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버들에서 왕버즘나무, 느티나무, 벚나무등으로 진화해...

 

 

 부천의 가로수에도 역사가 있다.

수양버들에서 왕버즘나무, 느티나무, 벚나무등으로

진화해...

 

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hansan21@naver.com

 

● 조선시대 가로수 역사

부천의 가로수에도 역사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사람들은 가로수를 보면 무작위적으로 심어진 것 같은데... 반문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부천시 전체 도로에 다품종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부천의 도로 전문가인 문정욱 택시기사와 함께 부천 가로수에 대한 답사를 진행했다. 부천 시내 곳곳을 돌며 가로수 역사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선시대 때 도로에도 가로수가 심어져 있었다. 하지만 질서 정연하게 심어진 것은 아니었다. 도로로 연결 된 마을 입구 정도에 그쳤다. 조선시대엔 대로(大路)라고 해봤자 우마차 정도 지나는 크기였다. 그러기에 이 대로 양쪽으로 가로수가 심어지진 않았다. 산을 넘고 마을을 지나면서 조금씩 필요에 의해 가로수가 심어졌다.

주로 한양 성곽 안을 가로지르는 대로에 심어져 있었다. 주로 홰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졌다. 이 거리를 괴가(槐街)라고 했다. 조선 선비들이 남긴 가로수에 대한 시조들을 읽어보면 가로수 그늘에서 쉬어가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곡산 북방산수기에도 가로수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10리를 가니 큰 여울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이파탄(銕耙灘)이라고 하였다. 물 흐르는 것이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 배가 곧장 거꾸러질 듯 내닫는데, 흰 물결이 번갈아 배 안으로 튀어 들어와 옷과 띠가 모두 젖었으나, 역시 마음은 즐거웠다. 거센 물살을 지나자 물결이 다시 잔잔해졌으며, 강 언덕은 평평하게 퍼졌는데, 버드나무 그늘에서 부로(父老)들이 술을 가지고 와서 나를 기다렸다. 그 마을의 이름을 물으니 송현촌(松峴村)이라 했다. 그 마을 맞은편에는 평평한 언덕이 팔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그 위에는 우거진 숲과 쭉쭉 뻗은 가로수가 있었는데, 역시 보기가 좋았다. 5리를 더 가서 동창(東倉)에 이르렀는데, 여기가 바로 생황촌(笙篁村)이다. 이 마을 터는 평평하고 넓었으며, 안계(眼界)가 멀직하게 탁 트여서 송현(松峴)보다 나았다. 이날은 동창에서 묵었다.

-다산 정약용의 곡산 북방산수기(谷山 北坊山水記) 일부 인용

 

● 일제강점기 때 부천의 가로수, 수양버들

 본격적으로 가로수가 심어지기 시작한 때는 일제강점기이다. 일제는 조선에 대한 통치 일환으로 제일 먼저 도로 건설에 나섰다. 일명 신작로(新作路). 부천에도 이 신작로가 많이 건설되었다. 이 신작로에 가로수가 처음으로 심어졌다. 수종은 수양버들이었다.

부천에서 제일 길게 닦아진 신작로는 깊은구지에서 진말을 지나고 벌막 오거리를 지난 다음 조마루나 겉저리를 지났다. 당하리를 거쳐 점말, 성골을 지났다. 그런 다음 멧마루를 지나고 외오쇠리로 표기된 밖오시를 지났다. 이 신작로에 수양버들이 심어졌다.

현재 이 수양버들이 유물로 남아있는 구간이 있다. 멧마루에서 오쇠리로 가는 길 양켠에 고목이 되어 있다. 봉오대로 아래를 지나면 수양버들 가지가 휘날리는 도로를 지나게 된다. 이 신작로를 닦으면서 수양버들이 심어졌기에 그들의 나이가 100여년이 훌쩍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오쇠삼거리로 가는 소사로이다. 예전에는 오쇠리길로 불렸다. 오쇠리 마을로 이어지던 도로 양켠에도 수양버들이 심어져 있었지만 마을을 철거한 뒤 많이 베어졌다. 지금은 오쇠리 아래에서 봉오대로 아래까지 수양버들 가로수가 남아있다.

문정욱 택시기사는 “부천에서 가장 오래된 가로수입니다. 고목이지요. 만약에 이 도로가 개발된다면 부천에서 가장 오래된 가로수를 베어 버리겠지요. 이 수양버들을 부천시에서 가장 소중하게 보존했으면 합니다.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하겠지요.”라고 설명했다.

부천에서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원로들에게 물었을 때 신작로에는 수양버들이 심어져 있었다고 증언해 주었다.

벌응절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 범박 마을로 들어가는 길, 시우물로 가던 길, 장말로 가던 길 등에 수양버들이 심어져 있었다. 일제가 가로수로 수양버들은 택한 것은 당시 조선 선비를 비롯한 민중들이 좋아하던 나무였기 때문이었다. 조선 강점에 대해 반감(反感)을 줄이면서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어서 였다. 다 자라면 잎가지가 축축 늘어져 큰 그늘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었다. 당시 민중들은 신작로를 걷다가 지치면 이 수양버들 그늘에 앉아 쉬어가곤 했다. 창경궁 춘당지(春塘池)의 수양버들을 보면 그 자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이후 수양버들 수나무가 뿌리는 하얀 솜털인 홀씨 때문에 사람들은 호흡기 알레르기와 천식을 유발하는 주범으로 낙인을 찍혔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가지를 자랑하는 수양버들은 더 이상 가로수로 심지 않게 되었다.

 

 

● 도시화 된 뒤 부천의 가로수, 은행나무

부천이 70년대, 80년대부터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가로수 수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부천시 구도심에는 주택들이 빽빽하게 들어서면서 가로수를 심을 자리가 부족했다. 대신 구도심 큰 도로에는 은행나무가 차지했다. 도당 마을을 지나는 수도길 양켠에 심어진 은행나무가 대표적이다. 벌응절리에서 역곡역으로 이어진 길에 심어진 은행나무도 마찬가지이다. 역곡1,2 동 대부분의 도로에는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골목길에도 은행나무이다. 소사동 길가에도 은행나무는 심어져 있다. 한데 은행나무가 상가를 가린다고 해서 위쪽을 쳐 버려 은행나무는 아름다운 자태를 상실한 채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은행나무 열매에는 나는 고린내 때문에 사람들은 코를 싸매고 거리를 걷는다. 가을이면 길거리가 냄새로 가득 찬다. 더러 신발에 묻기라도 하면 질색하기 마련이다. 암나무, 수나무를 구별하지 않고 심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가로수로는 수나무만 심어야 하는데, 그 구별하던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에 심어진 것이라 그런 것이다. 이 은행 열매는 오염이 되어 식용으로 가능치 않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따가고, 주어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 암나무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 암나무들은 베어내고 수나무로 교체해야 한다.

 

 

● 보도블럭 교체의 주범, 플라타너스인 왕버즘나무

1990년대 중동들판이 중동신시가지로 대대적으로 개발되면서 가로수도 획기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수양버들, 은행나무가 주(主)였다면 이때부터는 왕버즘나무, 메타쉐콰이어, 느티나무, 벚나무 등이 주종을 이루게 되었다.

왕버즘나무는 플라타너스라고 한다. 인천의 만국공원에 우리나라 최초로 심어졌다. 이곳 왕버즘나무 나이는 133살(2017년 기준)이나 된다. 이후 왕버즘나무는 가로수로 각광을 받았다.

왕버즘나무는 그 형태가 얼굴에 많이 피는 버즘을 닮아 붙여졌다. 이 왕버즘나무는 피나무, 느릅나무, 칠엽수인 마로니에, 양버즘나무로 세계 4대 가로수이다. 거리에서 무시로 뿜어대는 이산화탄소 흡수율이 매우 높아 공기정화 능력이 뛰어나다. 그렇지만 왕버즘나무는 그 왕성한 생명력으로 인해 요즘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일반 도로의 가로수로 많이 심어졌지만 무성한 성장으로 인해 상가 간판을 보이지 않게 해서 수시로 전지를 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잎이 크고 나무도 커서 건물에 그늘이 생겨 햇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부천에선 부천역에서 김포공항까지 연결된 산업열차인 김포선이 운행을 중단하고 메워져 생긴 도로에 주로 심어졌다. 부천시민회관 앞 도로, 부천상공회의소 앞 도로, 부천소방소에서 연결된 도로, 계남초등학교 앞 도로, 송내역에서 연결된 도로, 원미공원 등에 왕버즘나무가 심어졌다. 이들 왕버즘나무는 윗부분이 단정하게 정지되어 있다. 도로표지판을 가리기 일쑤이기 때문에 행해졌다. 이를 위해 많은 인력들을 필요로 한다.

또 한 가지는 왕성한 성장으로 인해 뿌리가 빨리 밖으로 드러나 인도를 울퉁불퉁하게 만들기 일쑤이다. 덕분에 인도와 차도의 사이에 놓여진 보도블럭도 뒤틀리게 만들기 일쑤여서 보도블럭을 교체하게 만드는 주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돌로 만들어진 보도 블록은 100년이고 1,000년이고 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단단하다. 하지만 부천시 곳곳에 트럭들이 불법으로 주차하면서 보도블럭을 깨뜨려 보기 흉해지면 교체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먼저 트럭들 불법 주차 단속이 절실하다. 보도블럭도 교체할 때 깨어진 부분만 교체해야 하는데 한 지역의 보도블럭 전체를 교체해서 세금 낭비의 주범으로 손꼽히고 있다.

문정욱 택시기사는 “부천시에서 교체로 버려지는 보도블럭으로 성(城)을 쌓을 정도입니다. 깨어진 부분만 교체하면 되는데 가운데를 팍 쪼개서 버리기 때문에 낭비의 주범입니다. 돌을 쪼개지 않으면 폐기물처리장에서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지요”라고 지적했다.

 

● 느티나무, 메타쉐콰이어, 벚나무 등

느티나무는 중앙공원을 빙 둘러 심어져 있다. 가을이면 단풍 든 모습이 아름답다. 이를 기점으로 시청 앞 도로에도 심어져 있다. 롯데백화점에서 시우물로 가는 도로, 대추마루, 경인고속도 멧마루 지역, 멀뫼길인 소사로 등에도 느티나무가 심어져 있다. 느티나무는 잎이 무성해서 상가가 없는 곳에 주로 심어져 있다. 중동신시가지 아파트 단지에서 연결된 도로에는 어김없이 느티나무가 심어져 있어 풍성한 그늘을 제공한다.

메타쉐콰이어는 중동역에서 중앙공원까지 연결된 도로에 심어져 있다. 하늘 향해 쭉 뻗은 모습이 아름답다. 중앙공원에서 부천우체국집중국 방향으로도 심어져 있다. 담양 메타쉐콰이어길이 각광을 받으면서 가로수로 많이 심어지고 있다.

벚나무는 수주 변영로를 기리기 위해 만든 수주로, 지금은 주소가 도로명으로 바뀌면서 역곡역을 기점으로 한다고 해서 붙여진 역곡로에 심어져 있다. 이 역곡로는 봄이면 찬란하게 꽃피우는 벚꽃으로 인해 장관을 이룬다. 그 길이 길지 않지만 산책하는 이들에겐 최고의 길로 각광을 받고 있다. 도당 우산방죽골을 장식하면서 벚꽃축제를 벌이는 벚나무랑 부천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전국에서 벚나무가 많이 심어져 벚꽃축제가 벌어지는 곳이 많다. 여의도 윤중로, 전주 군산가도인 전군가도, 하동 십리 벚꽃길 등이 유명하다.

이밖에도 중동신시가지에 홰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가로수로써 품격을 더해주고 있다.

이렇게 부천의 가로수는 수양버들에서 다양한 수종으로 변화를 가져왔다. 만약에 중동신시가지에 벚나무가 다 심어져 있었다면 수도권에선 최고의 벚꽃축제로 각광을 받고 있을 것이다. 인천대공원의 벚꽃길처럼 말이다. 앞으로는 가로수도 지역에 맞추거나 벚나무 같은 꽃축제를 병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서울에선 성곽길 중심으로 쌀나무로 불리는 이팝나무를 많이 심은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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