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대한민국은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것이 '훈육'이라 불리며,  '가정 폭력'이라는 죄는 다른 죄들과는 다르게 '가정사'란 이유로 둔하게 적용된다. 또한 철저한 개인주의 성향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들은 막을 수 있는 일임에도 모른 척 지나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한 해에도 부모와 연관된 수많은 범죄 기록이 남겨지고 있다.
 이는 수많은 문제 제기와 바꿔야 한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더 이상한 점은 아이들은 자신들이 맞는 것을 이상하다 여기지 않으며 사람의 기본적인 방어본능조차 버려두고 자신이 맞는다는 사실은 당연시 한다는 것이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사람은 그 누구든 맞을 이유가 없으며 그 누구도 다른 이를 때릴 권리가 없고, 그 권리는 누구에게도 주어지면 안 되는 것이다. 유치원에 있는 어린아이들도 다른 사람을 때리는 것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커가면서 그 사실이 잊혀지는 이유는 자신의 환경에 본능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맞으면서 큰 아이와 맞지 않으며 큰 아이의 차이는 뭘까. 맞으면서 크는 아이는 자연스레 성격이 소극적이고 내성적으로 변한다. 자기주장을 잘 내세우지 못하며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해 지는 것이다. 반면 맞지 않고 자란 아이는 성격이 외향적이고 적극적이며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잘 드러내고 개성이 강하다. 물론 이 내용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타고남의 영향이 더 클 수도 있으나 전반적인 사람의 모습을 보면 이러하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예로 들자면 지금 어른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어린 시절 맞으며 교육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어른들의 모습이 맞으며 교육받은 아이가 성장한 모습과 딱 들어맞으니 말이다. 무뚝뚝하고 자신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으며 감정 조절에 미숙하고 표현을 잘 안 하는 것, 그야말로 어른들이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안다.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혹은 행복한지 말이다. 물론 다른 곳에 한 눈 팔려 나의 모습에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누가 날 때렸을 때, 소리를 질렸을 때 한 번이라도 행복한 적이 있는가? 아니 행복할 수 있는가? 나라면 절대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한 교육 방식으로는 절대 어떠한 가르침도 할 수가 없다. 당신의 아이가 앞서 예를 든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지 않는다면 진정한 어른으로 자라길 바란다면 아이를 호통치는 것이 아니라 지지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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