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에 따르면 조직을 얻습니다.

요즘 내 지인 중 몇몇이 상처를 받았다.
소위 전략 공천이라며, 경선없이 낙하산으로 후보를 내면서 그 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내 지인들을 물먹인 것이다. 경선은 후보에게 그 조직이 정당한 과정을 밟아 배출했다고 정통성을 부여하는 절차이다.

과거 내가 학교에서 부장교사로 근무할 때 학교장들이 신임 부장교사 임명을 두고 내게 조언을 구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순리대로" 임명하라고 말했다.

학교장이 내게 조언을 구한 것은 대부분 순리를 어기고 싶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학교장은 자기 마음에 드는 평교사를 몇 단계 올려 부장교사로 임명하고 싶은 것이다.

순리대로 부장을 임명한 경우와 순리를 어겼을 때에 결과가 확실히 달랐다. 순리에 따르면 그 신임 부장교사는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 학교장이 본인을 맘에 안 들어해서 부장 승진을 포기했는데, 뜻밖에 자기가 부장에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부장교사와 평교사도 그 신임 부장교사를 도와준다. 능력에 못 미친 사람이 그 일을 안고 고민하는 것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더구나 학교장이 싫어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신임 부장교사가 실수하여 혼나지 않도록 여러 사람이 이것저것 챙겨준다.
그리고 이런 부장교사가 일을 무난히 처리해야 다음에도 학교장이 파격 인사를 하지 않는다. 다음 승진 철에 사람들은 예측이 가능하다. 묵묵히 자기 맡은 일을 감당하면 자기가 언제쯤 부장교사가 될지를 안다.

하지만 학교장이 파격 인사를 해서 신출내기를 부장교사로 임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 신임 부장교사는 열심히 일한다. 학교장은 "역시 내가 판단한 대로 다른 사람 두 몫을 한다"고 흐뭇해 한다.
그런데 그 신임부장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팔장을 끼고 눈에 띄지않게 전보다 조금씩 일을 하지 않는다.

특히 승진에서 제외된 경력교사들이 가장 상처가 크다.
"학교장에게 잘 보여 우리를 뛰어 넘네.. 놔둬.. 제가 알아서 다 하겠지 뭐." 그 경력교사들이 제대로 도와주지 않는 손실이 가장 크다.

다른 부장교사들도 경력교사를 물먹인 신임부장을 대할 때 맘이 편치 않다. 도와주는 척 한다.
평교사들도 열심히 일하는 척 한다. 승진하고 싶으면 교장 맘에 들면 되지, 어떤 일을 하면서 과정이든 결과든 신경 쓸 것이 없고, 동료 교사들이 뭐라 평가하든 무시해도 된다.

아부에 익숙치 않은 교사는 승진을 포기한다. 그대신 맘 편히 산다. 맘에 드는 일이면 열심히 하고, 하기 싫은 일이면 안 한다.
말하자면 조직 여기저기서 조금씩 일을 안 한다.

학교장에게 충고할 때 나는 이렇게 정리해서 조언했다. "순리를 어기면 한 사람을 얻고, 순리에 따르면 조직을 얻습니다."

내 지인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지금 들려주고 싶다.
"당신은 특출한 한 사람을 바라보느라고, 반대편 한 세상을 잃었습니다."

 

노숙농성 중인 배진탁 부산시의회 예비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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