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집

  시 | 서금숙

 

사람을 까먹었다

편안한 잠을 까먹었다

까먹은 기억을 까먹었다

집은

포장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었다

사람 없음을 표시 해놓은 빈 상자다

커다란 짐짝이 되어 포장테이프로 입을 막았다

 

단층집 옆 이층집 옆 미용실 옆 수선 집 옆

지름길을 가려고 시작된 행보가

느티나무 숲길을 이루고 평상에 앉았을 마을 풍경 안

상심의 저녁을 건너다 봐야하는 곳으로 점찍어 두었지만

버릴 것인가

버려질 것인가

실존의 언덕을 돌아설 뿐

소유했던

집은, 시간은 있었던가

 

개가 짖어대던 골목

버려진 화분이 버려진 집을 지킨다

 

칼과 도마가 사라졌는데 안전하지 않다

진혼곡이 흐르는 영혼 없는 그림자만 섰다

토닥이는 그릇소리, 옹기종기 밥 먹는 소리,

쏼라거리며 넘나들던 셋방사람들의 웃음소리,

난닝구 구멍을 뚫고 날아온 술로 푸는

그간의 이야기가 살아남지 못했다

사람이 나가고 물도 나가고 전기도 나가고

캭 하고 뱉어 낼 가래침도 없다

두고 온 빈 상자 홀리는 트럭야채장수의 목청도 없다

 

더 작은 상자 속으로 실려 간 사람들

집에 매달린 믿음을 버렸다

버려진 상자 안에 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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