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과정에 승복하기

더불어민주당원 중 일부가 이재명이 싫다며 신문광고도 크게 내고, 왜 싫은지를 정리하여 두툼한 책도 냈습니다.
이재명이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 선출 과정을 밟고, 당원과 시민이 각각 절반이 넘게 지지했는데도 그분들은 이재명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가 봅니다. 사람이 미운 건 이성으로 안되죠. 미운 사람이 하는 짓은 그냥 다 밉죠.

트라우마도 있을 겁니다.
이재명에게서 옛날 노무현 모습이 보이는 거죠. 2002년 민주당에 동교동 민주화 가신, 서울대 출신 정치인들이 수두룩한데, 어느날 듣보잡이 날아 들어와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됩니다.

그리고 상업고졸 인권변호사 노무현은 민주당 인사들의 후보 흔들기에 맞서 돌풍을 만들어내고 결국 2002년 12월에 16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런데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 중 야당이 주장한 대북 송금 특검을 받아들여 김대중 정부가 벌인 일에 칼(?)을 들이댑니다. 그 일을 두고 동교동계 정치인들은 노무현에게 보복을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열린우리당이 창당될 때 동교동계 민주당 정치인들이 갈라서지요.

이재명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재명이 형수에게 욕했다, 혜경궁 김씨 남편일 것이다, 어느 여배우와 불륜 관계다"로 어정쩡하게 핑계를 댑니다.

그러나 속셈은 지금처럼 야당이 지리멸렬할 때 민주당이 적어도 막대기만 아니면 20년은 대통령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대중 지지도가 막강한 이재명이 다음 대통령이 되면 문재인 정부 업적에 칼을 들이대고, 지금 더불어민주당 주류세력이 찬 밥이 된다. 이재명이 열린우리당 2를 만들어 분당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문재인 측근 중에서 믿을만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나중에 칼도 안 맞고, 정권을 쥐고 계속 주류로 산다...
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40년 전에 공군 장교를 배출하는 과정이 몇 개 있었습니다. 4년제 공사, 2년제 2사, 아르오티시(ROTC) 장교, 사관후보생(학사) 장교입니다.

그 중 사관후보생은 4년제 학사 졸업자 중에서 장교 시험을 치르고 6개월 훈련 후 소위로 임관되어 4~5년 복무를 끝내면 제대합니다.

이런 다양한 과정을 둔 것은 나라가 필요에 따라 인력을 수급하려고 만든 제도였겠지요. 6개월을 훈련했든, 2년간 교육을 받았든, 4년제 사관학교에 다녔든 각기 그런 과정이면 동등하다고 국가가 인정한 것이죠.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구요. 4년제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를 단 장교들이 불만이 많았습니다. 6개월짜리 훈련 장교, 2년짜리 교육 과정을 받은 사람이 같은 소위라는 것을 못마땅해 하더군요. 같은 장교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사관학교 4년동안 국가 질서를 배웠으면서도 국가 명령을 따르지 않고, 국가가 정한 제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4년제 사관학교 장교들은 전투 비행기도 몰고, 보직도 잘 받고, 승진도 잘 됩니다.
비정규 출신 장교들은 전투 비행기를 탈 수도 없고, 공군인데도 깊은 산속 근무자도 있고, 고급 장교 승진은 거의 기대하지 못하고 소령 정도에서 제대합니다.
말로는 장교들끼리 제도와 평등을 이야기하지만 속내로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더라구요. 40년전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지금 더불어민주당 안에도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겁니다. 노무현 측근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다음 대통령은 문재인 측근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그 다음다음 대통령은 그 다음 대통령의 측근이어야 합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적장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왕정이 완성되는 겁니다. 그리고 측근 혈통이 아닌 사람은 애초에 대권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이재명 혐오자에게 이재명은 측근 혈통이 아닌, 감당하기 어려울지 모르는 듣보잡인 겁니다. 물론 박원순 서울시장, 추미애 당대표도 대권에 도전하면 나중에는 다 듣보잡이 되겠지요.

더불어민주당이 이런 상황을 잘 극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저쪽 당에서 넘어온 사람일지라도 당적을 지닌 사람에게 공정하게 기회를 주고, 제대로된 선출 과정을 거쳐 후보자로서 기회가 주어지면 모든 당원이 인정하고 승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여당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해야 우리 정치 풍토가 한결 빨리 성숙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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