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을 담는 선거제도

지방자치와 시민의 역할(3)

 

편집자 주 | 부천시의회 윤병국 의원(3선, 무소속)이 『2017 지방의원 매니페스토 약속대상』에 선정되었다. 그는 이전에도 2009년 제1회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기초의원부문 최우수상, 2013년 지방의원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 우수상, 2014년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지방선거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세 번의 임기마다 모두 수상하는 영애를 안았다.

윤병국 의원은 『지방자치 새로 고침』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지난 2일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했다. 본지는 6개월 앞으로 다가온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자치, 선거제도, 민주주의를 주제로 그로부터 다섯 번의 기고를 싣기로 했다. 1. 촛불과 정치개혁 2. 독과점 지방자치 3. 민심을 담는 선거제도 4. 시민의 직접참여 5. 새로운 정치실험. 그 세 번째 이야기다.

 

 

민심을 담는 선거제도

 

거대양당의 후보라야만 당선될 수 있는 선거, 일당독점이 횡행하는 지역정치. 수도권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실제로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에서 선거 때마다 반복되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이상한 선거제도가 자리잡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선거(투표)는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수렴하기 위한 방법이고, 여러 사람들의 연구를 통해 탄생한 발명품이다. 사회적으로 합의만 된다면 다양한 선거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후보들에게 점수를 매기면 어떨까? 또는 도저히 당선돼서는 안 될 것 같은 사람에게 반대를 표시하는 ‘부(負)의 투표’는 안될까? 투표용지에 ‘뽑을 사람 없음’이라는 칸을 만들어도 재미있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선거가 무슨 애들 장난이냐, 나라 일 할 중요한 사람을 뽑는 일이다’며 반박할 것이다. 최악의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으려면 차악(次惡)이라도 선택해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선거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을 뽑을 때는 지지하는 모든 후보에게 투표하게 한다. 룩셈부르크에서는 선거구에서 선출하도록 되어 있는 수만큼 투표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한 명에게는 두 표까지도 허용한다. 남태평양의 나우루공화국에서는 후보의 순위를 매기는 투표법을 40년 이상 사용하고 있다. 호주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식을 사용한다. 일본의 많은 지자체에서는 시의원 전체를 단일 선거구로 뽑는데, 당선자가 30명이 넘는 대선거구도 흔하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한 표라도 많이 득표한 후보가 당선되는 단순다수제 선거를 적용한다. 올해 있었던 프랑스 대선의 결선투표 같은 것은 해 본 적이 없다. 결선투표제는 항상 과반의 지지를 얻은 후보가 당선되도록 보장해 준다. 호주에서는 한 선거구에서 복수의 당선자를 배출하면서도 항상 과반의 지지를 보장하는 제도를 사용한다. 모든 후보에게 순위를 매겨서 집계하는 방식이다. 일본처럼 한 선거구에서 30명을 뽑으면서 한 명에게만 투표하게 하면 아주 적은 득표로 당선되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인데, 순위투표는 이런 폐단을 막을 수 있다. 어떤 선거제도가 나은지는 그 나라의 상황과 문화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소선거구 단순다수제가 최선이라는 말은 못하겠다.

 

우리나라 선거제도의 더 큰 문제는 득표율과 의석수가 불일치하는 것이다. 2012년의 19대 총선의 사례를 보면 새누리당은 영남에서 54.7%의 득표를 하고도 영남 의석의 94%를 차지했으며, 민주당은 호남에서 53.1%를 득표했지만 호남 의석의 83%를 차지했다.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영남에서 18.2%를 차지했지만 지역구 당선자는 한 명도 내지 못했고, 호남에서는 47.97%만 득표하고도 호남 전체의석 28석 중 23석을 차지했다.

득표율과 의석수가 일치하지 않는 이런 이상한 선거제도는 양당정치를 고착시킨다. 한 표만 많아도 당선되기 때문에 정당들은 중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하고, 그러다보니 정당들의 정체성 구분이 어려워지며, 결국 1~2등을 할 수 있는 거대정당만 살아남는다. 이런 단순다수제 소선거구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 일본, 영국, 그리고 우리나라다. 양당제가 고착돼 있는 나라들이다.

 

반면 유럽 선진복지국가들은 대부분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적용하고 있다.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수를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다당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하는 정당이 나오기 힘들어 연정을 통해 협상하고 양보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현재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정치개혁 공동행동의 대표적인 정치개혁 요구다.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무산됐지만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가 도입을 제안한 적도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인가? 전체 의원수가 300명인데 지역구에서 200명, 비례대표로 100명을 뽑는다고 가정하자. 선거 결과 A정당의 후보들이 30%를 득표했으면 A정당은 전체 90석을 차지할 수 있다. 이 때 지역구 당선자가 60명이라면 A정당은 비례대표 30석을 가지는 것이고, 지역구 당선자가 45명이라면 비례대표 45석을 가지는 식이다. 이런 제도라면 유권자들은 사표를 생각하지 않고 지지정당에 소신껏 투표할 수 있다. 어떤 정당이든지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다양한 가치가 정치적 힘을 가질 수 있다.

 

우리나라도 비례대표제가 있다며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당투표 결과를 전체 300석의 의석배분에 적용하지 않고 단지 47석의 비례대표 의원을 배분하는 데만 사용한다. 2016년 총선에서 정의당이 정당투표에서 7.23%를 얻었는데 전체 300석에 이를 적용했으면 22석을 배정받을 수 있었겠지만 비례대표 47석에 적용함으로써 비례 4석, 지역구 당선 2석에 그친 것을 보면 이해가 쉽다. 이런 제도는 양당정치 타파에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한다.

 

선거제도 개혁이 개헌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현재의 국회구성으로 개헌안을 만들기도 어렵고, 설령 만든다 해도 기대할만한 것이 못된다는 의미가 반영된 진단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양당체제를 바꿔야 개헌을 포함한 개혁조치가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경우 1993년에 연동형비례대표제로 개혁한 이후 다양한 정치세력이 국회에 진출했으며 비로소 신자유주의의 길을 벗어났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선거제도를 바꾼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은 ‘병립형 비례대표를 포함한 소선거구제’를 채택한 결과 양당제와 보수 장기집권이 이어지고 있다. 뉴질랜드와 일본의 차이는 선거제도 개혁의 칼자루를 국민에게 이양했는가, 아니면 국회가 쥐고 있었는가에 있다. 국회에 선거제도 개혁을 맡기는 것은 자신의 몸에 메스를 대는 일과 같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은 촛불의 요구였다. 그런데도 국민의 참여는 형식적이고 실제 진행은 국회에 맡겨져 있다. 뉴질랜드가 아니더라도 국민회의를 구성하여 국민들에게 개헌안을 만들고 선거제도 개혁을 맡긴 사례는 많다.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캐나다 등에서 이런 실험이 진행됐다. 참여자도 추첨으로 뽑힌 일반 국민이었다. 핵발전소 건설 중단 여부를 놓고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한 것도 이와 비슷한 일이었다. 기간이 짧았다는 평가가 많은데, 1년 가까운 시간을 두고 국민회의를 진행한 외국의 사례를 참조해야 한다.

 

지방자치에도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적용해야함은 물론이다. 영국은 국회의원 선거는 소선거구제로 하지만 런던시의회는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적용하고 있다. 런던시의회는 전체 의석이 25석인데 지역구에서 14명을 뽑고 비례대표로 11명을 뽑는다. 의석수가 많아야 가능한 제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에 갑자기 적용하기 전에 지방의회에서 적용해 볼 수 있었는데, 시기적으로 거의 기회를 잃은 것 같다. 몇 군데의 시험실시도 가능했던 일이다.

 

지방선거는 당장 닥친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여전히 개혁 없는 기존 제도로 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 둘로 쪼개버리는 것이라도 막아야 한다. 19세 이상으로 제한돼 있는 선거연령을 낮추고 25세 이상으로 제한된 피선거권을 낮추는 개혁이라도 했어야 했다.

 

현행 선거제도는 사실상 정당공천을 받은 후보만 당선될 수 있음은 앞서 살핀 대로다. 이런 상황에서 높은 선거비용은 당선가능성이 낮은 후보의 도전 자체를 아예 차단해 버린다. 기초의원 선거에만도 5천만 원 가깝게 잡힌 선거비용 상한액도 낮추고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비용을 돌려준다는 기준을 낮춰야 한다. 정치는 정당에만 허용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고 싶으면 정당 설립을 자유롭게 허용하든지.

 

사족 : 유세차 옆에서 춤추는 선거운동원을 고용하지 못하게만 해도 선거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단체로 문자메세지 발송 한 번 하는데 수십만 원이 들어가지만 유권자에게는 짜증의 대상이다. 폐지해도 시원찮을 판에 횟수를 늘렸다. 이런 것만 고쳐도 선거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다.

 

글 | 윤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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