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출신 미혼모 숙희(가명·26)가 저희 집에서 명절을 지내기 시작한 게 2015년 구정부터였네요. 명절엔 갈 데가 없어 외롭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큰엄마네 집에서 설을 보내면 안 될까요?"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러라고 했어요. 그때부터 숙희가 아내를 큰엄마라고 불렀어요.

저도 숙희의 외로움을 잘 알죠. 충청도가 고향인 어머니는 고아나 다름없었고 피난민인 아버지는 철조망이 가로 막아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38따라지였으니까요. 판자촌에 사는 친구들은 설이 되면 시골로 명절 쇠러 가거나 일가친척을 만나 웃음꽃을 피우는데 오갈 곳 없는 우리 집은 쓸쓸한 섬이 되었죠. 가난해도 똑같은 게 아니구나! 우린 더 가난하고 더 외롭구나! 그래서 명절이 싫었어요.

숙희는 첫 번째 설 명절엔 돌도 안 된 첫째 솜이를 데리고 왔었죠. 그때까지는 보육원 출신 동거남 수철이와 살았죠. 아기가 아기를 낳았다는 말처럼 어린 미혼모 숙희를 보면 짠했죠. 부모 사랑을 받지 못한 외로움 때문에 자신과 처지가 같은 사내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그러다 애가 생겨 혼자 아기를 낳았고, 솜이를 낳으면서 서러워 울었고, 분유가 떨어지고 쌀이 떨어져 발을 동동 굴렀고....

그해 오월엔 따뜻한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솜이 돌잔치를 해주었어요. 솜이는 돌잡이에서 칼(요리사)을 잡았어요. 멋진 셰프가 되길 빌었어요. 그 이후로 숙희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아내와 상의했죠. 숙희가 둘째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않았어요. 솜이 하나를 키우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어서 걱정했는데 아내의 가슴은 계속 내려앉았어요. 둘째 준이(가명) 돌잔치를 하기도 전에 동거남 수철이가 떠나고 만 거예요.

화가 난 아내는 두 아이를 두고 떠난 수철이를 나쁜 놈이라며 욕했어요. "자기도 버림받았으면서 자기 아기를 버리다니 나쁜 놈, 나쁜 놈!", 가난만 대물림 되는 게 아니라 버림도 대물림 되는구나! 아내는 눈물을 흘리면서, 욕을 하면서 숙희를 위로했어요. 그리고 둘째 솜이 돌잔치를 해주었어요. 그런 뒤에는 숙희의 꿈이자 자립을 위한 보육교사가 되기 프로젝트에 돌입했어요. 2년간 교육비를 대주었더니 올해에는 보육교사가 될 계획이라고 했어요.

미혼모 세 가족으로 북적거릴 2019년 설 명절

 이번 설엔 숙희와 두 아기뿐 아니라 소년원 출신 미혼모 별이 엄마(26)와 세 살 된 별이(가명) 그리고 돌을 앞둔 다솔(가명)이와 다솔이 엄마까지 일곱 명의 식구들이 저희 집에 오기로 했어요. 예전 명절엔 미혼모와 아기뿐 아니라 소년원 출신 아이들과 소년희망공장 아이들도 저희 집에 초대했는데 지난 설엔 제가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초대하지 못했어요. 이렇게 명절을 쇠다보니 저희 부부는 불효자가 되고 말았어요. 정작 양쪽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니까요.

별이 엄마는 아내 속을 썩인 미혼모예요. 부모를 잃고 거리를 떠돌다 사고를 치고 소년원에 가고 그러다 사내를 만나 임신을 해서 별이를 낳은 별이 엄마는 치아가 너무 상했어요. 그래서 잘 웃지도 못했어요. 이렇게 두면 사회생활 하기 어려울 정도였기에 어게인 후원자이신 서울성모병원 수녀님의 도움으로 임플란트시술에 들어갔는데 치료를 착실하게 받지 않았고, 연락이 끊어졌다가 돈이 떨어지면 연락했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서 속상했고...

속이 좁은 저는 올해 설부터는 별이 엄마를 부르지 말라고 했어요. 음식 타박은 물론이고 별이에게 욕설하며 쥐 잡듯이 하면서 명절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아내 속을 썩이면서 아내를 울게 만들어서 오지 말라고 했는데 아내는 "우리마저 외면하면 되겠냐!"면서 초대했어요. 아내는 아무리 봐도 천국 갈 것 같아요. 저는 못 갈 것 같고요.

올해 첫 날에 만난 다솔이 엄마도 오기로 했어요. 단칸방에 살던 다솔이네가 최근 이사 갔어요. 그래서 공단 근처로 이사 간 다솔이네 옥탑방을 찾아가 다솔이 보험을 들어주었어요. 20년간 드는 보험인데 다솔이가 20세가 되면 대학 학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고, 다솔이가 아프면 병원비를 대주는 보험으로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의 미혼모 지원사업이죠.

이사 간 옥탑방은 문제가 많은 방이었어요. 가장 큰 문제는 습기였어요. 어떻게 이런 방을 구했을까?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습기가 심각해서 제습기를 사주었어요. 가난하면 참는 게 습관이 돼요. 돈이 없어 참다가 병을 키우고 어쩔 수 없어 빚을 내 치료하고, 빚 갚을 길이 없어 빚을 더 내고, 빚에 쫓기다 아기를 버리고, 인생을 포기하고.... 어떤 미혼모가 자기 아기를 버리고 싶겠어요. 누군가 손을 잡아주면 아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 부부는 경험했어요.

다솔이 엄마는 참 훌륭해요. 다솔이를 지키려는 의지가 강해 보여서 고마워요.  그러면 돼요. 그러면 살 수 있어요. 내민 손을 뿌리치지 않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데요. 5년째 미혼모를 도우면서 중요한 것은 따뜻한 정과 믿음이란 것을 깨달았어요. 후원금이 중요하지만 정도 없고 믿음도 없으면 서로 상처입고 말아요. 다솔이 엄마도 숙희처럼 자립의 꿈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남보란 듯이 아이들을 키워서 훗날에 옛말하며 웃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제 설음식을 준비해야 해요. 아내는 어게인 일 때문에 바쁘니까 제가 시장에 가서 고기와 전을 사야해요. 이래봬도 제가 미혼모 설음식을 5년째 차리고 있어요. 저희 집이 북적거리겠네요. 설은 이래야 설이죠. 올해는 꼰대처럼 잔소리하지 말고 덕담만 해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제가 가끔 잔소리를 하거든요.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주머니를 열라는 말이 있는데 맞아요. 세뱃돈 주면서 복 많이 받아라만 할까요. 아기를 지키면 복 받는다고 잔소리할까요.

다솔이 돌잔치에 초대합니다.

다솔이는 왜 아빠도 없이 태어났을까? 돈이 없어서 돌잔치를 못한다는 다솔이 엄마에게 나는 왜 돌잔치를 하자고 했을까요? 다솔이는 못 배우고 가난하고 어린데다가 아빠조차 없는 미혼모에게 태어났어요. 그건 다솔이 잘못은 아닐 거예요. 물론 다솔이 엄마의 잘못도 아니죠.

다솔이는 외면당하려고 태어나지 않았고, 미혼모 아기라고 무시당하려고 태어나지 않았고, 서푼어치도 안 되는 동정을 구하려고 태어나지 않았고, 차별받고 낙인찍히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다솔이는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죠. 다솔이가 태어난 이유는 사랑받고 축복받기 위해서죠.

다솔이 돌잔치를 준비하면서 깨달았어요. 우리 어른들이 다솔이를 위해 돌잔치를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요. 미혼모와 다솔이가 우리 곁에 온 것은 돌처럼 굳어버린 우리의 마음을 녹여주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리가 미혼모를 위로하고 다솔이를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미혼모가 우리를 위로하고 다솔이가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 돌잔치를 허락해주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다솔이 돌잔치가 커졌어요. 제가 아는 목사님이 다솔이 돌잔치에 참여하기로 했어요. 중국동포교회 목사님이신데 소외된 동포들이 소외된 미혼모 아기를 축복하면 좋겠다고 했어요. 목사님이 돌잔치 공간을 마련하고 음식을 장만하기로 했어요. 성악가 목사님 팀은 축복의 노래를 들려주기로 했고, 곧 아기를 낳을 변호사님은 축복의 시를 낭송하기로 했고, 돌잔치 비용을 아껴 후원해주신 엄마는 축복의 편지를 낭송하기로 했어요. 다솔이 잔치는 축복의 잔치가 될 것 같아요.

다솔이가 태어나고 봄이 왔어요. 비록 아빠 없이 태어났지만 하늘이 다솔이의 숨소리와 웃음소리를 듣고 매우 좋아했어요. 하늘이 좋아하시는데 땅인들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늘과 땅이 좋아하고 기뻐하는 아기 다솔이 첫 생일잔치에 초대합니다. 다솔이를 지키며 키운 훌륭한 어린 엄마를 축복하는 돌잔치에 초대하니 부디 참석하셔서 다솔이와 어린 엄마를 축복해주시고 축복받으시길 빌어요. 그러면 언 몸과 맘이 녹으면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일시 : 2월 10일(일) 오후 5시30분
▶장소 : 한국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4층 강당(서울시 구로구 남부순환로 1291)
 ▶문의 : 010-5387-6839(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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