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빨리 부천시 민속축제로 복원해야...

● 조마루에 세워진 장승들
조선시대에는 춘의레포츠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등 4군데에 장승이 서 있었다. 그 중에서 한 곳은 그 위치를 알 수가 없다. 북쪽에 세워진 장승이다.
춘의레포츠 공원입구에서 남쪽 길은 부천순복음교회에 위치한 할미당으로 올라가는 곳이었다. 동시에 춘의 주공아파트 위쪽에 자리한 할배당으로 올라가는 조그만 산길이 있었다. 장승은 길을 안내하는 동시에 마을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할미다 자리 (구글어스 제공)

할배당 자리
할배당에서 조마루도당제(朝宗里都堂祭)를 시작했다. 이 할배당엔 오래된 소나무가 있었다. 이 노송이 조마루를 지켜주는 도당할아버지였다. 현재는 이 노송은 사라지고 없다. 도당제를 지내면서 엄격하게 도당신으로 받들어 졌다. 그 위치는 춘의주동아파트 104동에서 동쪽으로 올라간 곳이었다.
멀미인 원미산 산자락이다. 뒤골과 고비골 사이에 진달래동산이 솟아 있고, 그 산언덕이 중동 벌판을 향해 내리 뻗었다. 그 중간쯤에 할배당이 위치했다. 원미동 산 5번지로 현재 춘의주공아파트 회주로 동쪽이다. 지금은 산언덕 위쪽으로 길이 나 있다. 이 산언덕은 춘의공단까지 길게 뻗어 있었다.

부천순복음교회에서 북쪽으로 조금 내려온 자리엔 도당할머니가 모셔졌다. 할미당이다. 도당할머니신으로 오래된 박달나무였다. 원미동 산 15-24번지이다.
뒤골과 절골 사이에 봉긋하게 솟아있는 보릉산(甫菱山) 아래이다. 원미레포츠공원 입구 바로 남쪽이다. 부천순복음교회 북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숲이다. 원미중학교 길 건너 편이다. 이 할미당에서 조마루도당제가 본격적으로 행해졌다.

첫 번째 장승은 원미동 29-10번지로 원미동장로교회 아래에 위치했다. 할미당 아랫니다.
이곳엔 연자방앗간도 있었다. 이 장승은 살아있는 엄나무로 250여년이나 되었다. 동방청제축귀대장군(東方靑帝逐鬼大將軍)으로 불리웠다. 조마루에서 동쪽에 해당하는 곳이다.

남쪽 장승은 조마루에서 남쪽에 해당하는 곳에 있었다. 원미동 153번지이고, 현재 도로명으로는 부천시 원미로144번길 5-5이다.
삼협연립. 이곳에는 200여 년 된 가죽나무가 남방적제축귀대장군(南方赤帝逐鬼大將軍)으로 장승이 되었다. 이곳에는 세 그루의 가죽나무가 있었다. 그 중에서 가운데에 위치한 가죽나무가 장승이 되었다.

서쪽 장승은 조마루에서 서쪽에 해당하는 곳에 있었다. 대화파크 아파트로 원미동 58-2번지이다. 도로명으로는 부천시 원미로155번길 37이다.
이곳엔 조마루에서 가장 오래된 300여 년 된 참나무가 장승이었다. 서방적제축귀대장군(西方白帝逐鬼大將軍)이 되었다.

이 장승 서쪽에는 조마루도당제를 지낼 때 제사 물로 쓰던 굿드리 대동우물이 있었다. 이 장승 동쪽은 은행공원이 바로 붙어 있다.
조마루도당제를 지내는 장승고사에서 북방흑제축귀대장군(北方白帝逐鬼大將軍)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는 북방 장승도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위치조차 알지 못한다.

● 조마루도당제(朝宗里都堂祭)
조마루에서는 할배당, 할미당 두 당집에서 조마루도당제를 올렸다. 도당제사를 지내면서 동시에 굿드리 대동우물 청소도 병행하고 마을잔치도 벌였다.
조마루도당제는 일년에 두 번 열었다. 음력으로 3월 1일 길일을 택했다. 봄에 도당제를 연 것은 풍년을 기원하는 예축제(豫祝祭)이기 때문이었다. 풍년을 미리 예측해서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이다. 풍년에 재를 뿌리는 액막이도 하고, 마을 사람들을 단결시키는 역할도 했다.
예축제는 지역에 다르다. 농사를 짓는 곳에선 논이나 밭에 씨를 뿌리기 위해 준비하는 제사이다. 어부들은 보통 예축제를 정월 15일에 연다. 바다에 씨를 뿌리지 않기 때문이다. 예축제 다음으로 풍어제, 그리고 가을에는 농부들과 같이 추수제를 연다.
보통 3월3일도 삼진날이라 해서 길일이지만 이날은 뱀이 동면에서 깨어나는 날이라 해서 꺼렸다.
가을에는 음력 10월 1일이 길일이었다. 조마루 들판에 곡식들이 잘 자라 풍년이 든 것을 축하하고 함께 도당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추수감사제였다.

조마루도당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다. 조마루에 여러 성씨가 섞여 살았다. 하지만 도당제를 지낼 때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하고 함께 나누는 공동체 의식이었다.
조마루도당제가 시행되면 먼저 앉은당주 한사람, 선당주 두 사람을 선발했다. 마을에서 덕망이 있고 몸과 마음이 깨끗한 분을 추천했다.
도당제를 주관하는 앉은당주는 선출된 날로부터 목욕제계하고 언행을 삼가야 했다. 부부가 한방에 들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했다. 한마디로 부정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고 청정한 몸으로 도당제를 모셔야 했다.
앉은당주는 도당제에 필요한 물자와 제수를 준비한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쌀이며 돈을 각출했다. 쌀은 제사를 지내는 떡이며 술을 빚는데 사용하고 돈은 제물을 사오는데 쓰였다. 앉은당주 집에선 금줄을 치고 문밖에 황토를 뿌렸다. 금줄과 황토는 붉은색으로 잡귀들이 친입하는 것을 막아준다. 보통 조라술을 준비한다.

제물이 준비가 되면 본격적인 도당제를 올린다. 제사는 조선 유교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때 앉은당주가 헌관이 된다.
절차는 안반고사부터 시작한다. 안반고사는 본격적인 도당제가 열리기 전에 앉은당주 집에서 거행한다. 안반에 시루떡을 담아 열두 방향에 놓는다. 조마루 마을이 평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축원하고, 도당제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축원을 드린다. 윗소사대동산신제하고 그 절차가 비슷하다.
장말도당굿에선 전날 당주집에서 당주굿을 드린다. 장말도당굿을 주관하는 무당이 당주에게 축원을 준다. 경기도도당굿에선 전날 당주굿을 한 다음에는 당주집에서 굿당까지 올라가는 중간에 길거리에서 부정을 가시는 거리부정을 한다. 굿당에 도착해서는 당집 주변의 잡귀나 잡신에게 시루를 먹이는 안반고수레를 한다. 그 다음 도당굿을 벌일 장소를 정화하는 부정굿을 하고, 신대를 꺾어 든 마을의 대잡이에게 신이 내리면 당가리 앞으로 가 도당신을 모시고 굿청으로 되돌아 오는 도당모시기를 한다. 장말도당굿에선 도당할아버지로 지정된 사람이 도당신을 모시는 깨끼춤을 춘다.  

그 다음엔 시제를 지낸다. 시제는 조마루에 살았던 조상신에 대한 제사이다. 도당제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다. 당주 세 사람이 할미당에 차려진 제단에 서서 예를 갖추고 절을 한다. 절은 두 번 한다. 이 의식도 윗소새대동산신제와 같다.
그 다음 윗소새대동산신제에선 입담 좋은 촌로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잡귀가 물러가도록 초혼을 읽는 부정풀이를 한다. 조마루도당제에선 이 의식을 행하지 않는다. 부정굿이 생략되어 있다.

조마루에 서 있는 네 곳의 장승을 찾아가며 장승고사를 지낸다. 제사에 참여한 사람 중에서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간다. 동서남북 장승에 가면 음식을 놓고 술을 따른 다음 절을 한다. 절은 두 번 한다. 윗소새대동산신제하고 그 절차가 같다.

윗소새대동산신제에선 또 다른 참석자가 제수용품을 마련해 소새 마을 대동우물에 가서 잔을 올리고 두 번 절을 한다. 소새의 우물제를 동시에 올리는 것이다. 조마루에선 이 의식을 행하지 않는다. 마을에 굿드리대동우물이 있지만 그걸 하지 않는 걸로 보면 따로 우물제를 지낸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도당제가 끝나고 굿드리대동우물을 청소한 뒤 간단하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그 이유로 보인다.

본격적인 도당제가 시작된다. 3당주 재배이다. 제단에 음식을 차려진 뒤 3당주가 나란히 선다. 도당제에 쓰기 위해 특별하게 담근 조라술을 따라 올린다. 3당주가 일제히 두 번 절을 한다.
초헌이 시작된다. 초헌은 도당제를 주관한 앉은 당주가 첫잔을 올린다. 초헌은 도당신에게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는 첫 번째 절차여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 다음 축문은 축관으로 뽑힌 나이드신 어르신이 맡는다. 축관이 축문을 읽는 동안 3당주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조마루도당제 축문
유세차(維歲次)
모년모월모삭모일(某年某月某朔某日) 유학(幼學) 감소고우(敢昭告于) 도당산신(都堂山神) 일어유자산(日於有玆山) 진사일촌(珍事一村) 함령축우(含靈祝于) 비아거인(非我居人) 화육기공위복(化育奇功威福) 기권하뢰(氣圈下賴) 비신도다안신(碑身春德山神) 불사인신(不死人神) 상의영이위혜(詳議靈異威惠) 복걸구복어신(伏乞求福於神) 신기보우(神祈保佑) 불일현명령(不日顯命令) 근이주과(謹以酒果) 감천심향(感天深香) 복(伏) 유존령(惟尊靈) 서기음형(瑞氣歆享)
상 향(尙 饗)

윗소새대동산신제 축문
신께 불제를 드립니다. 바다와 산을 동함은 신령님의 뜻한 바며, 좋게 들으시옵소서. 재앙의 한을 돕고 도와 거역한 많은 사람을 구제하소서. 가히 분별하시되 거짓으로 아들놈 제삿날이라 잔꾀를 이용한다던가, 보살이 아닌 사람을 사찰로 오게 하며, 웃음의 말로 합장하여 받들겠다던가, 신주 같이 편히 모신다는 이런 말은 다른 말로 들림이오니, 신에 재앙만 있을 뿐입니다. 엄숙히 삼가 신께 원합니다. 이로써 술잔을 공손히 드리고 공경해 고합니다. 흠향하소서.

초헌 축문
우러러 영전(靈躔)을 살피건대, 직요(直曜)가 손방(巽方)에 드리워 마침 좋은 절후에 당하였으므로 신일(辛日)을 가리어 향기로운 제물을 올리오니, 하늘에서 굽어 돌아보시어 정성스런 잔을 흠향하소서.

아헌이다. 두 번째 첨잔을 드리는 의식이다. 선당주 중에서 한 분이 술잔을 올린다. 아헌문은 읽지 않는다.

아헌문
지극한 도(道)는 정묘하므로 비록 엿보고 살필 수는 없으나 믿음을 밝히는 성의는 제물을 올려야 하므로 변변치 못한 의식을 베푸오니, 흠격(歆格)하시고 길상(吉祥)과 강녕을 넉넉히 주소서.

종헌이다. 나머지 선 당주가 세 번 째 헌작을 한다. 세 번째 잔을 올리고 절을 한다. 조마루 도당제에선 삼헌문을 읽지 않는다.

삼헌문
하늘이 어찌 말을 하겠습니까마는 묵묵히 만생(萬生)의 재앙과 복을 관장하시니, 신(神)이 가장 귀중한 것은 음양으로 팔정(八政)을 주관하여 실행하기 때문입니다. 돌아보건대 미약한 자질로 그릇 크나큰 서통을 이어받아서 아침저녁으로 생각하고 걱정하느라고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나이다. 국가를 편안하게 하고 화목하게 하려면 모름지기 십진(十眞)의 보호를 의뢰해야 하겠기에 소림(炤臨)하실 만한 곳을 택하여 청결한 의식을 베푸오니, 흠향하시고 빨리 보우(保佑)를 더해 주시어 육기(六氣)가 어기지 않아서, 바람과 비가 알맞고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더워서 삼농(三農)이 성취되어 잡초는 썩고 곡식은 무성하며, 병기를 거두고 감추어지게 해서 천하를 화평하고 편안하게 하소서.

첨잔이다.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워 3당주가 일제히 두 번 절을 한다. 이렇게 해서 도당제를 마친다. 이 첨잔 의식도 윗소새대동산신제하고 같다.
마지막으로 3당주가 음복을 한다.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음복을 한다.

해마다 제사를 지낸 조마루도당제는 1960년대 이후부터 급격하게 도시화 진행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도시화의 제일(第一)의 폐단은 조마루도당제 같은 민속의식이 미신이라는 이유로 내쳐졌다는 것이다.
더구나 도시화로 더 이상 도당제를 지내지 않게 되자 할미당 자리에 있던 박달나무를 베어 버렸다. 세월이 지나면서 할배당의 노송도 베어지고 장승이 서 있던 곳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되었다.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