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1마리에서 시작한 고양이와의 동거는 벌써 13년차에 이르러 5마리까지 대묘가족을 이루고 힘들게(?) 살고 있다. 사람보다는 고양이와 더불어 보내는 시간이 많다.
1마리에서 2마리로, 늘면서 느끼는 것은 녀석마다 성격과 취향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녀석들에게 인터뷰를 하려 했으나 오히려 거꾸로 내가 인터뷰를 당해 당황스럽다.
이런 미친 것들하고 내가 살고 있어요, 나 정도나 되니까 너희들을 거두고 사는 거야라며 위안받고 싶은 마음 반, 자랑하고 싶은 맘 반이다.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녀석들이 들으면 쯔쯔쯧 하며 혀를 차며 기가막혀 할 것 같다.

- 내가 너 같은 집사를 길들이며 살아주는 걸 고맙게 여겨라.
- 독거중년 여성을 누가 거들떠나 보는 줄 아느냐.
- 우아하고 평화롭게 하루 종일 자는데 집사의 집적거림을 용인해주는 게 얼마나 피곤한 줄 아느냐, 하는 투정이 귀가를 스쳐간다.

 

방울이

♀ 넷째 
10살의 노란 치즈태비.

 

수줍은 성격이며, 구석이지만 최고의 명당에서 조용히 잠자는 걸 좋아한다.
또한 투명고양이 놀이의 대가다.
내 이름이 왜 방울이야? ‘모’자 돌림이 아니잖아.
미안. 맞아 ‘모’자 넣어서 처음엔 ‘모야’라고 불렀지. ‘무엇이지? 뭐야?’의 뉘앙스에다 tv에서 나온 옛날 유행한 대사를 패러디해서 ‘아니 뭐야?’를 재미있게 부르려고 했는데, 아는 편집자 이름이랑 비슷하기도 하고 네가 구석에만 하루종일 숨어있어서 그런 발랄한 캐릭터랑은 맞지 않아서 ‘모야’라는 이름은 포기했어.
세모 다음이니까 네모라고 할려고도 했는데 여자아이를 네모라고 부르는 왠지 미안해서 또 세모를 세모라고 부를 때 다음은 그럼 네모, 네모다음은 동그라미인가~ 꺄르륵 웃었던 기억이 있어서……. 네모를 건너뛰고 동그라미랑 비슷한 처음 이름대로 방울이로 한거야.
방울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안들어?

난 엄마랑 있을 때부터 방울이라고 불렸으니까. 그 이름이 나쁘지는 않아.
다행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 지 알아?
응. 혼자 조용히 자는 거. 투명고양이 놀이……. 아 맞다. 투명고양이 놀이. 사실 내가 더 놀랐어. 그저 난 눈을 맞추쳤을 뿐인데 네가 너무 놀라 내빼기에 내가 마치 널 본 게 큰 잘못이라고 한 줄 알았어. 어이없었지. 그리고 미안했어. 그 후로는 일부러 눈 안맞추려고 노력 많이 했어. 알지?
맞아. 나 투명고양이 놀이 좋아해. 내가 거닐 때 모든 고양이나 사람들이 나를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우아하게 뽐내며 도도히 걸어가는 스릴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럴 때는 나를 봐도 못본척 해야 집사 매너야, 알았어!
넵~. 명심하겠습다(군기 바짝).

나랑 장난감으로 놀아줄때 자꾸 왜 웃으면서 놀려? 기분이 나뻐서 못 놀겠어.
그건 네가 다른 고양이랑 달리 눈을 감잖아. 보통 고양이들은 사냥감을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가까이 다가왔다고 질끈 눈을 감거나 하진 않잖아. 근데 너는 낚시대가 눈 앞에 오면 눈을 감더라. 한두번이 아니야. 매번 그래. 얼마나 웃겼는지. 고양이 아니야? 하하하. 아, 근데 화났어?

음……
마음 불편했다면 미안해. (다시 당황하며) 분위기를 바꿔서 집사인 나랑 지금까지 살면서나 다른 냥이들과 살면서 무엇인가 특별히 기억나거나 하고 싶은 말 없어?

지난 9년간은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웠는데 요즘은 너무 시끄럽고 힘들어. 누구 때문이라고 꼭 집어서 얘기하지 않아도 알겠지, 집사 언니?
나도 조용히 지내고 싶어. 미안해. 나도 상어 저 녀석이 저 정도일 줄은 몰랐어. 사실 나도 너무 힘들어. 봐봐 내 손과 팔뚝, 다리의 이 많은 상처. 다 상어 때문이잖아. 내가 제일 힘들어. 내가 제일 물어뜯기잖아? 아닌가? 모래가 제일 힘들겠지? 아~ 모르는 척 했어야 했는데 하고 하루에도 몇 번을 후회해. 근데 또 쟤가 여기서나 저러지 저런 성격을 알면 파양당해. 누가 쟤를 받아줘? 안그래? 불쌍하잖아. 너희가 조금만 양해해줘. 좀 크면 나아지겠지 안그래?

글쎄…… 
왠지 나만 계속 얘기하는 떠드는 느낌은 뭘까? 물론 내가 대답을 하는 입장이라 그렇겠지만 맞장구 정도는 쳐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꼭 안해줘도 괜찮지만…….

집사에게 부탁이 있는데 들어줬으면 해
그럼, 그럼. 방울이 부탁이면 뭐든지. 어서 말해 봐.

더 이상 고양이 가족을 늘리지 않았으면 해.
네~. 반성하겠습니다. 그런데 아픈 아이가 길바닥에 있으면 그냥 못지나치겠어. 밥이라도 주고 싶고, 아프면 병원이라도 데려가서 살려주고 싶고, 옆에 따뜻하게 안아주고도 싶어서 외면하는 게 어려워,  나한테는. 더 고민해보고, 현명한 방법을 찾아볼께. 너희가 행복해야 집사인 내가 행복하니까~.



모찌
♂ 첫째

14살의 우아한 샴.
원래는 수다스러우나 질투심이 심해
다른 냥이 있을 때는 말을 잘 안함.
소심하지만 호기심이 많고
의젓하다.

 

집사, 나랑 처음 만날 때 기억해?
그럼, 그럼, 그걸 어떻게 잊어. 사진으로 너의 사진과 입양보내는 이유를 볼 때는 얼마나 잘생겼는지 너의 모습에 침을 질질 흘렸어. 그런데 너의 전 집사가 너를 우리집에 데려다 놓는 순간 생각보다 너무 커서 당황스러웠지.
게다가 넌 낯선 곳이라 그런지 전 집사가 내려놓기 무섭게 낼름 싱크대 뒤로 숨어서 더 황당했지. 1달이 넘게 숨어서 나오지 않아서 내가 맘고생이 심했어. 구석에 숨은 너를 꺼낼려고 하고, 널 유혹하려고 장난감 흔들기도 하고…… 했지.

집사한테 나는 어떤 고양이야?
나한테는 첫 고양이지. 인생의 첫고양이는 아니고 독립하고 나서의 첫고양이.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맘먹고 다음카페에서 입양란을 열심히 보다가 너의 사진을 보고 반해서 널 입양해서 네가 나랑 살게 된거야.
수다쟁이던 네가 모모가 온 뒤로 말을 거의 안하더라. 나만 보면 무슨 얘기할 게 있는지 종일 옆에서 야옹야옹…… 했던 너였는데, 시끄럽지 않아서 좋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너의 행동이 모모를 들인게 너한테 스트레스임을 뒤늦게 알았어.
혼자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고, 무언가로 상처받고, 숨고. 아마 감정을 그때그때 잘 드러내던 어린 모모한테 치여서 더 그랬을 거야. 그런 너의 모습에서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어. 나의 못난 모습을 닮아 외면하고 싶었어. 널 많이 감싸주지 못했어. 미안해.

내이름에서 다른 아이들 이름이 탄생된 거잖아. 바꿀 생각은 안했어?
입양 후에 이름을 바꿀까도 했어. 모찌가 뭐야. 수려한 외모랑 너무 안어울려. 바꿀려다가 네가 바뀐 환경에 스트레스 받는 거 같아서 나중에 바꿀까 하다가 까먹었어. 모찌라는 이름 덕분에 동생들 이름도 모자를 넣어서 모모, 세모, 모래……. 이렇게 지었어.

내가 가출했을 때 왜 바로 안찾었어?
네가 가출했을 때는 모모의 잦은  가출 덕분에 조금은 초월해진 때이기도 했고, 정동에서 성남까지 바로 갈 수가 없었어. 여러 차례의 경험과 공부로 인해 고양이는 멀리 않가고 근처에 있다는 걸 알고 있기도 하고 저녁에 가도 컴컴해서 찾을 수 있는 보장이 없어서 주말에 간거지, 안찾을려고 한 거 아니야. 오해하지 마.
마치 영화의 슬로우모션처럼 성남 부모님 집 앞에서 꾀죄 한 너와  마주쳤지. 유유자적 어슬렁거리는 너랑 눈이 마주쳤던 그 순간, 시간이 정지된 느낌에 너무 반가워서 네 이름을 불렀지만 넵다 도망가더라. 어이가 없어서. 너무 여유로워 보인 것도 화가 나고 나를 보고 도망간 것도 화가 나고, 배신감이 느껴졌어. 그러나 며칠 새 마른 걸 보고는 다시 반성했지. 널 부모님에 맡긴 나를 자책했지.

지금 여기서 너무 오래 사는데, 이사는 안가? 이사 가고 싶어
나도, 나도. 더 넓고 깨끗한 곳. 내가 너희들에게 캣 폴 등 다 해주고 싶은 곳으로 이사가고 싶어.
그런데 너희들을 데리고 이사가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 너는 다행히 어려 군데를 돌아다녀서 그런지 낯선 곳에 대해 크게 무서움이 없지만 너의 동생들은 많이 무서워 해. 나도 그렇고.
물론 더 좋은 환경을 너희에게 제공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근교의 마당이 있거나 적어도 건너편에 나무가 있어서 새라도 놀러 많이 오는 곳으로 가고는 싶지.
로망이지만 언젠가 너희들에게 초록초록한 환경, 다른 생명들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선물해주고 싶어. 그때까지 지금처럼 건강해야 해.

 

세모
♂ 셋째

우수한 외모, 쿨한 성격의 11살 코숏.
스트레스를 받거나 집사가 늦게 들어오는 등의
물만을 이불 오줌테러로 화답함

 

내가 벌써 11살이라니, 믿기지가 않아. 우리가 이렇게 오래 같이 살았어?
응. 널 데리고 올 때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지. 권투를 잘한다고 엄마가 널 내게 남겨줬어. 다른 네 형제들은 지인들에게 분양하고. 사실 난 고등어태비를 찜했놨었는데 오로지 제일 활발하다는 이유와 그래서 이쁘다는 이유로 내게 맡겨진 널 성남에서 정동까지 버스를 갈아타며 데리고 왔어.
넌 날 몇번 안봐서 잘 몰랐을텐데 양순이(엄마냥)랑 떨어져 낯선 버스에 오돌오돌 떨며 내 가슴에 푹매달려 있었어. 기특하기고 하고, 안쓰럽기도 했지.
넌 모찌랑 모모의 경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혀 신경쓰지 않고 내 옆에서 태연하게 잘 자고 잘 먹고 잘 돌아다녔어. 그렇게 시작된 너와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후루룩 지나갔네.

맞아. 엄마보다 더 큰 고양이가 둘이나 있어서 사실 무서웠지만 난 집사가 있어서 무시하면서 내 생활을 할 수 있었어
그래도 형아, 누나랑 잘 지냈으면 좋았을텐데 모찌랑 모모가 너무 붙어다녀서 네가 그 둘 사이에서 외로워하지 않아 다행이었어. 그렇지만 방울이는 네 동생인데 네가 잘 보살펴주지 그랬니.

방울이가 뭔저 와서 살갑게 굴었어야지, 엄마가 옆에 없으니 내가 알 수가 없잖아. 우리 엄마는 아직도 성남 집사 부모님집에 잘 있어?
어떻하지, 얘기를 해줘야 하나, 고민스럽네. 음, 아주 오래 전에 사고로 죽었어. 집 앞에 차가 많이 다녀서 안그래도 방울이 좀 더 크면 너희 엄마, 양순이를 중성화수술 해서 데리고 와야겠다 싶었는데. 더 빨리 못한 걸 미안하게 생각해. 아직도 가끔 양순이가 보고 싶어. 똑똑하고 현명한 고양이였어, 너희 엄마는.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슬프네. 엄마가 생각이 잘 안나서 더 슬프고……
나도. 많이 슬퍼해. 슬픔을 쌓아두지 마.

그건 그렇고, 내가 자꾸 이불에다 오줌싸는 이유를 알면서 왜 개선을 안하는 거야?
허걱. 너무 당당하게 말하네. 아니 스트레스 받는다고 이불에 오줌테러를 하면 안된다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왜 더 하는 거야?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해, 말로. 스트레스 받는다 이불에 오줌싸면 나는 오줌물침대를 만들 수도 있었을 걸.

오줌싸도 좋으니까 건강하게만 있어달라던 그 말은 거짓말이었어?
아니, 본심이긴 한데. 그래도 툭하면 오줌을 선사하니까. 이불 빨기가 너무 힘들어서……. 이불 옥상에 널면 또 그렇게 비가 오더라. 이번 여름은 정말 최악이었어.
물론 게을러서 화장실을 좀 청소 못해준거 미안해. 그리고 상어를 들여서 평화가 깨진 것도 미안하고, 어쩌다 늦게 들어오는 것도 미안해.

내가 가출했을 때 왜 그렇게 힘들게 찾았어? 오줌싸개 고양이는 안찾았으면 좋았을텐데?
 그런 말이 어디있어. 당연히 찾아야지, 오줌쟁이 세모님. 모모 따라 나간거 다 알어. 그래서 모모를 엄청 혼냈지. 나쁜 년. 자기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들어와 있고.
수위 아저씨께 물어보니 밖으로 내쫓았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다고. 여기저기 전단지 붙이고 밤낮으로 집 근처 배회하고, 정 안되겠다 싶어서 네가 좋아하던 장남간 들고 흔들며 밤새 밖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미친년 취급받았어. 그래도 그 덕에 네 울음소리가 옆집에서 들렸고, 그곳에 있는 걸 알게 되어서 찾았잖아. 날 보고 도망만 안갔어도 석유를 몸에 뒤집어 쓰는 일은 없었을텐데.
석유가 닿은 곳의 털이 막 빠지는 데 가슴이 무너지더라. 그래도 치료도 잘 받고, 이렇게 건강하니 다행이야.

마지막으로 자꾸 배를 만지는 데 좋아서 가만히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만지는 거 너무 좋은데. 부드러운 털, 귀여운 머리를 쓰담쓰담하면 마음이 안정되잖아. 특별히 배를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네가 누워있는 상태에 따라 만지는 거였는데 불편하면 배를 빼고 만질게. 오케이?

다음에 계속............

<언니네 글밭>은 2017년 여러가지연구소에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글로 정리하고 소통하고자 글 씨앗을 뿌린 여성주의 글쓰기 모임입니다. 작은 책으로 출판한 언니네 글밭의 글을 콩나물신문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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