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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루감자탕으로 전국에서 유명한 조마루 마을, 이 지역의 뜻과 의미를 찾아서...
한도훈 (시인,부천향토역사 전문가)  |  hansa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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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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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루 옛집
조마루에 시작한 조마루길

조마루는 멀미 서남쪽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조마루로 끝부분인 구원미계량소 일대로 조마루로 양켠으로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조마루로는 벌말에서 오던 옛길을 확대 포장한 것이다.

조마루길은 일제강점기에 신작로로 포장되었다. 그전에는 논둑길, 밭둑길로만 있다가 마차가 다닐 수 있는 수준으로 정비가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지형도를 보면 벌말에서 오는 연로(聯路) 끝자락에 조마루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연로 양켠에 마을 집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 조마루길인 1970년대에도 조마루삼거리 부터 벌말까지 연결되었다. 이곳까지 조마루길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동신도시를 개발되어 송내대로가 만들어졌다. 송내대로는 당시에는 중동대로라고 했다. 중동대로가 도로명 주소로 바뀌면서 송내대로가 되었다. 조마루길은 이 송내대로까지 연장되었다

벌말에서 송내대로까지는 중앙공원길이라고 했다. 중앙공원 남쪽길로 연결되고 외곽순환도로를 통과해 인천 청운공원으로 연결되는 수변로와 만나 소멸되었다.

조마루사거리 동쪽에 조마루 마을 이름을 딴 조마루 감자탕이라는 음식점이 들어섰다. 이 조마루감자탕이 번창을 해서 전국적인 체인망을 만들면서 조마루가 아주 유명해졌다.

조마루감자탕은 1989년에 개업을 했다. 덕분에 조마루라는 땅이름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사래울에서 오던 새를고개길

사래울에서 멀미를 넘어 온 산길인 새를고개 길이 조마루 마을에 닿았다. 새럴고개라고도 한다. 원미산에서 사래울로 연결 된 산을 가리켜 새럴산, 새를산으로 부르기에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범박, 계수, 역골, 벌응절리 등지에 살던 사람들이 황어장터에 가려면 필히 이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조선시대에는 부천 지역에는 시흥의 뱀내장, 계양의 황어장이 대표적이라 이들 장을 보기 위해 십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걸어야 했다.

또 한 길은 소새에서 오는 길이었다. 소새에서 오다가 돌내인 하천을 건너는 흙다리 너머에서 벌말로 가는 연로(聯路)가 있었다. 이 연로에서 조마루로 가는 아주 작은 산길인 소로(小路)가 있었다. 이곳은 새장터인 신장기(新場基)에서 오는 소로와 합류하는 지점이었다. 그러니까 아주 작은 길들이 모여드는 삼거리길이었다.

조마루에서 당아리인 당아래로 가는 길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연로로 조마루에서 멀미 산자락을 넘어 겉저리에서는 길과 만나는 연로(聯路)가 있었다. 또 다른 길은 조마루에서 멀미의 동쪽 산자락을 타는 산길이었다. 원미 뒷골을 건너고 원미의 가재골을 건너 당아리인 당아래에서 만나는 소로(小路)였다. 조금 험했지만 지름길이었다.

 

해방 후에는 공세길, 공세로(貢稅路)

해방 후에는 부천역에서 부천북초등학교를 거쳐 조마루로 오는 길이 새롭게 닦였다.

197611월 현지조사한 지도를 보면 이 길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이 길은 공세길, 공세로(貢稅路)이다. 공세(貢稅)라는 말은 국가가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국민으로부터 강제적으로 거두는 금전이나 재물을 가리킨다.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이 벌어져서 그 일환으로 만들어진 길이어서 생겨난 이름이다.

이 공세길은 조마루에서 출발해서 부천제이교회를 지난다. 그런 다음 당시 부천북초등학교인 부천북국교 서쪽 담벼락을 지난다. 이때 이미 이 근방에 새롭게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해서 조마루 보다 더 많은 집들이 지어졌다. 서쪽에는 춘의원미동 사무소가 위치해 있었다. 멀미 산자락이 길게 이어진 곳까지 마을 집들이 듬성듬성 들어서 있다가 돌내에 가까워 오면서 논들이며 밭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공세길 동서로 아주 작은 실개천이 함께 흘렀다.

공세길은 돌내를 건넜다. 이때 다리는 소북교(素北橋). 소새의 북쪽에 위치한 다리라는 뜻이다. 당시에는 소새, 소사가 부천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다리 이름까지 그렇게 붙였다. 이 공세길은 심곡2동을 거쳐 부천역으로 연결되었다.

 

조마루 연자방앗간

   
보륜산 1970년대 지도
조마루에는 조금 멀리 있는 뒷산으로 멀미인 원미산이 있다
. 이 멀미에서 조금 서쪽으로 보릉산(甫菱山)이 자리잡고 있다. 1977년대 일차 조사를 하고 1987년대 다시 현지조사한 지도에 보면 이 보릉산은 두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고 높이는 해발 66.7m이다.

     
 
     
 
     
 
   
보 릉 산
보릉산은 부천시립도서관 아래 원미공원을 지나면 동남쪽에 시민소체육공원이 있다
. 이곳을 조금 벗어나면 원미동 두산위브아파트가 있다. 그 사이에 나지막한 산이다.

원미로 156번길로 가면 지평교회안에 부천환경교육센터가 있다. 이곳에서 보릉산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다. 보릉산 아래 산자락으로 단독주택, 연립 주택, 빌라 등이 줄지어 서 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급경사이다. 그 급경사 아래에 조마루 마을이 자리를 잡았다.

이 보릉산이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부평군 옥산면 조종리에 위치한 걸로 기록되어 있다. 보릉산(甫菱山)에서 마름 릉()’자를 꼴 교()’로 잘못 읽어 보교산(甫茭山)이라고 하기도 한다.

 

   
원미동 2번지
조마루 마을에는 원미
2번지인 원미동장로교회 아래에 연자방아간이 있었다. 197611월 현지실사한 지도에는 원미교회로 되어 있다. 이 연자방앗간은 소가 끌던 방아로 많은 양의 벼를 찧던 마을에서 공동으로 이용했다. 집집마다 있던 디딜방아로는 소규모 벼를 찧었고 보다 많은 양의 벼를 찧으려면 연자방앗간을 이용했다.

이 연자방앗간 바로 앞은 멀미 뒷골에서 흘러내리던 개울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복개되어 있다. 이 개울에서 동네 아낙네들이 빨래를 빨던 빨래터가 있었다. 원미로 164번길과 182번길이 만나던 곳이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 빨래를 했다. 1980년 이후 집집마다 수돗물이 들어오면서 빨래는 각자 집에서 하는 걸로 되어 버렸다. 동시에 마을 공동체가 조금 허물어진 사건이기도 했다.

이곳 위쪽에 공영주차장이 있다. 이곳은 원미제(遠美堤)라는 저주지였다. 물이 풍부해서 조마루 아이들이 여름이면 찾아와 수영을 하던 수영장이나 다름없었다. 물고기도 잡고 조개도 잡던 아이들의 만년 놀이터였다. 그래서 뒷골을 방죽이 있는 골짜기라고 해서 방죽골로 부르기도 했다.

 

조마루 동너머에서 쥐불놀이

지금은 원미로 177번길인 유신메디칼, 수성금석 등이 있는 곳을 동너머라고 했다. 멀미의 산자락이 길게 뻗어내린 곳이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조마루 아이들은 이 동너머에 모여 들었다. 이곳 언덕에서 쥐불놀이를 했다. 그 상대는 겉저리 아이들, 당아리인 당아래 아이들과 쥐불놀이를 겨루었다.

통조림 깡통에 밑에 구멍을 뚫어 바람이 통하게 했다. 깡통 양옆에 구멍을 뚫고 철사로 이었다. 이 깡통에다 멀미 산자락에 심어진 소나무에서 잘라낸 송진이나 송진이 붙은 마른 삭정이를 넣고 불을 붙였다. 낮동안 보릉산이나 멀미 산을 훑으며 낮으로 여러 가지 태울거리를 만들었다. 솔방울도 쥐불놀이용으로 쓰였다. 머리 위로 깡통을 빙빙 돌리면 아름다운 쥐불놀이를 완성할 수 있었다.

깡통 속에서 불이 붙은 채 잘 돌리면 불꽃이 세게 일고 잘 탔다. 거의 탄 상태에서 불이 살아 있는 재만 남아 있을 때 하늘 높이 던져 불꽃을 수 놓았다. 이때 망월이야!’를 외쳐다. 정월대보름 만월처럼 농사가 잘되고 풍년이 되기를 바라며 논두렁, 밭두렁에다가 불을 붙였다.

동시에 겉저리에서도, 당아리인 당아래에서도 쥐불놀이가 시작되었다. 각 마을에서 불깡통을 여러 번 돌리다가 흥이 무르익으면 서로 큰소리로 말싸움을 시작해서 그게 편싸움으로 이어졌다. 그게 하나의 풍습이었다. 이 쥐불놀이는 밭둑, 논둑을 태워 농작물을 괴롭히는 해충을 박멸하는 이점도 있었다. 지금은 LED로 켜는 깡통이 쥐불놀이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조마루에 대동우물이 있었다. 굿드리우물. 부천엔 고리울의 찬우물, 강상골의 청수정, 멧마루우물 등이 있다. 아마도 이 굿드리라는 뜻은 마을대동제에 쓰이는 신성한 우물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굿에 드리는 우물이라는 뜻. 조마루에서는 조마루도당제(朝宗里都堂祭)열렸다. 이 조마루도당제를 지낼 때 제주를 빚을 때 쓴 우물이었다.

그 위치는 부천시 조마루로412번길로 두리하이츠아파트이다. 대동우물을 메워 아파트를 지은 것이다. 이 아파트 옆에는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해서 이름을 붙인 은행공원이 있다. 원미지구대로 자리를 잡고 있다. 조마루경로당에서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여우와 늑대가 출몰한 바위벌

조마루는 마을 주위가 온통 소나무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부천시립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는 뒤골과 부천석왕사 위에 있는 절골을 제외하고는 벌막까지 온통 야트막한 산이었다.

현재도 야트막한 산언덕 모습을 하고 있다. 원미시장, 부흥시장이 들어서고 원미1,2동으로 불리지만 이곳은 불과 30여년전만 해도 황토밭, 소나무밭이 전부였다. 이곳은 논으로 일구기에는 높이가 워낙 높았다. 그래서 대부분 밭이었다.

옛부천시청이었다가 원미구청으로 한동안 사용한 건물이 있다. 지금은 원미구가 사라져 현재는 원미어울마당으로 쓰고 있다. 이 원미어울마당에서 서쪽 지역을 가리켜 바위벌이라고 했다. 가끔 바우벌로 부르기도 했다.

부천원미동우체국 일대이다. 부천시 부천로 118-1 일대이다. 이곳엔 아주 큰 바위가 있었다. 아주 옛날에는 하늘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숲이 들어차 있었다. 이곳에 여우나 늑대가 출몰하곤 했다. 조마루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러 이곳 멀리까지 오가곤 하면서 가끔 이들을 마주치기도 했다.

전국에는 참 많은 바위벌이 있다. 옻바위벌, 벼락바위벌, 광지바위벌, 구멍바위벌, 고양바위벌, 자라바위벌, 드렁바위벌, 부엉바위벌, 광주리바위벌 등이다.

이로 미루어 이곳 바위벌에도 여우바위벌이나 늑대바위벌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우나 늑대는 사라지고 그저 바위벌로 불리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사우촌에는 장미꽃이 만발

   
 
원미
2동에 있는 사우촌(社友村)은 근래에 지어진 집단 주거지이다. 원미동 189번지 일대이다. 원미로 78번길 일대이다. 손인환 한의원 동쪽 건너편.

이 사우촌은 중앙매스컴 사원들을 위해 중앙일보에서 택지개발을 한 것이다. 중앙매스컴 사우주택단지 준공식은 1975828일 오후 2시에 열렸다. 이날 준공식에는 홍진기 중앙일보-동양방송 사장과 부천시장·부평경찰서장 등 2백여명의 인사가 참석했다. 이렇게 준공식이 끝난 뒤 중앙일보 사원들이 입주해 사우촌이라는 마을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사우촌은 단독주택으로 지어져 집앞에는 넝쿨장미들을 심었다. 오월이면 장미꽃이 만발하여 장미마을로 소문났다. 역골 꽃동네와 같이 계획된 마을이었다. 한동안 중앙일보 사원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다 떠나고 일반인들로 소유주가 바뀌었다.

197611월에 현지실사한 지도에 실렸다. 그 이전 지도에는 사우촌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천군사 근처 절동네

절동네는 1960년대에서 천군사(天君寺)가 들어서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천군사 아래에 스물여 채의 집들이 들어섰는데 이를 절동네로 불렀다. 천군사는 부천시 원미동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었다. 1968년에 천군사로 개창하였고, 1994년 향림사로 바꾸었다.

197611월 현지실사한 지도를 보면 절동네엔 석왕사가 들어오지 않았다. 절동네 마을이 표기되어 있다. 절동네 아래에는 주공아파트가 들어 섰다. 이 주공아파트가 풍림아파트로 바뀌었다.

절동네 서북쪽에는 몇 채의 집과 더불어 부천제일침례교회가 들어서 있었다. 그 북쪽엔 에덴어린이집이 있었다.

절동네 남쪽에는 서울농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공아파트 위쪽이었다.

절동네에 숭덕암이 있었다. 이 숭덕암 자리에 석왕사가 들어왔다. 지금 절동네 주변은 작은 연립들과 빌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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