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부천 지역내 주민들에게 가장 큰 현안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괴안동, 역곡동, 작동산, 고강동을 지하로 지상으로 관통하며 건설예정인 서울-광명 민자고속도로를 둘러싼 갈등이다. 다른 하나는 수도권 서부지역 전력망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한전이 지하에 매설하는 특고압선이 지나는 상동, 약대동 구간을 둘러싼 갈등이다.

두 가지 현안은 지역 주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의 싸움은 절박하고 치열하다. 비록 그 상대가 토건자본과 국토교통부 그리고 거대 공룡기업인 한전을 상대로 한 싸움이기에 어렵고 힘들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다.

▲ 민자고속도로 공동대책위 국토부장관 집앞 시위

지난 11월 3일 광명-서울 민자고속도로 부천대책위원장인 한원상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은 승리’ 소식을 알렸다. 민자고속도로의 사업시행자인 서서울고속도로(주)가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건설교통부에 제출한 공사착수계가 반려되었다는 소식이다. 국토교통부가 밝힌 공사착수계의 반려 사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공사에 필요한 부천시 등 관계기관과의 협의 의견서가 제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동안 고속도로 공사예정지역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했던 지하 통과구간 안전성 검증 및 소음, 진동, 환경파괴 등의 문제점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 민자고속도로 공동대책위 청와대 시위

 어찌되었든 공사를 감행하려는 시행자 측에서는 공사에 따른 안전 등을 검증하기 위하여 부천시 등 관계기관과 주민들에 대한 협의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주민들이 원하는 건 안전과 생명을  담보하지 못하는 민자고속도로 건설계획에 대한 전면 백지화다. 그렇기에 주민들의 지난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편 지난 11월 12일에는 상동, 약대동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 등 50여명이 경기도청 앞에서 ‘특고압 결사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했다. 그 시간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에서는 한전이 부천시를 상대로 34만5000v 특고압선 설치를 위한 도로점용과 도시공원점용 불허가에 대한 취소를 요구하는 심의가 열리고 있었다. 부천시는 특고압선이 지나는 상동 구간 주민들의 안전과 민원 등을 이유로 특고압선 설치공사에 필요한 도로점용허가와 도시공원점용허가를 거부하였다. 이에 한전은 지난 7월에 경기도행정심판위원회에 불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이날 행정심판에는 한전과 부천시 관계자 그리고 이례적으로 주민들로 구성된 비대위 관계자 3명이 보조인으로 참석하여 의견을 진술했다. 30분이면 끝난다던 심의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점심도 거르고 ‘특고압 결사반대’를 외치던 목소리가 조금씩 지쳐갈 때쯤, 집회장소에서 제법 떨어진 행정심판정에 가있던 사람으로부터 구호 소리가 심판정까지 들리니 좀 더 크게 외쳐달라는 요청이 왔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초조하게 집회를 이어가던 가운데 행정심판위원회에 참석했던 부천시 관계자와 비대위 관계자가 돌아왔다. 심판위원을 비롯한 심판정의 분위기는 매우 좋은 편이었으나 최종 확인은 26일에 나오니 속단하지는 말자고 했다.

  행정심판이 열리고 하루가 지나지 않아 ‘행정심판위원회가 부천시와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행정심판위원회가 도로점용과 도시공원점용 가운데 하나는 한전측의 주장을 인용하고 하나는 기각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특고압 전력선 설치 공사를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한전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다. 행정심판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진행하는 방법과 안전을 위해 지하 30m 이상에 특고압선을 설치하라는 부천시와 주민들의 요구에 맞는 대안을 협의하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한전은 두 가지 방법을 함께 취할 가능성이 높다.

민자고속도로 건설과 특고압 전력선 설치를 둘러싼 치열한 싸움은 부천시와 주민들의 작은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아직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5년을 넘게 싸움을 지속하고 있는 민자고속도로 문제나 매주 목요일마다 촛불집회를 하고 있는 특고압 싸움은 모두 주민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주민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 싸움의 과정에서 행정기관과 정치인으로서의 한계성을 토로하던 이들을 견인하여 거대한 공룡을 상대로 함께 작은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한 이들도 주민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있는 시민의 위대한 승리라 부르고 싶다.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