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안팎으로 보도되는 뉴스가 사람의 감정을 유난히 피곤하게 하고 있다. 안으로 느껴지는 불편의 근원이 밖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측면에서 더 안타깝다. 그 불편은  불일치를 불러온다는 사실과의 관계에서 인과를 거쳐 가치의 판단마저 흐리게 한다.

갈등(葛藤)을 자연스럽게 생각해본다. 갈등은 크게 보아 내/외적인 것으로 외적인 것에서 비롯되어 개인을 넘고 사회와 국가를 대상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그 처음 의미는 자연에서 비롯된다. 칡과 등나무의 관계는 가히 적대적이다. 얽힘의 관계가 도저히 풀 수 없음을 자연에서 목격한 이후 사람 사이로 전이(轉移)되고, 개인의 내적인 번뇌와 망상으로 전화(轉化)하기에 이른다.

개인의 내적 갈등이야 타인이나 사회적인 피해가 없는듯하여 다행처럼 보이지만, 집단화 할 때는 이해관계가 얽혀 고달픈 선택을 강요당한다. 적대관계가 되면 갈등과 대결을 불러오고 급기야 다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실을 넘고 인과를 건너면 가치를 판단해야 하는 피곤과 불편을 겪어야하니 말이다.

지금 국가적으로 정치적 집단의 이해 갈등으로 국민은 적지 않은 불편과 불만과 강요를 요구당하는 불평으로 집단적 스트레스가 가히 질병 수준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하여 이제는 국민이 진정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숙고해야 하는데, 문제는 영양가가 전혀 없다는데 이르면 갈등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경우를 견뎌야만 한다.

정치인은 개인이면서 공인(公人)일진대 선공후사(先公後私)가 사라질 때 그 개인은 갈등의 계곡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시작의 초심이야 개인적 갈등의 늪이 없고 개인의 이익은 불씨조차 없었겠지만, 집단에 이르면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야말로 이해관계의 맹인으로 ‘소금기둥’이 되는 것이다.

칡과 등나무의 관계가 부정적 갈등만을 바라본 처음은 주축(主軸)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축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는 상대적 관점에 의한 공익적 측면에의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면 견고한 긍정적 효과도 분명 존재할 수 있다.

입춘(立春)이 다가온다. 새해 첫 절기로 가슴 설레는 시간이다. 다가올 희망이 비록 불명하다고 해도 기대는 꿈만으로 의미가 있을 때가 행복일 수 있다.  번뇌가 별빛일 수 있다면 밤하늘의 어둠은 분명으로 다가옴을 다행으로 간직해야 할 일이다. 매서운 추위가 먼지보다 나은 것은  거울에 먼지 가득한 내 마음의 갈등 때문은 아닐까?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