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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마루라는 옛이름을 되찾자!
한도훈(시인, 부천향토역사 전문가)  |  hansa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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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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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멧마루(遠宗洞)인가? 먼마루인가?

 멧마루는 원종(遠宗) 마을로 봉안산(鳳鞍山) 중턱에 자리잡은 동네이다. 한자로는 원종리(遠宗里)로 쓴다. 조선 지지 자료에도 원종리(遠宗里), 먼마우로 표기되어 있다.
 먼마루라는 표기는 없다. 한데 먼마루가 대세가 되어 멧마루를 밀어냈다.
 먼마루 벚꽃축제, 먼마루도당우물제, 먼마루감리교회, 먼마루어린이공원, 먼마루상가, 먼마루숯불구이, 먼마루꿈나무학당 등이다.
 대신 멧마루를 쓰는 상호는 없다. 멧마루는 언제부턴가 일상화되지 않았다. 부천시 행정이 적극적으로 멧마루를 밀어내고 먼마루를 선택해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원종동에 살고 있는 토박이 분들은 어릴 때부터 먼마루는 말은 듣지도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1976년 11월에 현지조사한 지도에도 당당하게 멧마루로 표시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순우리말은 멧마루가 정답으로 보인다.

 먼마루 어원에 대해 설명하면서 당아래 고개에서 바라보면 마을이 둥그런 산마루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하지만 멀미인 원미산에서 바라보면 마을이 보일지언정 당아래에서는 아미산이나 은데미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는다.
 먼마루보다는 멧마루가 마을 이름의 원형이다. 먼마우는 먼마루의 오기로 보인다. 이 멧마루를 한자로 옮기면서 원종(遠宗)이 되었다.
 여기에서 ‘멀 원(遠)’에서 ‘멀’이 순우리말 어원이다. 원미산의 순우리말인 멀미하고 그 뜻이 같다. 원미산(遠美山)도 멀 원(遠)자를 쓴다.
 멀의 옛말은 ‘ᄆᆞᆯ’이다. ᄆᆞᆯ이 ᄆᆞᄅᆞ로 변하고 마라가 마루로 변했다. 이 말이 더 변천을 거듭해서 마리로도 쓰이고 머리로 쓰였다. 사람의 머리의 어원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멀 원(遠)과 마루 종(宗)은 그 뜻이 같다. 어떻게 보면 원종은 산산(山山)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멧마루도 마찬가지다.
산의 옛말인 ᄆᆞᆯ이 ‘말, 몰, 멀’ 등으로 변해 많은 땅이름들을 남겼다. 마들, 말들, 막개, 마룻골, 말개, 몰개, 말골, 말몰, 말물, 말뫼, 말미, 말목, 말샘, 말새미, 말바우, 몰바우, 매바위, 매바우, 마늘뫼, 매골, 매실, 뫼실, 맷골, 묏골, 매재, 매재골, 맴재, 머리뫼, 머리미, 머리실, 멀뫼, 멀미, 멀메, 모기재, 모깃재, 문재, 모래개, 몰개, 모랫굴, 모래내, 마새내 등이다.
이들 땅이름이 어원 ᄆᆞᆯ로 산을 뜻한다.

 멧마루에서 멧은 ‘매, 미, 뫼’와 같이 산을 뜻한다. 두메산골에서 쓰이는 말과 같다. 멧의 쓰임새는 현대어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산돼지의 뜻인 멧돼지, 산토끼를 멧토끼라고 부르고, 산도요를 가리켜서 멧도요라고 한다.
 마루는 산의 뜻인 에서 나온 말로 ‘으뜸, 꼭대기, 높은 것’을 의미한다. 보통 한자로는 마루 종(宗)을 선택해서 쓴다. 이로 미루어 멧마루는 산의 의미가 두 번 반복해서 쓰인 것이다. 여기에서 산은 멧마루를 감싸안고 있는 봉안산(鳳鞍山)을 가리킨다.

● 멧마루, 1919년도 지형도 이야기
   
1910년도 원종리 지적도
   
1919년 멧마루 지도

 일제강점기 1919년도 지형도를 보면 멧마루 마을의 형태를 잘 알 수 있다. 멧마루 앞으로 멀미의 망골에서 발원한 베르내가 휘돌아 흘렀다. 베르내가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베르내 중류 정도에 해당되어 조선시대에는 굴포천에서 넘어온 서해조수가 흘러들었다. 이 서해조수로 인해 늘 수해에 시달렸고, 멧마루 앞 들판인 방우리들인 방우리번덩엔 제대로 논들이 만들어지지 못해 갈대밭 천지였다. 갈대밭이라고 말하면 천지개벽이 된 현대에는 믿기 어렵다. 하지만 갈대밭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베르내는 조선시대 지도에 는 제법 큰 하천으로 표기되어 있다.
 멧마루 성터골 뒤편으로 고리울내 지류가 흘렀다. 고리울천이라고도 한다. 고리울 마을과 경계였다. 범바위산 서름이골에서 발원한 고리울내 지류가 멧마루 동편을 휘돌아 가다 봉배산 식골에서 발원한 고리울내하고 서로 만난다. 이곳은 서해조수로부터 제법 먼 거리에 속하고 지대가 제법 높아 논들이 많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덕분에 멧마루 사람들은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생계를 꾸려갈 수 있었다. 이곳의 높이는 해발 11.6미터 정도였다.

● 멧마루에 수도길이 관통해

 일제강점기 1919년도 지형도에 수도길이 멧마루 마을을 관통하고 있었다. 영등포로 가는 아주 큰 길이었다.
 멧마루에서 보면 수도길의 한쪽은 약대 마을로 연결되었다. 약대로 가기 위해서는 베르내를 통과해야 해서 다리가 2개나 건설되었다. 지도에는 하천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다리 표시가 되어 있어 멧마루 앞으로 베르내 지류가 흘러갔음을 알 수 있다. 멧마루 앞 방우리들인 방우리번덩하고 연결된 벌판에 제방을 높게 쌓아 수도길을 높게 만들었다. 서해조수로부터 수도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서해조수는 밀물, 썰물로 한강 하구를 거슬러 올라 굴포천으로 밀려들었다. 굴포천 아래에는 걸포천이 있는데, 이곳에도 서해조수가 밀려들었다. 당연히 서해조수 현상에 따라 굴포천의 수량, 베르내의 수량이 많아졌다 적어졌다 했다.
 수도길 북쪽 멧마루 곁에는 솔밭으로 추정되는 침엽수림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솔밭은 봉안산, 봉안산에서 뻗어나온 산줄기 등지에 표시되어 있다.
 다른 쪽은 고리울을 거쳐 곰달내고개를 넘어 영등포로 연결되었다. 수도길 곁에 몇 채의 집이 있었고, 수도길에서 뻗어나온 길이 헐떡고개를 넘어 밖오시로 연결되었다. 현재의 오정초등학교 앞이다.
 다른 길은 현재 오정초등학교를 관통해 남으로 새기 앞, 은데미 앞, 점말, 성골로 지나는 연로(聯路)가 이어졌다. 그러므로 이때 오정초등학교 앞은 사거리였다. 오정초등학교가 지어지면서 삼거리로 변했다. 현재도 이곳은 삼거리이다.
 멧마루는 오정초등학교에서 북쪽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밀집되어 있었다. 마을 가운데로 성터골을 지나는 수도길에서 산언덕을 넘는 연로(聯路)가 통과했다. 성터골에서 오는 이 길 주변으로 집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마을 가운데에 또다른 사거리가 만들어졌다.
 그 한 길은 밖오시로 가는 길, 오정초등학교 쪽으로 가는 길, 성터골로 가는 길, 거칠개를 건너 오정마을로 가는 길이었다.
 이때 멧마루 마을의 크기는 고리울 마을과 유사했다. 바로 곁 계산 아래에 있는 새기나 은데미 보다는 다소 컸다. 이때는 오정면사무소가 이곳에 위치해 있지 않고 강상골이 있는 샘말에 있었다.
 1910년도 지적도를 보면 마을 가운데에 대동우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300년이 넘게 멧마루를 지켜온 멧마루도당우물제가 열린 배경을 알 수 있다.
 현재 소사로와 소사로 819번길이 만나는 남쪽 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경기도 부평군 하오정면 원종리 156번 밭 북쪽 근처였다. 이때 밭 주인은 손치운(孫致雲)이었다.

● 1976년도. 1987년도 지도 이야기
   
1963년도에 편집한 지도
   
1976년 11월 현지 조사한 지도

 1976년 11월 현지실사한 지도에 보면 마을 이름은 멧마루. 오정초등학교에서 길게 뻗은 밖오시로 가는 길 서편에 집들이 모여 있다. 동쪽은 성재너머이다. 성재너머 북쪽에는 한도산업(주), 그 북쪽엔 삼진정밀, 그 북쪽엔 한성전기(주)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길 건너 서쪽엔 융림산업(주), 그 북쪽엔 동신제약이 위치했다.
 그 이외엔 봉안산에서 길게 뻗은 산등성이에 묘지 몇 개가 있었다. 이 묘지는 밀양손씨가 관리를 했다, 그러므로 봉안산은 밀양손씨의 선산이나 다름없었다. 멧마루 안동네는 밀양손씨가 많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소사로로 아주 넓게 도로가 뚫렸지만 이때는 소형차로밖에 없었다. 이 차로는 마을 가운데를 가로질러 가서 마을대동우물이 있는 곳을 지나갔다. 그래서 마을대동우물은 그 아래로 옮기었다.
소사로 819번 길은 그때는 아주 작은 소로였다. 오정마을로 가는 길이었다. 현재는 넓게 포장되어 버스가 다니는 길이 되었다.
 1987년도에 수정한 지도에 보면 마을 북쪽에 주막거리가 새로 생기었다. 여러 술집들이 줄지어 들어선 것이다. 1976년도 지도에는 없는 변화였다. 그리고 한도산업 자리에 동진 아파트가 자리를 잡았다. 이때부터  아파트 단지가 새로 조성된 것이다. 봉안산에는 삼부아파트가 대형으로 조성되었다. 현재는 세창짜임아파트, 동문아파트로 새롭게 변신했다. 융림산업(주) 자리엔 대한포장공업(주)로 바뀌었다.
 이때 봉안산 아래로 간선수로가 새로 설치되었다. 방우리들인 방우리번덩에 한강물을 대기 위함이었다. 이 간선수로는 동신제약을 가로질러 동쪽으로도 새롭게 조성되었다.

● 현재는 아파트 단지, 빌라 등지로 변모

   
 
   
 
   
 
 멧마루 마을 한가운데에 해주1,2차 아파트가 자리를 잡았다. 전통마을은 이때 대부분 사라졌다. 다행히 소사로 862번길에서 시작된 마을 안 길은 구불구불 살아있다. 소사로 820번길이다. 성재너머엔 문화아파트, 협성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북쪽으로는 동진1,2차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곳에 있는 공장들은 사라졌다.
 한때 주막거리가 있던 곳은 욱일 6차 아파트가 꿰차고 들어왔다. 그 서쪽으로 대풍푸른들 아파트가 새로 들어섰다.
 오정마을로 가던 소로 북쪽엔 부천원일초등학교가 들어섰다. 현재 방우리들인 방우리번덩은 미나리꽝 농사를 짓거나 벼농사를 짓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행복주택 단지로 지정되어 있다. 방우리 번덩이라는 이름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았다.
 이 소로 남쪽에 멧마루도당우물제를 지내는 우물을 재현해 놓았다. 그 남쪽엔 오건아파트, 원종금호 어울림 아파트 단지가 대규모로 자리를 잡았다.
 마을 중간 중간엔 빌라며 단독주택, 다세대 주택이 줄지어 있다. 아직까지 멧마루 60-70년대 건물들이 남아 있는 곳은 해주2차 아파트와 욱일 아파트 사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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