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집안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 전주 관청기생과 사랑을 나누었지만 고을 수령에게 발각되어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강원도 삼척으로 도망을 갔다. 이후 전주의 수령으로 있는 자가 삼척 수령으로 발령받아 오게 되자 이안사는 동북면 함흥지역으로 다시 이주한다. 사랑이 무엇인지??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치는가?

리더십 집안
 이안사를 따라 170여 가구가 삼척과 동북면(함흥)지역으로 자발적으로 함께 이주하며 공동체를 이루었고 이성계 집안은 대대로 우두머리 역할을 통해 이 지역 토호로 성장함. 백성들의 신뢰가 대단했군??혹시 강제동원은 아니겠지?

배신자 집안
 이안사는 동북면 지역으로 이주 후 원나라(몽골)에 투항하여 관리가 되었다. 이후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은 원나라를 배신하고 고려에 투항하는 드라마틱한 변절을 감행한다. 넘버3 집안에서 넘버1, 2집안을 제키고 넘버1집안이 된것이다. 이성계 집안은 배신의 아이콘? 아니면 정치적 감각의 귀재?

왕따 집안
 무장으로 이름을 떨친 이성계지만 유학적 소양이 부족하고 동북면(함경도)사투리에 사용하는 변방의 듣보잡 집안으로 중앙귀족들에게 무시와 왕따를 받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성계는 권문세족인 신천강씨 강윤성의 딸과 결혼하였다. 바로 이성계 두번째 부인으로 훗날 세자 방석의 친모인 신덕왕후 강씨였다. 조선건국 이후 왕자의 난이 발생하는 불행의 시작이기도??그러나 어찌 미래의 불행을 예견할수 있겠는가?

칼잡이 집안의 콤플렉스
 이성계는 물론 이성계의 아들들은 대다분 칼잡이었다. 그래서 당시 과거와 음서를 통해 문벌을 형성하는 권문세족에게 비해 이성계는 열등감과 컴플렉스가 었었다. 그런데 다섯 째 아들 이방원(태종)은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10대 후반 과거에 급제를 했던 아들이었다. 이방원은 고려 광종 이후 과거제도가 생긴 후에 과거에 급제한 유일한 왕이었다. 이방원이 과거 급제하던날 무식한칼잡이 집안의 컴플렉스에 시달렸던 이성계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고려왕궁을 향해 큰 절을 했다지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 가문의 뒷담화는 참으로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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