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쉽게 따라하는 소통레시피 ④

 

엄마는 모처럼 친한 친구와 수다삼매경에 빠진다. 한동안 뜸했던 터라 할 이야기가 산더미다. 그런데 이럴 때는 꼭 아이들이 나타나 뭔가를 요청한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할 만한 일이다.

 6살 준석이 엄마도 친구랑 열심히 통화하고 있는데 준석이가 내일 친구들에게 자랑한다고 새로 산 바지가 어디 있느냐고 쪼로록 쫒아와 묻는다.
 “ 엄마, 엄마. 그저께 산 이쁜 바지 어딨어?”
전화 수화기를 가린 채 엄마는 소곤댄다.
 “ 쬐끔만 기다려, 엄마가 찾아줄게”
준석이는 알아들었다는 신호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잠시 뒤에 준석이는 엄마에게 바지를 찾아달라고 한다.
 “ 엄마, 그 바지 어디 있어? 빨리 찾아줘~”
엄마는 친구에게 “잠깐만~” 하고는 아까보다는 조금 더 큰 소리로 준석이에게 말한다.
 “ 준석아~, 엄마 통화 중이니깐 쬐끔만 기다려~”
 그리고는 양해를 구한 친구에게  “ 아~, 미안해~” 하면서 상냥한 어투의 엄마는 다시 친구와 즐겁게 통화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준석이가 다시 나온다.
 “ 엄.마~~~~, 바지 어디 있어? ”
준석이가 칭얼거리자 수화기 속으로 전해진 준석이의 목소리를 들은 친구가 다음에 전화하자면서 끊는다. 전화를 끊은 엄마는 준석이를 크게 부른다.
 “ 준석이, 너 이리 와 봐! 엄마가 기다리라고 했어, 안했어? 그거 하나 못 기다리고 칭얼거려서 엄마 창피하게 해야겠어. 엄마가 바지 찾아준다고 했으면 얌전히 기다리면 됐지 계속 칭얼거려야겠어”
 화가 잔뜩 난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방바닥까지 두드리는 엄마의 모습을 본 준석이는 겁이 났다. 그런데 준석이의 솔직한 마음으로는 엄마가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준석이는 엄마가 기다리라고 해서 방에 들어가 기다렸고 나름 기다린 끝에 엄마에게 다시 간 것 뿐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화를 낸다. 준석이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야단을 맞는다.

 눈치 채셨는가? 준석이는 엄마 말을 잘 들었다.  ‘쬐끔’을 기다리래서 기다렸는데 문제는 엄마의 ‘쬐끔’과 준석이의 ‘쬐끔’이 다를 뿐이다. 퇴근 길 남편들이 아내에게 흔히 하는 말 중 하나가 ‘금방 들어갈게’ 또는 ‘일찍 들어갈게’ 라는 말이다. 일찍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맛난 저녁상을 차리고 기다리는 데 남편은 12시가 다 되어 술 한잔 걸친 채 들어온다.
화가 난 아내는 한 마디 한다.
 “ 일찍 들어온다며?” 이 때 남편은 당황해서 한 마디 강하게 덧붙인다.
 “ 2차 가자는 거 다 물리치고 일찍 온 거야. 우리 팀원들은 다 2차 갔어. 난 그 유혹 뿌리치고 일찍 들어왔구만!” 볼멘 목소리의 남편은 되려 2차 뿌리치고 들어온 것을 후회하기까지 한다.
‘ 그냥 2차 갈걸~. 일찍 와도 알아주지도 않는데....’

 ‘일찍 갈게’ ‘금방 갈게’ ‘조금만 기다려’ 등의 말들을 일상의 언어로 사용한다. 어른들도 간혹 헷갈리는데 6세의 준석이에게는 더 어려운 표현일뿐이다. 교육학자 피아제는 6세 정도의 인지능력을 구체적 조작기라 말하는 데 말 그대로 구체적으로 보고 들은 것에 한 해 이해가 쉽다는 것이다. 즉 6세 준석이의 인지능력으로는 엄마가 말하는 ‘쬐끔’의 추상적 말의 뜻을 알기에 역부족이다.
따라서 아동기 초반까지 아이와 대화에서는 구체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준석이가 숫자를 볼 줄 안다면 ‘ 저 시계의 큰 바늘이 6자에 갈 때까지 기다려 줘’ 식의 ‘쬐끔’을 말해 줘야 한다. 가끔 놀이터에서 조금만 더 놀자고 칭얼거리는 아이들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한번만 더’ 놀겠다는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는 엄마는 ‘딱 한번 만 더’를 외치는 아이를 끌다시피 데리고 들어온다. 조금밖에 놀지 못했다는 아이를 붙잡고 놀만큼 놀았다는 엄마의 말에 그저 억울할 뿐이다. 이 때 역시 구체적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번만 더 놀겠다’는 시간이 측정가능하지 않으므로 심리적으로 여전히 부족한 놀이 시간이 된 것이다. 이럴 때도 역시 아이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옆에 친구가 들어갈 때까지만’ ‘누나가 학교에서 올 때까지만’ ‘시계바늘이 4자에 올 때까지만’ 등으로 아이 스스로 확인 가능한 시간이 된다면 부족한 느낌이 오늘은 ‘여기까지만’이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달랠 수 있게 된다. 구체적 대화 방법은 너와 나의 같은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엄마의 말을 일방적으로 듣게 된다는 억울함을 줄일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기다림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최숙희의 소통레시피

나이가 어릴수록 구체적 언어로 표현해야 됩니다. 준석이가 자기 수준으로 이해된 ‘쪼끔’을 억울해지지 않도록 해 줘야 엄마와의 관계가 좋아집니다. 어른들의 표현방법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기준을 제시해 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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