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7일 이른 저녁. 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소사본동 골목에 있는 어느 집으로 우르르 몰려든다.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이웃집 아주머니가 궁금한 듯 묻는다. “무슨 일 있어요?” “집들이 해요. 놀러 오세요” 11월 27일은 볕드네 집들이가 있는 날이었다.

▲ 참 많은 분들이 볕드네 집들이를 축하해주러 오셨다

볕드네는 이 집에 사는 친구들이 붙인 별칭이다. 볕드네는 소사본동 주택가 골목에 있는 오래된 단독주택의 이층에 둥지를 틀었다. 집들이를 위해 공개된 볕드네는 방 3개에 거실과 화장실 모두 말끔하게 단장을 해놓아 축하해주러 온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현재 볕드네에는 모두들의 동은이와 혜진이 두 친구가 함께 살며 공동체를 꾸릴 또 한명의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 볕드네 식구들이 어설프지만 정성스런 공연을 축하객들에게 선보였다

볕드네의 공식 명칭은 ‘터무늬있는집 두더지하우스’다. 두더지하우스는 청년주거협동조합 모두들이 주거 빈곤층에 속한 청년들의 주거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지혜를 모아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집을 말한다. 터무늬있는집은 사회투자지원재단 부설 터무늬제작소에서 시민출자로 지원하는 청년주택의 브랜드를 말한다. 터무늬있는집 1호는 서울 강북구 번동에 있다. 소사본동에 둥지를 튼 볕드네는 터무늬없는 집 2호인 셈이다.

▲ 집들이에 참석한 터무늬있는집 시민출자자들은 감사장을 받으며 많이 쑥스러워했다.

모두들의 한 이사는 터무늬있는집 볕드네의 입주과정을 이렇게 말했다.
“청년주거 문제에 대한 모두들의 활동은 2013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주거에 대한 고민의 과정에서 2017년에 이 문제를 사업화해서 민간기금을 만들어보자는 맥락에서 모두들과 재단이  만나게 된 거죠. 그래서 2018년도부터 저희가 본격적인 준비를 했습니다. 터무늬제작소와 모두들이 함께 공동대표와 운영위원을 꾸리고 함께 실행계획을 짰어요. 시민출자금의 규모도 정하고 지역도 정하고 발품을 많이 팔아서 이 집에 안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볕드네의 전세보증금은 1억 천만원이다. 이 돈은 31명의 선배시민들이 1백만원에서 2천만원까지 낸 출자금으로 마련되었다. 시민들이 출자한 청년주택기금(보증금)의 관리와 상환등은 사회투자지원재단이 한다. 그리고 볕드네에 사는 청년들은 보증금의 연 4%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 명이 나누어 주거비로 분담해서 낸다. 한 사람당 12만원 남짓이다. 콧구멍만한 창이 달린 한 평 남짓한 고시원의 월세가 30만원 안팎이니 가격이나 주거의 질을 따져봐도 비교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안정된 집에 함께 사는 식구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오래 살며 친구를 사귀고 이웃을 만나며 지역에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터전이 생겼다는 점이다. 

▲ 집들이를 위해 특별히 공개된 방

모두들의 또 다른 이사의 말이다.
“두들이 주택을 공급하고 함께 살기위해 실무자 한 두명이 해왔던 고민들을 모든 조합원들이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워크숍을 열고 함께 고민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집을 구하기 힘드니 누군가 집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고민을 벅어나, 어떻게 해야 우리가 지역에서 떠나지 않고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자하는 생각에서 모두들 뿐만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마을지도도 그리고, 이곳이 우리의 마을인지 아닌지도 생각해보고, 혹시 우리 마을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마을이 될 수 있는지 상상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런 상상들을 터무늬있는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구현하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집은 삶의 기준점이자 관계의 출발점이다.
주택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1인가구의 최소주거기준은 14㎡이다. 이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와 지하나 옥탑 그리고 고시원 등 주택이 아닌 곳에 거주하는 경우를 ‘주거빈곤’이라 한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1인 청년가구의 주거빈곤률은 2015년 기준 37.2%에 달한다고 한다. 대략 10명중 4명이 주거빈곤 상태에 있다는 말이다. 정말 터무늬 없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집은 삶의 기준점이자 관계의 출발점이다. 청년들이 집을 고민하고 마을과 지역을 고민하며 상상력을 현실로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제 지역이 그리고 마을이 청년들의 노력이 좀 더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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