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모저모 > 생활/사회
함께하는 공정여행을 통해 눈 뜬 새로운 세상부천향토연구회 ‘콩시루’ 단종애사의 땅 영월 청령포 답사기
이미영 조합원  |  kongpaper@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10.2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함께하는 공정여행을 통해 눈 뜬 새로운 세상

 

부천향토연구회 콩시루단종애사의 땅 영월 청령포 답사기

 
   
 

편집자 주 | 부천향토연구회 콩시루는 콩나물신문에 55회차 연재되어오고 있는 부천이야기를 기반으로 향토사와 지역 생태, 문화, 교육 자원들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학습동아리입니다. 지난 2016년에는 경기도 따복공동체지원센터의 마을계획 수립사업에 선정되어 단행본 고리울 가는 길을 출간 했습니다. 2017년도에도 따복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심쿵, 우리동네 썸타기라는 사업명으로 부천 공정여행지도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콩시루는 회원과 공정여행에 관심있는 시민들과 함께 단종애사의 청령포와 장릉, 한반도 지형으로 유명한 선암마을과 선돌을 탐방했습니다.

 

 

 하늘이 높아진 10월의 푸르른 날 우리 콩시루 회원들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올 해 공정여행의 마지막 답사지인 영월로 출발했다. 특히, 이번 답사는 구로 공정여행 대표이사이자 생태·문화 해설사인 신민정 선생님이 안내 하시기로 되어 있어서 앞으로 우리가 공졍여행을 진행 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더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긴장이 되었다.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신민정 선생님이 공정여행에 대해 설명 해 주셨는데, ‘진정한 공정여행이라는 것은 비용이 적당하고 여행의 질도 만족하고 그 지역을 여행하면서 지역 먹거리를 이용하고 지역사람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삼가하고 가능한 저탄소를 이용하는 여행이라고 하셨다, 곧 이어서 영월 청령포(淸泠浦) 물줄기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이루어졌는데 개인적으로 지리에 약해서 잘 대답하지 못 했다. 선생님께서는 청령포(서강)의 줄기는 남한강 지류로서 그 시작점이 태백이고 정선, 평창, 영월로 흐른 물과 금강산에서부터 흐른 물이 북한강 지류(동강)과 만나는 곳이 지금의 양평에 있는 양수리(두물머리)라고 알려 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양수리가 두물머리라는 것에 놀랐는데 부끄럽게도 양수리에 있는 두물머리가 다른 것 인 줄 알았다.

 

 10시를 훌쩍 넘어서 우리는 청령포(淸泠浦)에 도착 했는데, 정말 천년의 유배지라는 말을 공감케 한다. , , 북 삼면이 물로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룻배를 타지 않고서는 탈출할 수 없는 섬과도 같은 곳이다. 우리는 나룻배 대신 작은 동력선을 이용하여 갈 수 있었다. 거대한 소나무가 병풍처럼 섬 뒤 쪽으로 둘러싸고 있었고, 입구에는 금표(禁標)비가 세워져

있다. 단종 임금이 기거 하시던 어소 옆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비(端廟在本府時遺址碑)라고 세워져 있었는데, 영조 임금의 친필이다. 그 뒷면에는 영조 39년 계미년 가을 울면서 받들어 쓰고, 어명에 의하여 원주 감영에서 세움. 지명은 청령포 이다’(한자가 너무 어려워서 생략함) 라고 적혀 있었다.

 이 곳 청령포는 수림지로서 소나무 하나하나에 일련번호를 붙여 훼손되지 않게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인 600년 된 관음송(觀音松)은 단종 임금이 유배생활을 할 때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또한 단종 임금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뜻에서 관음송이라 불리어 왔다 한다.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가니 망향탑이 있었는데,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 임금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단종 임금은 두 달 간 이곳 청령포에 기거하시다가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자, 영월 동헌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 버려진 단종 임금의 시신을 이 곳의 호장 엄흥도가 몰래 목숨을 걸고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동을 지산 자락장릉(숙종 때 복위)으로 모셨다 한다. 순간 우리 콩시루 회원들은 숙연해 지는 것 같았고,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먹먹함도 잠시 일정 때문에 단종 임금이 묻힌 장릉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장릉 입구에 서 있었는데, 상인이 노점에서 구운 밤을 나눠 줘서 먹었더니, 매우 맛있었다, 역시 강원도 사람들은 인심이 후한 가 보다! 이 곳 영월은 곤드레 밥이 유명 하다고 해서 우리는 곤드레 밥, 감자전 , 도토리묵. 막걸리를 시켰다. 곤드레 밥은 도시에서 먹는 밥과는 달리 나물이 3배 정도 들어가 있었고 곤드레 장아찌와 산나물은 짜지 않고 담백했다. 막걸리는 한도훈 선생님의 판소리를 듣기 위해 시켰는데, 이날 우리는 끝끝내 선생님의 판소리를 듣지 못 했다. 다음에는 막걸리를 좀 더 많이 사 드리고 판소리를 꼭 청해 보리라!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곧 나올 부천향토역사지도에 대해 최종적으로 보완 할 것에 대해서 얘기 하고, 오전의 피로를 살짝 풀었다.

 

 바쁘게 움직여야 해서 곧 장릉으로 올라갔다. 다른 왕릉과 달리 이 곳 장릉은 정자각에서 보면 왕릉이 언덕위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몰래 시신을 수습해 묻어야 해서 이 장소가 된 거 같다. 어떤 지관이 보아도 이 곳 장릉은 명당이라 한다.

 이 곳 왕릉은 오랫동안 위치를 알 수 없다가 1541(중종36) 당시 영월 군수 박충원이 찾아 내어 묘역을 정비 하였고 1580(선조13)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등을 세웠다.1681(숙종7) 단종 임금은노산(魯山)대군으로 추복되고, 1698(숙종24) 단종으로 추복되었으며, 호는 장릉(莊陵)으로 정해졌다.

 장릉이 다른 왕릉과 다른점은 병풍석과 난간석 그리고 왕권을 상징하는 무인석이 없다. 그리고 석물 또한 단출하다. 단종 임금은 무인세력에 의해 돌아가신 연유로 무인석을 세우지 않았다고 신민정 선생님이 얘기 해 주셨다. 릉이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는 단종 임금을 위해 순절한 충신을 비롯한 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配食壇祠), 단종 임금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정려비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 기적비, 정자각, 홍살문, 재실, 정자(배견정)이 있다. 장릉 옆에 단종 역사관이 있어 들어가서 살펴보았는데, 단종 임금의 생애와 사육신의 충절을 되새기기 위해 세운 전시관이다. 더 자세히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부족해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어진 다음 코스는 한반도 지형이 있는 선암마을이다, 뗏목을 타고 주변을 돌 예정이다. 계단을 10여 분에 거쳐 부지런히 올라가니 전망대가 나왔다, 눈 아래로 보이는 시원한 강과 한반도 지형의 작은 섬은 가히 신기하고도 환상적이었다, 우리는 모두 신기해하며 사진을 많이 찍어 댔다.

 한반도 동고서저의 지형적 특색을 모식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모래톱은 서해안의 간석지를 닮았다. 전망대 산길 주변 평탄한 곳이 바로 평창강(서강)의 하안단구이며, 이곳에는 석회암의 용식 지형인 돌리네가 나타난다. 우리는 물살이 너무 느려 예정 되어 있던 뗏목타기를 포기 하고, 선돌을 보러 발걸음을 옮겼다. 내려 올 때는 올라왔던 길이 아닌 반대편인 오솔길로 나왔는데, 군데군데 피어 있는 작은 꽃들과 나무를 보는 재미가 쏠쏠 했다.

 버스를 타고 십여 분 정도 이동해서, 돌이 많이 있는 산길을 20분 정도 걸어갔다. 돌이 많은 것은 이 지역의 지형을 말해 준다. 영월은 석회암 광산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이것을 채취하여 잘게 부수어 시멘트 공장으로 운반하는 시설이 있다.

 

 전망대 아래로 펼쳐진 장엄한 두 갈래의 우뚝 솟아 있는 바위를 선돌이라 불리어 오고 있으며 평

창강(서강)의 푸른물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마치 한국화를 보는 듯 한 느낌을 준다 하여 신선(神仙)암이라고도 한다. 선돌 아래 깊은 소()에는 자라바위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선돌 아래 동네 남애 마을에 장수가 태어나 적과의 싸움에서 패하자 이 곳에서 투신 자라바위가 되었다고 하며 선돌을 바라 보며 소원을 빌면 한 가지씩 꼭 이루어진다는 설화가 전하여 오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인 1820(순조)에 영월부사를 지낸 홍이간과 뛰어난 문장가로서 풍류생활을 즐기던 오희상, 홍직필 세 사람이 구름에 쌓인 선돌의 경관에 반하여 시를 읊으면서 선돌의 암벽에다 [운장벽]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고 붉은 색을 칠한 것이 지금도 남아있다.

 

 선돌을 바라보며 나는 내 가족의 건강을 빌어 보았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건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콩시루 회원들과 선생님들은 어떤 소원을 비셨는지 궁금하다. 오늘의 여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고 느끼게 해 주었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고 새로운 학문을 접하면서 우리에게 끝없이 공부할 것에 대한 물음을 던져 준다. 오늘 학창시절에 힘들어 했던 지리와 과학시간을 생각하게 했던 당황스럽고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어느 곳을 여행하는 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들과 여행을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진지하게 다가온 하루였다. 항상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더불어 미래에 신민정 선생님처럼 역사, 자연, 생태, 과학이 모든 것을 총 망라 할 수 있는 내 자신을 상상하며 이글을 마친다.

 

| 이미영

이미영 조합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421-810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수도로 69(삼정동)  |  각종문의 : 032)672-7472  |  팩스 : 032)673-7474
등록번호 : 경기, 아50581  |   등록일 : 2013. 1. 18.  |  발행연월일 : 2014. 2.19. | 사업자등록번호 : 130-86-90224
발행인 겸 편집인 : 오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오산
Copyright © 2017 콩나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