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양도와 선의의 전파(Pay It Forward)
어제 아주머니와 젊은 여성 두 분이 긴장한 표정을 한 푸들을 안고 (우리 동물병원에) 들어왔다. 안타깝게 또 유기견이었다.
1~2살쯤으로 보이는 어린 중성화 안 된(정확하게는 잠복고환 상태인) 남자 푸들이었다. 미용을 한 상태나 개의 외관을 볼 때 방금 집을 나온 듯하다. 도로에서 차에 살짝 부딪혔다 한다. 천만다행으로 다친 곳은 없었다. 혹시나 하며 스캐너로 마이크로칩을 확인했다. 없었다.
여기까지는 동물병원에서 매우 흔하게 반복적으로 겪는 상황이다. 이때부터가 상황이 미묘해진다.
이 아이를 어찌할 것인가.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일단 동물병원에 두고 보호자가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구조자가 보호자가 나타날 때까지 임시로 데리고 있는 방법이다. 다음으로는 구청이나 동물구조협회에 연락해서 보호소로 보내는 것이다.
대부분 세 번째 방법은 탐탁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결국 주인을 못 찾고 안락사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물병원이나 구조자가 임시보호를 해야 한다. 구조자가 임시보호를 하겠다고 결정하면 큰 문제가 없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동물병원에 맡기길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할까. 당연히 잃어버린 보호자가 나타나면 그 보호자가 계산하면 된다. 당연한 상식이다. 문제는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분들이 여기서 혼란을 느낄 것이다. 그래도 구조한 사람에게 돈까지 내라는 건 너무한 것 아닌가. 동물병원이 너무 돈독이 올랐다. 유기견으로 돈까지 벌려고 하다니 너무 심하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해는 된다. 응급한 상황이라 구조했는데 돈까지 부담하라고 하면 좀 과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길에 한 아이가 너무 배가 고파 울고 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 모습이 너무 딱해 식당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짜장면을 시켜줬다. 그리고 식당 주인에게 ‘불쌍한 아이니 공짜로 먹여주세요’라고 하고 갔다. 이 모습은 어떠한가?
구조자가 선의를 가지고 유기견을 데리고 동물병원을 온 것은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다. 문제는 그 선의를 동물병원 수의사에게 양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모습이다. 안타깝지만 동물병원은 유기견을 돌보는 보호해주는 공적 기관이 아니다. 동물 진료 서비스를 행하는 곳이다.
만약 동물병원에서 선뜻 유기견을 받아주었다면 그 동물병원 수의사는 매우 좋은 분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안했다고 나쁜 수의사라고 할 수 있을까? 좋은 수의사는 아닐지 몰라도 나쁜 수의사는 아니다. 앞선 식당의 예에서처럼 불쌍한 아이에게 밥을 공짜로 먹여줬다면 좋은 식당주인이겠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나쁜 식당 주인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선의는 어쩔 수 없는 책임이 뒤따른다. 구조를 하는 순간 그 책임은 따라오게 된다. 선의를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은 진정한 선의가 될 수 없다. 특히 동물병원은 위와 같은 사례가 수도 없이 발생한다. 그때마다 구조자의 선의를 양도받게 되면 동물병원은 유기견 보호소가 되고 만다.
안타깝지만 구조가 되는 순간부터 구조자는 책임이 자동으로 생겨버린 것이다. 동물병원에 임시로 맡긴다면 그에 따른 일정의 비용과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에 어떻게 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보호소를 보낼지 어딘가로 입양을 보낼 수 있도록 강구할지 아니면 동물보호단체와 협의해서 구조를 마무리할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병원까지 데리고 왔으니 자신은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선의가 아니라 나쁜 사마리아인이 되는 것이다. 최소한 책임을 갖겠다는 마음을 표현해 줘야 동물병원도 최대한 협조를 해줄 수 있다. 무턱대고 이제부터는 자신은 모른다는 식으로 나오면 동물병원은 매우 난감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여기서 서로 부딪힘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그냥 보호소로 보내면 모든 것이 끝나지만 앞에 언급했듯 그러면 어떤 경로를 가게 될지 보이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피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다행히 이 구조자들은 책임감이 있었다. 두 여성분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구조과정에서 처음 만났다. 두 분 다 개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두 분의 연락처를 남기고 젊은 여성분이 전단지를 붙이기로 했다.
나는 동행에 부탁해서 포인핸드(유기견등록앱)에 이 아이를 등록하고 서초구수의사회 밴드에도 올렸다. 다른 병원 원장님들이 빨리 주인을 찾길 바란다며 댓글을 남기셨다. 그리고 인근 동물병원에 모두 전화해서 해당 강아지의 특징을 설명하고 혹시 문의가 오면 연락달라고 당부드렸다.
그리고 당일인 어제 밤 보호자가 연락이 왔다. 포인핸드를 통해 연락이 왔다고 한다. 오늘 아침 보호자인 할머니와 구조자인 젊은 여성분이 모두 왔다. 개 이름은 ‘루이’이고 역시 한 살이 조금 넘었다고 한다. 아들 강아지인데 잠시 맡고 있었는데 집을 방문했던 방문간호사가 문을 연 사이에 나가버렸다고 한다. 간호사가 이야기를 안 하는 바람에 더 늦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들 가족들은 휴가를 망쳤고 손자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는데 이렇게 찾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감사는 구조자분께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이분이 루이를 직접 구조하고 이 분의 책임하에 병원에 맡기고 찾기 위해 전단지까지 붙였기에 이렇게 루이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루이가 집을 갈 수 있게 참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한 점도 기억하시라고 말씀드렸다. 함께 구조했던 아주머니,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이라는 동물보호단체, 서초구수의사회, 등이 같이 도왔다고 말씀드렸다.
보호자분이 소정의 사례비를 구조자분께 드렸다. 구조자는 계속 거부했지만 내가 받기를 원했다. 결국 감사히 받아갔다. 다시 잃어버리지 않도록 동물 등록도 마쳤다.
그리고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노보호자께 제가 한 말씀드렸다. 오늘 이렇게 루이가 집을 찾아가고 보호자께서 이리 감사표시까지 했기 때문에 저 구조자 분은 앞으로도 좋은 마음을 가지고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또 구조를 하실 거다. 그리고 보호자께도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보호자께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루이를 구조해준 저 여성분처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보호자께서 연신 당연히 그럴 거라며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하신다.
오래전 본 영화인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Pay It Forward)’가 떠올랐다. 주인공인 어린 학생이 자신이 선의를 행했을 때 그 선의를 받은 사람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댓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Payback) 다른 사람에게 또다른 선의를 행하게 하면(Pay it forward)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 질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실천해 가는 이야기다.
선의는 양도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시작한 선의는 내가 마무리를 지어야 진정한 선의가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진정한 선의는 결국 또 다른 선의를 만들어 낸다. 세상은 그렇게 선의를 배푼 사람들의 힘으로 조금씩 아름답게 정화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