하고 착했으며 아내도 부지런하고 얌전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부부였으나 결혼한지 십 년이 넘도록 슬하에 아기가 없었다. 아기를 갖는 것이 이 부부의 평생 소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아내가 호랑이가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하고 꾼 꿈인데다 몽롱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듯한 알 수 없는 기운이 몸에 느껴졌다. 그녀는 아침에 눈을 뜨자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새벽에 길몽을 꿨어요. 아기를 가지려나 봐요.”

꿈 내용을 들은 남편은 희색이 만면했다.

“좋은 태몽이면 얼마나 좋겠소?”

부부는 마을의 노인들에게 여쭈었다. 모두들 아들을 얻을 좋은 태몽이라고 했다.

이씨 아내는 행동거지를 조심하며 지냈고 부인의 배는 점점 불러왔다. 이씨는 아내와 장차 태어날 아기를 위하여 열심히 일했고 아내도 길쌈이며 훌륭한 아이를 태어나게 해달라고 태교를 열심히 했다. 

 

어느날 새벽, 마을 사람들은 원적산 깊은 골짜기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었다. 그것은 조용히 새벽공기를 흔들며 들려온 청량한 소리였다.

그렇지만 사람을 불안하게하거나 위압하는 소리가 아니라 천상에서 울리는 음악처럼 아름답고 품격이 높게 느껴지는, 그리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그날 낮, 이씨의 아내가 아기를 낳았다.

산파역을 맡은 동네 할머니가 말했다.

“고추예요. 고추! 튼실한 고추를 달고 나왔구만.”

이씨와 아내는 삼신할머니에게 감사했다.

“삼신 할매! 이렇게 튼튼한 아들을 점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기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총명해 보였으며 어깨가 유난히 넓었다. 아기의 큰아버지 큰어머니 등 합천이씨(陜川李氏) 일가 친척들도 달려와 늦동이 아들을 얻은 부부를 축하했다.

아기의 몸을 씻고 배내옷을 입히던 동네 할머니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를 좀 봐요. 아기등에 북두칠성 점이 있어요.”

이씨와 아내는 그걸 좋은 징조로만 여기고 미소를 교환했다.

아기는 태어난 뒤로 범상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 태어난 지 열흘만에 걸었으며 한 달만에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그리고 백일이 되자 돌로 만들어진 맷돌을 번쩍번쩍 들어 올렸다. 힘이 천하장사가 된 것이다. 몸도 민첩해서 방바닥에서 벽을 타고 달려 올라가 천장을 타고 뛰다가 반대편 벽을 타고 뛰어 내려 왔다.

초가지붕 위로 휙휙 날아올랐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원적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경탄 하였다.

“아아, 우리 마을에 아기장수가 태어났구나!”

아기장수가 태어났다는 소식은 부평도호부 관아에 까지 전해졌다. 부평도호부 부사는 몸소 가마를 타고 마을로 와서 아기를 보고 얼굴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아기장수가 나오면 역적이 되어 나라를 해친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부사는 아기장수가 콩을 한줌 뿌리면 그것이 병사가 되고 팥을 한줌 뿌리면 그것이 모두 군마가 되어 막강한 군대를 일으킬 수 있다는 속설을 믿고 있었다.

부사는 아기의 친척 중 가장 나이가 든 어른에게 말하였다.

“아기를 광에 가두어라. 내가 조정에 보고를 하면 그에 대한 조치가 내려질 것이다. 만약 명령대로 하지 않으면 너희 합천이씨(陜川李氏) 일가가 능지처참을 당할 것이다.”

부평도호부 부사가 돌아간 뒤 아기장수의 부모는 아기를 광에 가두고 날마다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 소문이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아기장수를 죽이기 위해 한양에서 관군이 달려 온다는 것이었다. 아기장수와 함께 일가를 모두 죽일 것이라는 말도 들렸다.

아기장수의 아버지인 이씨는 눈물을 흘리며 말 했다.

“아기야, 나를 용서해라. 네가 관군에게 잡혀 죽고 우리 합천이씨(陜川李氏) 일가가 몰살을 당하느니 너의 목숨을 내가 끊는 게 낫지 않겠느냐.”

아기장수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에게 애원하였다.

“저를 묻을 때 콩 다섯 섬과 팥 다섯 섬을 함께 묻어 주세요.”

이씨는 아기장수를 다듬잇돌로 눌러죽이고 땅에 묻으며 콩과 팥을 다섯 섬씩 함께 묻었다.

이튿날 관군이 도착 했다.

“어서 아기를 내 놓아라!”

아기장수의 집안어른들은 관군장수 앞에 자식을 죽인 슬픔에 흐느끼며 무릎을 꿇었다.

“제가 죽였습니다요. 나라의 역적이 될 것이라고 하여 이 아비가 돌로 눌러 죽이고 묻었습니다요.”

관군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의 후환을 없애고 우리 관군의 수고를 덜어주었으니 잘 한일이 도다. 무덤으로 나를 안내하라.”

관군이 아기장수 바위 무덤에 이르렀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 졌다. 아기장수가 살아있고, 아기와 함께 묻은 콩은 군사가 되고 팥은 군마가 되어 아기장수를 호위하며 줄줄이 일어났다.

관군 장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서 진압하라. 어서 저 역적들을 죽여라!”

아기장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왜 나를 역적이라 하십니까. 머지않아 조국에 쳐들어 올 적군을 맞아 싸우다 죽게 해 주십시오.”

“너는 역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너를 처단하는 것이 옳으니라. ”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훗날을 기약할 수 밖에...”

관군 장수는 병사들에게 아기장수를 처치하라고 명령을 계속 내렸다. 병사들이 아기장수와 콩과 팥이 변한 군사들과 군마들에게 달려들었다. 원적산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진행되었다.

그때, 원적산 산속에서 천마가 힘차게 날개를 휘저으며 날아올랐다. 이때 천마의 발굽이 워낙 세서 발자국이 바위에 그대로 새겨졌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마는 순식간에 날아와 아기장수 앞에 섰다.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라 천마를 바라보았다.

 

 

아기장수가 훌쩍 천마에 올라탔다. 관군들이 천마에 탄 아기장수를 향하여 무수히 많은 화살을 쏘았다. 하지만 그 화살들은 천마와 아기장수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그대로 관군 머리위로 떨어졌다. 아기장수는 유유히 천마를 타고 부천 매봉재 쪽으로 날아갔다.

마을 사람들은 아기장수가 살아서 부천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기장수가 훗날 훌륭한 장수가 되어 나라를 지키고 부평 고장을 지켜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원적산에서 천마가 나타나 아기장수를 태우고 날아갔다고 해서 천마산으로 불렀다.

매봉재에서 우뚝 솟은 매봉 봉우리에 다다른 아기장수는 관군과의 싸움에 지쳐있던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갑작스레 오줌이 마려웠다.

병풍 바위 아래 힘센 거북을 닮은 바위에 천마가 날개를 접고 가만히 섰다. 아기장수가 천마에서 내려 바위를 딛고 힘차게 오줌줄기를 뿜어냈다. 그 얼마나 힘이 넘쳤던지 아기장수의 발자국이 바위에 오롯이 새겨졌다. 아주 신비롭고 신성한 아기장수바위가 탄생한 것이다. 바위에 발자국을 새길 정도로 아기장수는 힘이 장사여서 후세 사람들은 ‘아기장사바위’라고도 했다.

한참동안 오줌을 싼 아기장수가 빙그레 웃으며 천마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유유히 관악산 쪽으로 날아갔다. 훗날 나라를 지키는 장수가 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갈고 닦기 위한 것이었다.

아기장수가 오줌을 싸고 간 뒤부터 아기장수바위 아래에선 맑은 샘물이 솟아나 도당 마을 사람들에게 시원한 약수를 제공해 주었다.

지금도 아기장수바위 아래에서 맑은 샘물이 퐁퐁 솟아나지만 오염이 되어 이 약수물은 먹을 수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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