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와 시민의 역할(4)

지방자치와 시민의 역할(4)

 

편집자 주 | 부천시의회 윤병국 의원(3선, 무소속)이 『2017 지방의원 매니페스토 약속대상』에 선정되었다. 그는 이전에도 2009년 제1회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기초의원부문 최우수상, 2013년 지방의원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 우수상, 2014년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지방선거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세 번의 임기마다 모두 수상하는 영애를 안았다.

윤병국 의원은 『지방자치 새로 고침』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지난 2일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했다. 본지는 6개월 앞으로 다가온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자치, 선거제도, 민주주의를 주제로 그로부터 다섯 번의 기고를 싣기로 했다. 1. 촛불과 정치개혁 2. 독과점 지방자치 3. 민심을 담는 선거제도 4. 시민의 직접참여 5. 새로운 정치실험. 그 네 번째 이야기다.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

 

선거는 발명품이다. 18세기 말, 시민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제가 도입될 때 발명된 골동품이다. 물론 많이 고쳐지기는 했다. 처음에는 재산이 있는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주던 것이 보통선거로 확대됐고, 생각보다 오래 되지 않았지만 여성참정권은 당연한 것이 됐다. 그러나 투표소에 나가서 후보를 선택하는 기본 틀은 변한 것이 없다. 200년 전의 정보통신 기술과 인쇄술에 기반하여 고안된 제도를 아직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매체를 이용한 TV토론이 도입됐다지만 대통령 선거에 국한하여 활용될 뿐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뉴미디어가 생겨났지만, 국정원 댓글공작에서 보았듯이 선거에서는 역기능도 많이 한다. 유세차와 선거운동원이 후보자 선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아직도 벽보와 공보물이 주요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가 유일한 방법일까? 250년 전에 루소는 ‘선거 날에만 주인’이라며 평했는데, 아직도 그 제도가 유일한 대안처럼 사용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더 효율적으로 수렴할 방법이 없을까?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직접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촛불집회 자체가 사실상 직접 민주주의의 발현이었다. 국정농단 사태가 권력집중에서 비롯됐으며, 국회가 탄핵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해서 시민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기원을 찾으며, 모든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민회를 그 핵심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민회는 4만 명의 성인남성 중에서 겨우 6천 명 정도만 참여했다. 매월 개최되는 민회가 모든 권한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시민들 중에서 제비뽑기(추첨)로 구성하는 기구들에 근간이 있었다. 아테네는 500인 평의회, 민중법원, 행정직이 권력을 분립하고 있었으며, 이 기구들 중 대부분은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이 담당했다는 것이다.

 

선거로 대표를 뽑는 제도는 18세기 프랑스대혁명과 미국의 건국과정에서 처음 탄생한 것이다. 그 때의 대의제는 권력을 인민에게 돌려주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왕정을 대신하여 선거에 의한 소수특권정치를 고안해 낸 것일 뿐이었다. 투표권도 돈 있는 남성들에게만 주어졌다. 선거는 보통시민보다 우월한 엘리트를 시민들의 지도자로 선출하는 일이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선거를 몰라서 200년씩이나 평범한 시민들에게 공무를 맡기는 제도를 고수했을까? 추첨으로 뽑힌 사람들은 정해진 임기가 끝나면 물러나야 했으며 같은 직을 다시는 맡을 수 없었다. 공평한 기회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추첨민주주의는 단지 상상이 아니다. 현대사회에서도 재판에서 추첨에 의한 배심원을 활용하고 있다. 추첨방식으로 의회를 구성하자는 정치학자도 있다. 선거로 뽑는 의회와는 별개로 추첨원을 두고 거기에서는 장기적이고 주요한 정책과제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개헌논의나 선거제도개혁 등 정치인들에게 맡겨서 답이 잘 나오지 않는 과제를 논의대상으로 제시했다.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캐나다 등에서 ‘국민회의’를 만들어 이런 논의를 해 낸 사례도 있다. 최근 핵발전소 공사중단을 놓고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한 것도 이와 유사한 일로 볼 수 있다. 이런 일을 실험하기는 지방자치단체가 훨씬 적합하다. 권한은 없고 껍데기만 남아 있는 주민자치위원회, 참여예산제 등을 실질화 시키기에도 적합하다.

 

요컨데 대의민주주의가 만능이 아니라는 것이며,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법절차도 형식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의 선의를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글 | 윤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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