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원미산에 올랐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인데 미세먼지가 뿌옇게 하늘을 가렸다. 관악산, 소래산, 계양산 등 원미산에 오르면 쉽게 볼 수 있는 산들도 보이지 않고, 어느덧 부천의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리첸시아 아파트도 오늘은 그 위풍당당함을 잃은 채 고독하게 서있다. 그래도 산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갑갑하게 방구석에 갇혀있느니 산이나 한 바퀴 돌고나서 삼겹살에 소주나 한 잔 하자는, 모두 나와 같은 마음에서일까?

 

미세먼지도 미세먼지지만 사실 요즘 들어 산에 오를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문제는 다름 아닌 소변 문제다. 집에서 나올 때 꼬박꼬박 화장실에 들렀다 오는데도 한 시간이 안 돼 슬금슬금 신호가 오니, 점잖은 체면에 아무데서나 일을 볼 수도 없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인적 없는 장소를 찾아 헤매자니 여간 고역이 아니다. 하기야 그것이 어찌 나만의 문제일까 마는...

한 몇 주 됐나 보다. 그날도 쉬엄쉬엄 홀로 산을 오르는데 아니나 다를까 슬슬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급해져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가다보니 마침 눈앞에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왼쪽 길은 비교적 너른 등산로이고 오른쪽은 사람들의 통행이 많지 않은 오솔길이다. 두 길은 약 삼백 미터 전방에서 다시 합쳐지는데 평소에는 무조건 왼쪽 길로만 다녔으나 마음이 급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야트막한 언덕을 막 넘어서니 저 앞에 웬 여인이 돌아앉아 볼일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옆에는 남편인 듯한 나이 지긋한 남자가, 아마도 망을 보라는 아내의 엄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던 듯,  낯선 이방인의 출현에 어쩔 줄 모르며 헛기침을 연발하는데 참으로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오던 길을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거기다가 상황을 눈치 챈 여자가 허둥지둥 바지춤을 끌어 올리는데 당황하다보니 그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는, 참으로 대략난감의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죄송한 마음에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부부를 지나쳐 왔는데, 불과 2~3초의 짧은 시간이 그처럼 길게 느껴진 적도 없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두 분께서 혹시 이 글을 보시거든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시길 바란다.

갈수록 산을 찾는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다. 더구나 원미산, 작동산 같은 부천의 산들은 거의 동네 산책로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산 위에 화장실 몇 개 쯤은 설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예산문제도 있고 관리의 어려움도 따르겠지만 환경도 보호하고 주민의 편의도 증진하는 일이니 관계 기관에서 적극 나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마 전, 높이 161.54m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독일의 울름 대성당이 젊은이들의 무분별한 방뇨와 구토로 붕괴될 위험에 처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울름시 경찰은 성당 방뇨 행위에 대해 순찰을 강화하는 한편, 방뇨 행위 벌금을 100유로(약 12만4000원)로 두 배 높였으나 단속의 실효성은 없다고 한다. 관광객들의 안일한 인식도 문제겠지만 일단 충분한 화장실 마련이 더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한다. 아무쪼록 우리 부천의 자랑인 해발 167미터의 원미산도 무분별한 방뇨로 인해 붕괴 위험(?)에 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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