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은 어떤 곳일까?

 

 

  2017-2018 겨울에 한동안 시베리아 같은 추위가 몰아쳐서 오랫동안 키운 화초가 죽고 말았습니다. 베란다에서 늘 그 자리에서 자라온 화초를 깜빡하고 만 것이죠. 춥기도 하고 세탁기도 못 돌리는 상황이 되니 베란다에 나가는 일이 줄어 상태를 늦게 알아차리게 된 것이죠. 발견하자마자 집안으로 들여 놓고 상태를 지켜봤는데 이미 풀이 죽기 시작한 화초는 속절없이 고개를 꺾고 말았습니다. 나무가 아니라 그런지 쇠퇴하는 속도가 무척 빠르게 느껴지더군요. 점점 말라 쪼그라들고 화석처럼 굳어서 죽은 화초를 바라보며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 이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안방 귀퉁이에 두고 생각날 때 마다 바라보니 환경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화초마다 자연스런 환경이 따로 있다.

 

  제가 키워본 화초들은 선물로 받고, 구매도 해서 다양합니다. 종류가 다양한 만큼 그에 맞춘 환경에서 자라야 하는데 집의 공간이 한정되어 같은 공간에서 키우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다 보니 많은 수의 화초들이 잘 살지 못하고 일정한 종류의 화초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왜 그런지 뻔한 일이지요. 그 화초들은 자신들이 커야할 환경에서 커야 하는데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고 말도 못하니 주인이 잘 보살펴 주지 않으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겹게 버티다 죽게 되는 겁니다. 보통의 자연환경은 특별한 관리를 해주지 않아도 쑥쑥 자라지만, 인간이 만든 환경은 잘 보살피고 아껴줘야 그나마 잘 자라지요. 그 만큼 자연은 자연스럽게 크는 반면, 집에서 크는 자연은 부자연스럽게 인위적으로 자라는 것이죠. 그런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어 합니다. 집에 서 식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집의 환경을 식물에 맞춰 바꾸기도 하고, 매년마다 사고 죽이는 것을 반복하고, 전문가를 고용하기도 하며 식물을 키워 갑니다.

 

‘온실이냐?’ vs ‘광야냐?’

 

  과거에 교육을 이야기할 때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울 것이냐?”, “광야의 잡초처럼 키울 것이냐?”라고 질문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온실은 씨앗을 배양해서 일정한 간격으로 모종을 관리하고 쑥쑥 키워 나가고 광야는 씨앗 스스로 자신이 커나갈 환경을 찾아 발아를 하고 비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자랍니다. 사람마다 관점의 차이는 있겠으나, 온실과 광야는 “삶의 주체가 누구냐?”에 대한 관점으로 보면 큰 차이가 느껴집니다. 전자는 타자에 의한 삶이고, 후자는 자신에 의한 삶이됩니다. 전자는 획일적 경험이 되고, 후자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전자는 인공적인 것이고, 후자는 자연적인 것이 됩니다. 이런 환경적 차이 속에 두 식물이 커서 어려운 환경을 겪게 되면 주어진 환경을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다를 것입니다. 광야의 식물은 물이 부족하면 아끼려고 할 것이고, 햇빛이 강하면 숨을 죽일 줄도 알고, 벌레가 꼬이면 자신의 몸 일부를 빌려주며 공생하기도 할 것입니다. 온실의 식물은 물이 부족하면 하염없이 물을 기다리고, 햇볕이 강하면 그늘막과 밤을 기다리고, 벌레가 꼬이면 약을 쳐서 털어내 주길 기다릴지 모릅니다. 광야의 식물은 장애를 넘어야할 것으로 보는 반면 온실의 식물은 장애를 회피해야할 것으로 보지 않을까요? 어느 식물이 앞으로 삶에 더 잘 적응하여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앞서 이야기 나눈 화초의 환경과 비교하면 ‘온실’과 ‘광야’가 ‘집’과 ‘자연’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관리냐?” vs “자기주도냐?”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요? 온실에서 키우고 있나요? 광야에서 키우고 있나요?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습니다. TV, 라디오, 포털, SNS에서 매일 같이 내려가는 온도와 방한 방법을 이야기하며 온실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추위에 관계없이 놀이를 통해 겨울을 경험하고 즐길 수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추위가 피해야할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아이의 도전을 안전과 보호라는 이름으로 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밖에 나가 스스로 놀 수 없습니다. 놀지 못하는 아이들은 생기가 없습니다. 몰입, 창의력, 체력 등 다양한 장점을 최대로 살릴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잠재력은 자기주도적인 놀이에 있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을 ‘온실’과 ‘광야’ 어느 곳에서 키우고 싶으세요?

 

  히라이 쇼수의《좌선을 권하다》라는 책에 “머리로 배우려 하지 말고 몸으로 익히자. 막상 해보면 불안과 공생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만날 지적, 물적 환경의 변화는 변화무쌍할 것입니다. 조금은 두렵더라도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함께 한다면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이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며 자라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아이와 함께 좀 더 자연에 가깝게 자주 다가가길 권유 드립니다.

 

 
글·사진 | 정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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