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여행

 

붉은 행복
 
   카톡 창에 여고시절 단짝 친구 네 명이 번개 팅을 했다. 포천, 안양, 부천, 서울 사는 곳이 달라도 모처럼 의견통합이다.
 
  30년 만에 이루어진 우리들의 여행. 용산역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고속전철은 미리 나와 대기하여 있고 여행자의 행선지를 재점검해준다. 졸업과 동시에 서울에 올라왔다. 낯선 서울에서 함께 의지하며 두터워진 우리의 우정 하루라도 안 보면 애 타는 사이가 되었다. 남들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가 묻지만 매일 얼굴을 대하다보면 할 말은 더 많이 생겨난다. 여름휴가도 날짜를 맞춰 넷이서 함께 다녔다. 내장산, 오대산, 용문산, 만리포 그중 이곳 용산역은 우리들의 추억 장소다. 역 광장에 돗자리를 깔고 밤 새워 기차표를 구하고 전쟁을 치르던 곳이다. 밀고, 밀치고 떠밀려 쓰러져도 젊은 패기와 친구가 곁에 있어 마냥 즐겁기만 했다. 불룩한 배낭엔 코펠, 쌀, 고추장, 손에는 카세트, 넘치는 정열은 주체할 수 없어 등에 메고 다녔다.
 
  채워지지 않는 젊음을 위해 우리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통행금지 시간도 밤 열시로 정해놓았다. 서로 안전한 귀가가 이루어 졌는지 집주인 눈치를 보며 거실에 놓여있던 안집 전화기로 확인을 해 본 후에 잠을 청했다. 이불깃을 끌어올리며 연인을 만나듯 내일의 만남도 기약했다. 자취생활은 굶는 날이 태반이다.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는 꿈을 꾼 날은 어김없이 늦잠자다 지각하는 날이다. 그런 날은 점심시간이 더디게 오고 배꼽시계는 잦은 신호음을 보내온다. 한 끼 굶어 허기진 배고픔보다 더 견대기 힘든 것은 아플 때의 서러움이다.
 
  그 시절 우리의 목마름은 무엇이었을까? 못 다한 배움의 갈증은 대학 캠퍼스를 기웃거리게 했다. 대학생들과의 미팅은 직장인이라는 것을 잊게 해 주었다. 또래의 여학생들이 부럽긴 했지만 나의 위치를 인정했다. 그들이 모르는 사회를 일찍 몸으로 익혀 상업학교에서 배운 대로 예금통장에 늘어나는 “자산의 증가”는 힘겨움도 잊어버릴 만큼 뿌듯함을 안겨준다. 그 시절 대다수 여자들은 학업을 포기하고 일찍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1950년대 말 태어난 가난한 나라의 시대적 희생물이기도 한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직장생활의 한계에 반항하여 뛰쳐나가고 싶어도 현실과 타협을 해야만 했다. 오빠들의 대학 학자금도 보태어야 하고 삶의 무게에 짓눌린 시골 부모님들의 생활비도 도와드려야 했다.
 
  친구 한명이 자취방에서 문틈으로 새어들어 온 연탄가스에 중독됐다. 스무 살에 생을 마감한 친구 소식은 우리 넷을 더 뭉쳐 다니게 만들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우정의 끈으로 꽁꽁 묶었다. 생일날 꽃을 사들고 서로의 자취방을 찾아가 우리만의 파티를 위해 미역국도 끓였다. 유리컵에 꽃을 꽃아 축하노래를 부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픔도 설움도 절로 풀렸다.
 
  한 친구가 결근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몸져누워있으리라는 근심에 서둘러 친구 집을 찾아갔다. 흐트러진 친구의 자취방 치우지 못한 밥상, 널 부러진 옷가지 황급히 나간 방주인의 모습을 제대로 알려준다. 무엇에 홀렸을까 그동안 봐왔던 친구의 차분한 모습이 아니다. 몰래 사귀던 남자와 일박 이일 여행을 떠났을까. 족집게처럼 의심은 항상 적중한다. 천생배필을 찾은 친구로 인해 우리사이는 귀퉁이 한쪽이 떨어져나간 듯 허물어져 갔다. 다음은 누가 먼저 결혼할까 서로에게 자극이 되어 짝을 찾아 나섰다.
 
  드문드문 얼굴 한 번씩 보여주던 우리의 만남은 각자의 결혼생활에 순응, 가끔 안부를 묻는 정도가 되었다. 예전의 추억은 결혼이라는 현실 속에 까마득히 잊혀져갔다. 각자의 자리에서 사업가의 내조자로, 요양원 원장으로 제 위치를 지키며 열심히 살았다.
 
  목포행 기차는 추억으로 달려간다. 어릴 적 친구 미자와는 각별한 사이다. 언니 둘, 동생하나 네 명이 동기 동창이다. 긴 인연만큼 할 이야기도 많다. 늦게 학사모를 쓴 친구이야기에 천안역 간판이 스쳐간다.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는 기찻길같이 길기만 하다. 아산, 익산, 목포역 도착이다. 목포 여객터미널로 자리를 옮겨 쾌속선을 탔다. 나이를 가름 할 수 없는 젊은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이루어진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홍도를 향한 유람선은 출렁이는 파도를 가르며 고동을 울린다.
 
  저녁 식후의 나른함이 오랜 소망이던 일탈의 하룻밤을 풀어버린다. 밤을 새워 이야기하자던 친구가 먼저 코를 곤다.
 
  유람선이 새벽을 깨운다. 홍도의 바위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금빛 비단이 깔린 듯 아침햇살이 바다 위로 펼쳐진다. 바위 위를 선회하는 갈매기 사이로 잠시 구름에 가려졌던 붉은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 벗들과 함께한 홍도의 아침. 지금의 이 행복은 힘겨운 젊은 날을 이겨낸 우리들의 보상이리라. 홍도의 바위는 여전히 붉다.
 
글 | 최명선
 
한국수필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리더스 에세이 회원
저서: 공저〈그래 힐링이 살아갈 힘이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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