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숙아, 사랑해 글 싣는 순서]
프롤로그 : 영웅 영숙이
1. 우리 영숙이는 선생님 시킬 거라...
2. “호랭이는 뭐하나? 저 간나 안 물어가고!”
3. 와야국민학교
4. 길가에 앉아서, 걸어 다니며 본 풍경들
5. 남의 집 살이

6. 진모엄마는 키가 시집가서 컸어.
7. 내 살림과 아이들
8. 이사
9. 도시생활
10. 시간 속을 걷다.

 

4. 길가에 앉아서, 걸어 다니며 본 풍경들

논둑 길가에 길게 서 있는 큰 포플러나무는 아버지처럼 든든하게 나를 내려다본다.
30리 학교 가는 길엔 산도 만나고 개울과 강도 만난다.
강 건너쯤 버들강아지가 피었다.

 

“복슬복슬 강아지꼬리, 아이고 이쁘다”
나는 버들나무 줄기를 따서 피리를 만들어 불면서 걸어간다.
피~피릴리리~ 피리리~
찰박찰박 차가운 개울이 나타난다. 바지를 걷고 물속에 들어가니 차가운 물이 무릎까지 찰랑거린다. 친구들이랑 가기도 하고 혼자 가기도 한다. 고무신을 신은 발바닥에 땀이 날 쯤 넓은 도로인 신작로가 나타나면 도로 너머에 학교가 보인다. 시골구석에서 시내로 나온 것이다.
 
지천에 나는 꽃과 나무는 오고 가는 길에 먹고 놀 수 있는 친구들이다. 봄에 피는 찔레나무에 쫑이 나면 쫑을 따서 먹고, 시금 풀도 쫑을 꺾어서 먹는다. 벚나무에 버찌열매, 뽕나무에 오디열매, 머루를 따다 보면 손이 시커매진다. 산에서 발견하는 다래는 양껏 따다 놔두면 말랑말랑해진다. 그때 먹으면 되게 맛있다.  나물취, 미역취, 잔디싹, 곰취, 갬치... 이름이 정확한진 몰라도 우린 이렇게 부르며 뜯었다.  삽초라는 풀은 이파리는 나물로 먹고 뿌리는 약초로 썼다. 가을에는 개울 옆 밤나무에 밤송이가 가득하다. 개중에 몇 송이는 개울에 떨어져 있다. 물에 떨어진 밤을 까서 먹으면 고소하고 맛있다.
칡뿌리도 캐어먹었다. 장정들이 있는 집은 칡뿌리를 캐내어 떡메에 친다. 그리고 칡 물 밑에 가라앉은 앙금을 갖고 칡송편을 만들어먹는다. 칙은 뿌리가 엄청 얽히고 단단해서 힘이 없으 면 캐지도 못했다. 우리 집은 아버지가 안 계셔서 작은 칡뿌리를 씹어 먹는 게 고작이었다.
 
 “영숙아, 영자야, 뽕잎 따러 갈 거니까 따라나서라”
  시골에서 부모 도와 하는 일 중 ‘누에치기’는 일상이다. 엄마가 앞장서고 오빠, 동생들이랑  30리를 걸어 뽕잎을 따러간다.
“그거 갖고 택도 없다. 최대한 많이 담어라.” 엄마가 뽕잎을 따면서 잔소리를 한다.
보자기에 바늘구멍 들어갈 틈 없을 정도로 뽕잎을 쑤셔 넣는다. 돌덩이처럼 단단한 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뽕잎을 풀어 놓는다. 축축한 뽕잎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고 내 등은 땀범벅이다. 넓게 펴서 널어 뽕잎이 숨을 쉬게 해준다. 뽕잎은 봄, 가을에 잎이 두 번 나기 때문에 누에를 한 해에 두 번 키운다. 봄에 치는 걸 춘잠이라 하고 가을에 치는 걸 추잠이라고 했다.

시골에는 농사 말고는 돈 나올 구멍이 없다. 누에를 키우려면 방 하나를 비워야 한다. 방안에 넓은 잠박에다 누에를 키운다. 뽕잎을 가느다랗게 썰어주면 먹으면서 애벌레가 자란다. 누에들이 뽕잎을 어찌나 잘 먹는지 뽕잎 대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누에는 네 번 잠을 잔다. 일주일 깨어났다 다시 잠든다. 네 번 자고 깨서 6일을 더 먹여 키우면 누에가 늙는다. 그다음엔 소나무를 베어 마당에 세워놓는다. 늙은 누에를 밑에 놓으면 누에가 올라가서 집을 짓는다. 딱딱한 누에고치가 되는 거다. 그렇게 누에를 따서 갖다 주면 돈을 받았다. 그 돈이라도 벌어야 어른들은 자식들 옷 한 벌이라도 겨우 사줄 수 있었다.
우린 돈을 모르고 살았다. 밭에서 키운 채소, 옥수수, 보리, 밀로 밥 해먹고 산에서 뜯은 나물로 반찬도 하고 국도 끓여먹었다. 당연히 이렇게 사는 건 줄 알았다.

5. 남의 집 살이

열한 살, 더운 여름방학이다. 햇볕이 작렬하는 어느 날 오촌 친척아줌마가 찾아왔다.
“딸 없는 게 항상 아쉬웠어. 내가 아들놈만 셋이잖어.”
오촌 친척아줌마는 나를 데리고 가서 잘 키워서 학교도 보내주고 시집도 보내주고 하겠다는 것이다.
“영숙아,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는 걸 봐라. 살림도 뻔하고 힘드니, 가서 잘 먹고 잘 살아라.”

친척아줌마 집에 도착했다. 편하게 놀고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눈치가 백단인 나는 불 때서 밥하고 집안일을 거들었다. 그런데 작은 손으로 해야 하는 일들은 힘에 부쳤고 오촌아줌마는 그것들을 당연하게 여겼다. 우리 집도 아닌 곳에서, 우리 가족 돕는 일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외롭고 힘겨운 날들이 한 달 가까이 지나갈 쯤 고모부중 한 분이 친척아줌마네 집에 잠깐 들리셨다. 난 기회다 싶어 고모부 옷자락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엄마는 동생 영자를 보냈다. 영자는 그곳에서 나처럼 집안일을 억척스럽게 해내며 2년을 있었다. 아니, 사실은 그동안 아무도 영자가 있는 곳에 가지 않았기에 영자는 집에 올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자가 보고 싶어 몇 십리를 걸어서 찾아갔다.  동생은 집에 다녀오고 싶다고 내 뒤를 따라나섰다. 아줌마한테는 꼭 다시 온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아줌마는 혹시 다시 안 올까 싶어 말끔한 옷은 주지도 않고 허름한 옷을 입혀서 보냈다. 남보다 못한 친척이다. 당연히 영자도 그 집에 가지 않았다. 영자를 데려갔다고 한동안 친척아줌마가 나를 미워했다.

 

내가 열다섯 살 겨울에 엄마는 동네 둘러 소개받은 식당 하는 집에 가라고 했다. 계집애들 한 입 덜면서 그렇게 밥 벌어먹고 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반항도 못하고 살이 에이는 날씨에 그곳에 도착하니 떡하니 김장하는 날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방에도 못 들어가고 김장배추를 리어카에 실어서 나르고 김장하는 것을 도왔다. 손가락이 떨어져나가는 듯 했다. 그 집 자식들은 안 시키고 나만 뼈 빠지게 일을 하는 게 억울하고 힘들어서 한 달도 못 되어 집에 돌아와 버렸다. 난 죽어도 남의 집 식모살이로는 못 살 것 같았다. 당연한 순서처럼 엄마는 영자를 그 집에 보냈다. 내 동생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왔다. 그렇게 식당 집에도 잘 붙어 있었다. 남의집살이가 내가 살아야하는 인생이라고 받아들인 듯 했다. 그 뒤로 영자는 춘천으로 남의집살이를 옮기며 월급을 받았다. 월급 모은 걸 큰오빠가 빌려갔다가 홀라당 말아먹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영자는 흘러흘러 부산으로 갔고 배를 타는 남편을 만났다.

6. 진모엄마는 키가 시집가서 컸어.

해가 바뀌고 나는 막 열일곱 살이 되었다. 우리 집엔 장가간 오빠네가 같이 살고 있었다. 나보다 여섯 살 많은 올케는 첫 딸을 낳았다. 나이가 몇 살 차이 안 나는 우린 좁아터진 집에 붙어 살면서 때때로 신경전에 말다툼을 하고 투닥거렸다.
 고모 중 한명이 집에 놀러왔다. 고모는 고모부와 헤어졌다. 고모부가 바람이 나서 첩과 살고  고모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와 어느 집 사랑방을 빌려 사는 중이라고 들었다.
“집 근처에 ‘제수’란 이름의 총각이 사는데 사람이 좋아 보여. 영숙이랑 짝 맺어주면 어때?”
알고 보니 고모는 ‘제수’란 사람의 집을 빌려 살고 있었다. 집을 세주고 그는 아랫마을에서 산다고 했다.
“그럴까? 집에서 지 올케랑 툭탁거리는 꼴 보기도 싫은데.”
“시집 안가, 싫어!”

어른들은 내 생각 따윈 아랑곳 않고 몇 번 얘기를 주고받더니, 한날 키가 좀 커 보이는 ‘제수’란 남자가 엄마를 보러왔다. 나는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사랑방에 들어가 버렸다. 고모는 일사천리로 중매쟁이 노릇을 해댔다. 사주가 오고 가더니 2월이 끝나기도 전애 혼례 날까지 잡고 말았다.
“안 간다잖아. 가기 싫다고! 누군지도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한테 왜 시집을 가냐고!”
“이 간나야! 다 그렇게 시집가서 사는 거지. 벌서 동네 소문 다 났는데 두말 말고 혼례 치를 준비나 해!”
나는 집을 나왔다. 도망가고 싶었다. 아무도 못 찾게 멀리 가고 싶었다. 그런데 갈 곳이 없었다. 아는 곳이라곤 50리길 떨어진 이모가 사는 송정이 제일 먼 곳이었다.
이모 집에 숨는 마지막 발악은 다음날 큰 오빠의 등장으로 꺾이고 말았다. 큰 오빠가 나를 마주 앉히고 방바닥에 칼 한 자루 놓고 사생결단을 냈기 때문이다.
“영숙아, 니 이러고 나면 어디 혼처가 들어오지도 않는다. 끝까지 니가 시집 안가겠다면, 여기서 둘이 콱 죽어뿌자”
나는 머릴 뜯고 소리 지르며 울었다.

며칠 후 나는 ‘제수’란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 양친도 죽고 혈육하나 없는 가난뱅이 남자다.
나이가 나보다 아홉 살이 많은 남자, 큰오빠보다 한 살 많은 남자는 말도 거의 없다. 얼굴이 못 생긴 건 아닌데 정이 안 간다. 갈 리가 없다. 내 마음은 얼음처럼 꽁꽁 얼었다. 
그는 얼마 전 결혼식을 올렸다가 한 달 만에 여자가 돈을 갖고 도망갔다고 들었다. 그래도 열일곱 생일도 안 지난 딸을 제처 자리로 가라고 한 엄마가 밉다.  남자는 빚을 갚아야 했는지, 그나마 갖고 있던 집을 팔았다며 아랫마을로 이사를 가자고 했다. 내가 어려서 그랬는지 빚을 얼마나 어떻게 졌는지 알려주지 않아서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그 뒤로 살림은 더 어려워졌다.
그 해 10월, 내 뱃속에 아기가 자라고 있었다. 내 키도 계속 자라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언니네 글밭>은 2017년 여러가지연구소에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글로 정리하고 소통하고자 글 씨앗을 뿌린 여성주의 글쓰기 모임입니다. 작은 책으로 출판한 언니네 글밭의 글을 콩나물신문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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