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들녘 금개구리 논, 농사일지

 

 대장동 벌판에 공단을 만든다는 계획이 기정사실처럼 되고 있습니다. ‘환경도 좋지만 개발을 해야 지역이 발전하지’라는 생각에 다들 방관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대장들녘 한 귀퉁이를 빌려서 시민들이 농사를 짓기로 했습니다. 개발 위기에 처한 대장들녘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각오로 참가한 분도 있고, 자연과 가까이 하고 싶다는 의지로 참가한 분도 있었습니다. 뜻밖에 어린이들이 있는 가정들이 많이 신청했습니다. 대부분 처음해 보는 농사일이라 우왕좌왕하고 어색했지만 매 순간 감격하고 행복해 했습니다. <대장들녘 금개구리 논> 초보농사꾼들의 한 해 농사를 사진과 글로 정리했습니다.

 

 

4월 20일 토종볍씨 모셔오기

 고양에 귀농하여 토종종자를 지키고 계시는 우보농장의 이근이 농부를 찾아가서 토종볍씨 7종을 모셔 왔습니다. 종자는 파는 것이 아니라 하셔서 한나절 품앗이로 대신하고 가을에 추수하여 10배로 갚는 조건으로 그저 얻어왔습니다. 말이 품앗이지 농사지식을 공짜로 전수받는 자리였습니다. 우리 땅에서 나는 토종벼가 1,450여 종이나 된답니다. 놀랍지요? 우리는 자광도, 자치나, 흑도, 대추벼, 흑갱, 대궐찰, 조동지 등 7종을 모셔왔습니다.

 

 

4월 26일 볍씨 소독, 침종

 모판을 만들기 위해 종자를 소독하여 물에 담궜습니다. 벼를 손바닥으로 비벼서 까락(벼에 달린 수염)을 제거한 다음 물을 부어 검불이나 겨를 제거 합니다. 이번에는 소금물에 담궈서 속이 부실한 쭉정이들을 제거합니다. 소금의 농도는 계란이 뜰 정도로. 이 과정을 ‘염수선’ 이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60-65도의 물로 열탕 소독을 했습니다. 이제 볍씨 종류별로 그릇에 담아 두고 매일 물을 갈아주며 일주일가량 기다리면 볍씨가 발아합니다.

 

4월 29일 가족농부 첫 모임

 올 한 해 동안 함께 농사지을 식구들이 모여 첫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같이 농사를 짓고 그 쌀을 나눠먹을 예정이니 식구가 맞네요. 우보농장 이근이 농부님이 오셔서 토종볍씨 이야기를 나눠주시고, 지난해 강서구 지역 대장벌에서 논농사를 지은 경험이 있는 물푸레생태교육센터 박재선 선생님도 오셔서 경험담을 나눠주셨습니다. 아이들도 함께 와서 시끌벅적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5월 3일 모판 만들기

 침종한 볍씨의 뿌리가 너무 길게 자랄까봐 마음 졸이며 이 날을 기다렸습니다. 모판에 부드러운 상토를 깔고 물을 흠뻑 뿌린 후 뽀송뽀송한 볍씨를 살살 뿌려 줍니다. 그 위에 다시 상토를 덮어주면 모판 만들기 끝! 만든 모판은 층층이 쌓아서 따뜻하게 덮어 놓고 왔습니다. 모가 15cm 정도 자라면 모내기를 할 수 있다네요. 모판만들기를 끝낸 후 아직은 써래질이 안된 우리 논을 둘러보았습니다. 논갈기, 써래질 같은 기계작업은 농부의 도움을 빌려야 합니다.

 

 

5월 20일 모판 나르기

모내기 날은 5월 27일로 잡아 뒀는데 모가 너무 웃자란 것 같습니다. 초보농부들은 주말에 맞춰야 시간들을 낼 수 있는데 자연은 우리 시간에 맞춰주지 않는 거지요. 모가 더 자라지 못하도록 따뜻한 하우스에서 꺼내서 써래질이 끝난 우리 논에 담가뒀습니다.

 

5월 27일 시농제와 모내기

 가족농부 60여명이 모였습니다. 생태보호종 금개구리가 와서 살라고 금개구리 논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우리 농사를 잘 돌봐 달라며 천지신명께 고사를 지내고 풍물도 치니 그럴 듯 하네요. 부드러운 논에 발을 담그고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손모내기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모 한 줄 심고서 바로 논 속으로 슬라이딩! 못줄 잡는 사람도 처음이고 모 내는 사람도 처음입니다. 이론으로 배운 농사가 잘될지 걱정이지만 다들 흐뭇합니다. 소를 잡아 설렁탕을 끓이지는 못했지만 모내기를 마치고 함께 먹는 잔치국수와 부침개는 꿀맛입니다.

 

 
 

6월 24일 금개구리논 달빛 산책

 심어놓은 벼가 잘 자라는지 궁금한 분들은 그 사이에 몇 번씩 왔다 갔다 한 것 같습니다. 이 날은 어린이들을 위한 양서류 탐사를 진행했습니다. 잠자리채와 랜턴을 들고 저녁에 모여 개구리 합창을 감상했네요. 제일 위쪽에 심은 흑갱은 전멸했습니다. 그 쪽은 처음부터 논바닥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나더니 그 영향인 것 같습니다.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흙을 복토한 탓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논바닥에 뾰족한 돌덩이가 너무 많아서 맨발로 다니기 힘들 정도였던 기억이 납니다. 개발과 돈의 위력은 이미 논바닥에 깔려 있었습니다.

 

6월 25일 논두렁 제초

 논두렁에 풀이 제법 자랐습니다.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기로 했으니 풀을 깎아줘야 합니다. 농부아저씨의 예초기를 빌려서 논두렁 풀을 깎고 콩이랑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논의 모는 바람에 잎을 살랑살랑 흔들며 뿌리를 잘 내리고 있다고 반겨주네요. 남쪽 지방에서는 가뭄으로 모내기를 못해 애를 태운다는데, 이곳은 한강물을 끌어오니 물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농부아저씨가 풀 뜯어 먹으라고 우렁이를 방사했다고 합니다. 벼 포기에 분홍색 우렁이 알이 많이 붙어 있습니다.

 

 

7월 22일 제초작업

 벼가 제법 자라서 허리만큼 올라왔습니다. 피를 뽑자고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농약을 안쓰기로 했으니 피사리는 감수해야죠. 그런데 우렁이 덕분인지 신기할 정도로 풀이 없습니다. 번식이 너무 잘되는 외래종이라 생태교란의 염려가 있다 해서 꺼림직 했는데 어쨌든 고맙습니다. 일 없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며 벼 포기 사이를 걸어다녔네요. 논 속에 사는 생물들과 볏 잎에 매달린 풀벌레들이 신기합니다.

 

8월 19일 세밀화 그리기

 논에 벼 이삭이 팼습니다. 하얀 벼 꽃이 예쁘게 달렸습니다. 우리 종자들 중에 조생종이 제법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기록해 두자며 더위가 누그러진 해그름에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화판에 스케치북을 펼쳐들고 논두렁에 둘러앉으니 그럴듯한 그림이 됐습니다.

 

 

8월 27일 쓰러진 벼 세우기

 올 여름에는 비가 쉴 새 없이 오네요. 8월 24일 장마비로 벼가 쓰러졌습니다. 알곡이 먼저 영글어가던 대궐찰과 흑도 일부가 먼저 누워버렸네요. 평일이라 시간 맞는 사람들을 급히 소집하여 벼를 세우기로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항공방제 때문에 논에 못나간답니다. 부천시에서 비용을 지원하여 친환경 약제를 두 번 뿌려주는데 이 날이 그 날이었던 것입니다. 일요일 날 시간을 내서 쓰러진 벼를 세웠습니다. 토종벼는 키가 월등히 커서 쓰러지기도 잘한다고 합니다.

 

 

9월 9일 대궐찰 추수

 쓰러졌던 대궐찰과 흑도를 세우고 고춧대까지 의지하여 묶어줬지만 한 번 쓰러진 후라 영 버티지 못합니다. 물에 담긴 이삭도 생겼습니다. 어느 정도 알곡이 여물었다고 판단하여 대궐찰은 추수를 했습니다. 잘라서 홀테로 이삭을 떨어보니 2kg이나 될까 말까 합니다. 잘 말려 두긴 했는데 도정할 일이 걱정입니다.

 

9월 21일 다시 쓰러진 벼

 엊그제 저녁에 잠깐 퍼 부운 세찬 비에 나머지 흑도와 자광도가 쓰러졌네요. 다시 논에 가서 세워주고 물에 잠긴 흑도는 베서 말리느라 하우스에 묶어 두었습니다. 좀 일찍 추수하는게 낫겠다싶어서 10월 7일로 추수날을 잡았습니다.

 

10월 7일 조생종 3종 추수

 추석연휴의 막바지에 추수꾼들이 모였습니다. 흑도, 자광도, 자치나를 추수하기로 했습니다. 서투른 낫질로 벼를 베고 수확의 기쁨에 들떠 포즈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벼만 베면 추수가 끝인 줄 알았던거죠. 그러나 남은 일이 더 많습니다. 볏단을 옮기고 탈곡기로 낱알을 떨어서 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농주 한 잔을 새참으로 마시고 남은 일을 마무리하니 맛있는 들밥이 기다리네요.

 

 

 이렇게 초보농사꾼들의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떨어낸 알곡을 말리고 잡티를 제거하여 도정하는 일입니다. 남은 대추벼와 조동지를 추수하는 날 먼저 도정한 쌀로 밥을 지어 함께 나눠 먹어야겠네요.

 

 

 공장에서 만들어내듯 농사하는 시대에 이런 원시적인 농사를 지어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들은 주말에 겨우 짬을 내 농사하면서도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내 신체를 써서 노동한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물을 내가 만난다는 것만으로 훌륭한 공부를 한 셈입니다. 농사가 아니면 이런 기쁨을 맛볼 일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기억에서 사라진 벼농사의 경험을 다시 불러오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부디 대장들녘이 그대로 보전되어 내년에도, 후내년에도 이런 기쁨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글 | 윤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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