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에 바칼로레아라는 말이 들어가 있어 프랑스 바칼로레아를 연상하며, IB도 그런 형태의 논술 시험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IB는 페다고지, 발도로프처럼 교육 철학으로 보아야 이해하기 쉽다. 다시말해 IB는 학습자가 주도하는 교육 과정으로서, 커리큘럼이며 시스템이고 학습 평가 도구이다.
IB 과정에서는 서술형 논술형으로 학습 결과를 평가하며, 객관식 문제는 없다. 내부 평가 외에 외부 평가를 전담하는 기관이 따로 있다. 3회에 다시 설명하겠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하는 서술형 논술 시험을 알아보자.

1) 논술은 하루 아침에 될 수 없다고 하지만 하루 아침에 될 수도 있다. 
논술 시험이 공교육 12년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라서 12년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고3 학생은 각 대학이 요구하는 형식(기준)을 이해하면 하루 아침에 논술 글을 쓸 수 있다. 
백일장 대회는 참가자가 형식과 내용에 상관없이 자신의 창의를 드러낸다. 그러나 논술은 출제자 지시에 따라 일정한 기준만 지키면 응시자 대부분이 고득점을 받을 수 있는 시험이다.

2) 인문사회계 논술은 대학이 수험생에게 대체로 어려운 제시문 몇 개를 주고 그 제시문을 분석하고 통합하여 담론을 찾아내게 한다. 
난해한 텍스트(글, 도표, 사진, 시 등)를 빨리 읽고 요약하여 그 담론에 어떻게 자기 색깔을 입혀 채점자에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시험이다.

대학 논술 출제자와 채점자는 여관에서 합숙하며 며칠만에 채점하여 합격 여부까지 판정해야 한다. 이때 수천명 서술형 답안지를 3번씩 교차 채점한다면 수만 개를 채점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인문사회 논술에서 제시문을 주는 것은 수험생 안목을 제시문에 한정하여 주어진 조건을 지키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채점 효율을 높이려 하기 때문이다.
(IB에서는 학생의 서술형 답안지를 외부 채점기관에 보내면 2달쯤 뒤에 결과를 알려준다.)

3) 자연계 수리논술은 서술형 수학 문제를 출제한다. 논술이라는 단어가 붙었지만 과거 본고사 수학 문제이다.

4) 입시에서 "논술"이라는 독립된 교과로 시험을 치르나, 알고보면 12년 공교육 결과를 통합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객관식 수능 시험으로 확인하기 힘든, 추론과정과 창의력과 통합 사고력 등을 확인하려는 시험이다.

5) 이런 논술 시험을 시행한지 25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거의 사교육에 의존한다. 
그 이유는 고교 교육과정에 논술이 독립된 교과가 아니라서, 학교 교사 중 누가 책임지고 가르쳐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교장부터 교사까지 아무런 법적 의무가 없다.
이것은 애당초 정부가 논술 시험을 학교 현장과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도입했으며, 지금까지 제도적으로 보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평가는 학습내용을 확인하는 절차이므로, 논술 시험을 도입할 때 뭘 확인할지를 정해야 한다. 
그걸 바탕으로 고등학교는 누가 어떤 내용을 어떻게 지도할지 커리큘럼을 짜고, 사범대학 교육과정에도 집어넣어, 교사와 학생이 다년간 충분히 익숙해진 다음에 논술 시험을 도입해야 했다.

그런데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도적, 법적 기준이 없다. 공교육에서 논술 시험에 대비하여 누가, 뭘 가르쳐야 하는지,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 커리큘럼이 없다. 사범대학 교육 과정에도 없다. 이게 나라냐?

6) 한때 사교육 시장에서 철학교사가 논술을 감당했는데, 공교육에서 법적 제도적 기준이 없을 때 나는 "윤리" 교사가 자발적으로 논술 지도를 자기 영역으로 가져가기를 바랐다. 
사범대에서 "윤리" 교사를 양성하기는 하나, 25년전에도 임용되는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데다가 그나마 윤리 과목이 입시와 무관한 탓에 학교에서 윤리교사 설 자리가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인문사회계 논술은 철학보다는 대체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까닭에 윤리 교과 영역과도 잘 어울린다. 그래서 공교육에서는 윤리교사가 입시 한 축을 맡아 논술을 담당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었다.

7) 따라서 현재 학교에서는 어느 교사가 논술지도에 앞장서주면 고맙고, 논술지도에 무심하다고 교사를 탓할 수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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