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복지·상담·협동조합 전문가 오산(吳山), 경기도의원에 도전합니다.

 ‘지역일꾼’ 공개모집에 지원합니다!

 

교육·복지·상담·협동조합 전문가 오산(吳山), 경기도의원에 도전합니다.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준비된 지역일꾼, 오산(吳山)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한사람의 과거를 보면 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끊임없이 배웠고, 배운 것을 나누기 위해 지역에서 실천했습니다. 그동안 교육, 복지, 상담과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왔습니다. 지역에서 힘써 활동해 왔으며, 나름의 성과도 얻었습니다. 저의 이러한 경험이 시민의 행복을 키우고, 지역사회에 공익을 확대하는데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 확신합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자녀 넷을 둔 가장으로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살기 좋은 마을’, ‘희망이 샘솟고 행복이 넘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제가 가진 모든 능력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저는 배움과 나눔을 실천해 온 준비된 일꾼입니다. 앞으로 이런 의정활동을 해 보이겠습니다.

 

  1.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의정활동 - 누구에게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상식에 기초한 의정활동을 하겠습니다.

 

  2. 보편복지의 실현을 위한 의정활동 - 계층 간, 세대 간, 복지 형평성을 높이고,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서민들의 삶을 챙기는 의정활동을 하겠습니다.

 

  3. 평생학습사회를 지향하는 의정활동 - 창의와 특성을 살린 학교교육은 물론 학교밖 교육까지 만인을 위한 교육 공간을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4. 공유경제를 활성화하는 의정활동 -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공유의 가치를 널리 알리며, 공동체성을 회복시키는 의정활동을 펼치겠습니다.

 

  5. 다문화 감수성을 높이는 의정활동 - 다문화 사회에 걸맞은 문화 다양성과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적 소양과 감수성을 키우는 의정활동을 하겠습니다.

 

  6.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의정활동 - 효율성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무조건적인 개발보다는 도시재생과 생태적 계발에 힘쓰는 의정활동을 하겠습니다.

 

  7.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의정활동 - 좀 더 살기 좋은 마을, 희망이 샘솟고 행복이 넘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시민의 대변인으로 시민의 뜻을 실현하는 의정활동을 하겠습니다.

 

  저의 지난 10년은 ‘소유’보다 ‘공유’의 가치가 인정받는 공동체,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었습니다. 소소하더라도 알고 있는 것을 먼저 실천하는 ‘깨어있는 시민’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공익을 위해 충분히 일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부천시민께 저의 이력과 자기소개서를 공개합니다. 저를 지역일꾼으로 선택해 주십시오.

  

▮경력

 

 

 

 

[자기소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지난 해 말 개봉한 영화 ‘1987’을 보면서 저의 1987년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당시 저는 고등학교 2학년으로 여수공항 집 앞에서 출발하는 통학버스를 타고 순천에 있는 학교로 등·하교를 했습니다. 새벽공기를 마시며 집을 나서는데 대문 앞에는 전경이 두 명 서있고, 신작로에는 검정색 짚차 두 대가 서있었습니다. 당시 서울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정보과 형사들이 여수경찰서 요주의 인물로 지목한 아버지의 서울상경을 막기 위해 무단으로 가택연금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스물다섯 이후로 야당지도자와 김대중 선생을 따르며 전국을 떠돌았던 열정적인 민주화운동의 투사였습니다. 여순사건 때 큰 형의 억울한 죽음을 목도하고는 민주주의를 위해, 또 억울한 죽음이 없는 소시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어머니는 이러한 남편을 위해 가장의 빈자리를 말없이 지켰고,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6남매 중 다섯째 차남이었던 저는 오랜 외지생활을 마치고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한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아버지는 옆집 담을 넘고 산을 넘어 여수역에 도착했으나, 미리 와서 기다리던 형사들에게 발각되어 쫓고 쫓기다가 결국은 기차바퀴를 부여잡고 누워버렸습니다. 여수발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를 1시간 연착시킨 장본인이 된 겁니다. 상경은 실패했지만 이후 단식과 시위를 주도하며 여수에서 6월항쟁 선봉에 섰습니다. 당시 구타를 심하게 당해 오랫동안 고생했으나, 아버지의 활약은 지역의 투쟁사가 되었고 ‘오영만이 여수경찰서 블랙리스트 1호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지역사회를 위해 많은 봉사와 헌신을 했습니다. 끼니를 걱정하는 이웃에게 먹을 것을 내어 주었고, 등록금이 없어 학업을 포기하려는 학생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팔순을 넘긴 지금도 어머니는 매일 새벽 여수공항 앞 버스정류장과 주변을 물걸레와 비로 청소합니다. 봉사하는 노인회장으로 어르신을 돌봅니다. 저의 정치에 대한 관심, 사회에 대한 관심, 이웃에 대한 관심과 활동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피할 수 없는 유산입니다.

 

  삶에 대한 고민은 많았지만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 있었던 청소년기는 안전했습니다. 하지만 청년기는 장래에 대한 불안과 책임감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지금의 청년실업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았습니다. 순천에서 전문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컴퓨터수리기사로 근무하던 저는 1998년 1월 어려운 시기에 부천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교육사업을 하던 둘째 누나부부의 권유가 있었습니다. 20년을 한 동네에서 살게 된 인연의 시작이었지만, 저희 부부에게 첫 아이를 잃게 한 아픔을 주었습니다.

 

  20대 후반과 30대에는 매형을 멘토 삼아 교육사업에 전념했습니다. 처음에는 교육사업을 잘하기 위해서 시작한 공부였는데, 나중에는 정말 존경받는 교육자가 되기 위한 공부가 되었습니다. 1999년 한국방송통신대학 국문학과에 편입해서 이후로 영문학, 교육학, 청소년교육학, 가정관리학에 이어 대학원 평생교육학까지 방송대에서만 6개 학과를 연이어 전공했습니다.

  평생 공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사회복지학을 학점은행으로 전공했고, 지금은 아홉 번째 학위로 가족상담전공 박사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20살에 처음 대학생이 된 이후 지금까지 공부하는 학생신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06년 1월, 자신과 가족만을 생각하는 도시 소시민으로 살고 있던 저는 ‘지역사회와 봉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인의 말에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봉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저는 집 앞에 있는 방범초소를 찾아 방범대원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저의 장점을 살려 청소년봉사단도 만들고, 좀 더 의미있는 활동을 하고자 이주노동자복지센터에서 한국어강사로 이주여성과 노동자를 만났습니다. 한국어강사 경험을 살려 주민자치센터에 이주여성을 위한 다문화교실을 부천시 최초로 개설해 운영했습니다.

 

  ‘희망이 샘솟는 마을’ 편집국장으로 지역주민과 만나며 중앙지에는 소개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영어로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성인을 위해 문화센터에서 영어 문해교육을 5년간 했습니다. 학교밖 청소년과 대학 비진학 청소년을 위한 정보화 교육, 초등학교 빈 교실을 활용한 상담실 운영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역사회 공동체 형성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2012년에는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제9회 대한민국평생학습대상 개인부문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이밖에도 주민자치위원회, 참여예산시민위원회, 지속가능발전협의회, 학교운영위원회,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등에서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깨어있는 시민’으로, ‘행동하는 양심’으로 시민참여활동을 적극적으로 했습니다. 2006년 처음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한 시민참여활동과 봉사활동은 이제 10년을 넘겨 저에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자원봉사센터에 인증된 봉사시간이 3천 시간 이상입니다.

  더불어 학업을 하는 동안 방송대 부천시학습관 총학생회 부회장, 대학원 평생교육학과 원우회장과 이후 총동문회장, 성산효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 원우회 사무총장 등. 자리를 탐하지 않았지만 속한 조직에서 인정받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2012년 세계협동조합의 해에 저는 ‘아하체험마을’이라는 팀으로 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청년등 사회적기업가 양성과정에 선정되어 활동했습니다. ‘아하체험마을’은 지역의 다양한 교육·문화·예술·생태자원 등을 발굴해 전파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험했습니다.

  이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소외된 주민들을 위해 주민이 기획하고 참여하는 ‘꼽사리영화제’의 아이디어와 모티브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학습하며 만든 조합이 콩나물신문협동조합입니다.

 

  권력과 자본에 자유로운, 시민이 만드는 건강한 지역신문을 만들고자 2013년 창립한 콩나물신문에 발기인으로 참여해 이후 편집인과 발행인을 거쳐 현재는 부설 평생교육원의 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콩나물신문은 30여명이던 조합원이 현재는 400여명으로 늘었고, 인터넷 신문과 격주 5천부를 발행하는 5년차 건실한 지역신문이 되었습니다.

  또 부설 평생교육원과 출판사업을 병행하면서 지역사회 물리적·심리적 시민소통 공간으로 그 역할을 하는데 저의 힘을 보탰습니다. 평생학습에 관심있는 조합원들과 다양한 학습동아리를 만들었고, 부천향토연구회 콩시루를 만들어 지역자원을 개발하고 소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저는 15년간 웅변·논술학원, 미술학원, 음악학원, 어학원, 평생교육원 등 교육기관 운영경험이 있는 교육전문가입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 튜터와 실습지도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청소년교육과 실습지도를 하고 있는 성인교육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청소년상담사로, 여성청소년센터에서 청소년지도사로 근무경험이 있는 청소년전문가이자, 현재 하모니상담센터에 소속한 상담전문가입니다.

  경기도 따복공동체지원센터의 피어컨설턴트와 따복지기(상담원)로 활동해 온 마을공동체 전문가이자, 5년차 임원으로 협동조합 운영경험이 있는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전문가입니다. 제 자신이 평생학습 실천가이며, 지역사회복지를 위해 헌신한 지역복지 실천전문가입니다.

 

  저의 전문성은 교육, 복지, 상담 등의 전공과 함께 취득한 국가자격으로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청소년지도사, 청소년상담사, 상담학회 전문상담사 외 각종 자격증으로 증명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공과 자격증보다 더 큰 저의 장점은 그동안 제가 실천하면서 경험한 지역사회 활동경험입니다.

  저는 끊임없이 배웠고, 배운 것을 나누기 위해 지역에서 실천했습니다. 이러한 ‘배움과 나눔의 실천’은 부모님이 제게 물려주신 값진 유산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옆에서 지지해주고 격려해준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남편으로서, 자녀 넷을 둔 가장으로서, 그리고 행동하는 시민으로서 ‘좀 더 살기 좋은 마을’, ‘희망이 샘솟고 행복이 넘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제가 가진 모든 능력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저의 지난 10년은 ‘소유’보다 ‘공유’의 가치가 인정받는 공동체,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었습니다. 소소하더라도 알고 있는 것을 먼저 실천하는 ‘깨어있는 시민’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공익을 위해 충분히 일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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