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작은 딸이 눈을 겨우 뗀 강아지를 안고 들어왔다.
오래전에 집 안에서 개를 키워본 적이 있어서, 또 다시 개를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그렇게 인연이 닿았다.

 

그런데 이 개가 거리를 두는 건지, 영역을 확보한 건지, 길들여진 건지 요즈음 변했다. 
강아지로 처음 왔을 때는 아침에 누워있는 내게 와서 일어나 놀자고 내 얼굴을 핥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잠자는 나를 가만히 지켜본다. 내가 자는 척 하면, 얼굴을 핥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 옆에 앉아 내가 일어날 때를 기다린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어렸을 때는 장난감을 거실 저쪽으로 던지면 물어다가 다시 던지라고 끊임없이 내게 건넸다. 그런데 요즘에는 내가 별로 재미없어 하는 것을 아는지, 영혼없이 던지는 것을 아는지, 한두 번 물어오다가 "됐거든"하며 그만 둔다.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반가워하는 것도 예전같지 않다. 만나서 잠깐 몸부림을 치다가 이내 제 편한 자리로 간다. 이쯤으로 얘가 제 부양자에게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는 건가 싶다.

어쩌면 개뿐만 아니라 친구도, 부부도, 부자도 서로 적당히 편한 상태는 자기 세계를 확보한 것인지 모른다. 내 영역을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네 영역을 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 같다. 세월은 지지고볶는 모난 삶을 적당히 다듬어 둥글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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