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 치고 별장같은 거 하나 안 가지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냐만, 소련만의 독특한 20세기 역사적 경험과 기억에 기반해,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권 사람들에게 있어 다차라고 부르는 별장은 마치 미국의 노란 통학버스와 수영장 딸린 집 비슷하게 먹고 살기 좋았던 시절 중산층의 신화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구 소련에서는 별장을 국민들에게 무상 분배하였고 이를 '다차'라고 한다. 본래는 18세기 표트르 대제가 귀족들에게 땅을 나누어준 게 시초였는데, 후에 이 다차가 별장이라는 뜻을 가지면서 귀족들의 별장이라는 뜻의 단어가 되었다. 이 당시의 다차들은 귀족들의 휴식시설로 이용되어오다가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귀족들이 몰락하면서 한동안 노동자들의 휴식시설로 이용되기도 했다.
스탈린 시절에는 특권층과 문화인들을 대상으로 다차가 보급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 시골에 연고가 있는 일반인들이 안쓰는 오두막을 빌려서 다차로 쓰기 시작하면서, 일반인들도 다차에서 농사를 짓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사실 이는 원칙적으로는 불법이었지만 경공업의 미발달과 농업집단화로 신선채소류가 부족해 문제가 되고 있었던 터라서 손을 대기 힘들었다.

 

그래서 흐루쇼프가 집권하자 개인의 다차보유를 합법화한 건 물론(1955년) 국가 차원에서 무료로 다차를 보급하기 시작하고, 1958년에 다차건설 협동조합의 설립을 공인하며 시골에 연고가 없는 일반인들에게도 다차가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브레즈네프 시기 들어와서 완전히 대중화했다. 이 당시에 기본적으로 약 180평의 땅을 국가에서 분배해 줬고, 이를 받는 사람은 제법 행운아였다 한다. 물론 무상으로 주지만 누구나 원하는 대로 받는 건 아니었고 오래 기다려야 했으며, 공헌도 평가에 따라 지급되는 땅 크기도 달랐다. 하지만 성분에 따라 크기는 천차만별이었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코딱지만하더라도 다차를 하나는 가진 경우가 많았다.

러시아인들은 코딱지만한 땅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창의력과 잉여력을 발휘해 한껏 별장을 꾸몄다. 전원주택을 건설하고 사우나 시설도 만들고, 꼬치를 먹기위해서 화로도 들여놓고, 텃밭도 개간하고, 울타리도 만들고, 개집도 만들고, 잔디도 가꾸고, 수도시설도 들여놓고... 이게 농담이 아닌 게, 수도고 전기고 아무 것도 없이 땅만 덩그러니 주기 때문에 기초공사부터 개간까지 개인이 전부 해내야 했다!
다만 조합별로 따로 다차 관리자를 선출해서 다차 건설과 관리를 따로 도맡게 하는 경우도 존재하며, 다차만들 땅을 받았을때 다차 관리인들에게 건설을 맡겨놓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관리자가 없는 다차들도 존재하는데 이런 다차의 경우, 범죄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라고 한다.

 

흐루쇼프 집권기에는 대개 직장과 연계된 조합을 통해서 부지가 할당됐다. 그 결과 작가촌, 광부촌, 화가촌, 건설노동자촌, 수력기술자촌처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직업별 다차촌이 양산됐다. 또, 흐루쇼프의 정책 실패로 인한 식량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텃밭이나 가축을 가꾸는 다차가 더욱 활발해졌다고 한다. 도시 바깥 교외의 다차에서 텃밭을 가꾸고 휴가를 보내는 것은 구 소련이 무너지고 별장 무상분배가 중단된 지금도 러시아의 일상적인 문화가 되어 있다.

러시아에서 주택담보대출이 활성화하지 못한 원흉(?)으로도 손꼽히기도 하는데 소련시절에 아파트 한 채와 다차는 무료로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이혼을 하거나 자녀를 많이 두지않는 이상, 굳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는 가정이 많아서이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에서도 시장경제가 활성화되고 사유화와 부동산 투기로 인해서 대도시 지역의 집값과 임대료가 그리 싼 편은 아니긴 하다. 거기에다가 이자율도 비싸기 때문에 분가를 할려는 젊은층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아래에서 언급되지만 오히려 이를 이용해서 자신은 다차에서 살고 도심지역의 아파트는 세를 놔서 두둑하게 돈을 버는 경우도 있다.

1980년대까지는 소련 각 가정에서 다차에서 생산된 농작물과 축산물 가운데 먹다 남은것들을 암시장에 내다 팔아서 용돈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며, 90년대 러시아 경제가 막장일로를 걸었을때 다차 덕분에 그나마 러시아에 대기근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당시 러시아 서민층들이 다차에 의존한 게 많았다. 물론 소련시절에 다차에서 농사를 지었긴 했지만, 대체로 일반적인 상점에서 사오기 힘든 싱싱한 채소류나 과일류를 먹기 위한 목적이 강했던 데 반해, 90년대 러시아에서는 말 그대로 생계수단에 가까웠다는 게 차이점이다.

당시 러시아의 서민들 중 다차를 소유한 사람들은 다차에서 생산된 농축산물로 식비를 아끼고, 남은 농축산물을 시장이나 기차역 가판대에서 내다팔아서 생활비를 충당하며, 노인들 가운데서 아파트는 자식들에게 주면서 자신은 다차에서 거주해서 생활비를 아끼는 경우도 많았다. 바로 이런식. 다만 이 당시 혼란기를 틈타 돈을 벌어들인 부자들은 다차를 크고 호화스럽게 짓어서 호화 다차들이 많이 늘어나기도 했고 아예 단독주택으로 바뀌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경제사정이 나아지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다차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졌지만 여전히 경기침체가 올때마다 다차의 이용도는 높아지는 경향은 여전하다.

 

구 동독에도 다차와 굉장히 흡사한 별장이 있었다. 소련의 다차만큼이나 보급률이 높았다. 영화 굿바이 레닌에 비교적 잘 나와있으니 관심있으면 참조.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