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형제 사진입니다. 왼쪽 끝이 조호진입니다.

저의 어릴 적 꿈은 목욕탕 때밀이였습니다. 판자촌 아이들과 난생처음 간 목욕탕에서 손발이 탱탱 불도록 목욕하며 물장난 하는데 때밀이 아저씨가 "야, 까마귀 ××들아 그만 안가!"라고 소리쳤습니다. 목욕탕에선 때밀이 아저씨가 대장이었습니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서 노점상 아버지와 사는 판자촌은 솜이불을 뒤집어써도 춥디추운데 목욕탕은 벌거벗고 있어도 더웠습니다. 4~5시간도 모자라서 더 있으려고 했는데 소란을 너무 피워서 퇴출당하고 말았습니다. 

까마귀에서 백로로 변신해 목욕탕을 나서는데 그 개운함이란… 낮에 들어갔다 밤에 나왔는데 여전히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몸을 웅크리지 않았던 건 목욕탕 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온기가 이내 사라지면서 다시 추위에 떨었습니다. 별들도 추위에 떠는 밤하늘을 보면서 '어른이 되면 때밀이가 돼야지!'라고 다짐했습니다. 목욕탕 대장이 되고 싶은 것보다 급한 것은 추위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검은 지붕 루핑을 뒤흔들다가 흙벽 틈새로 들어와서 괴롭히는 바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두 번째 꿈은 버스운전사였습니다. 노점상 아바이는 단속반 아저씨들에게 사정하느라 허리가 구부정했지만 버스운전사 아저씨는 기세등등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야, 안으로 들어가란 말이야!"라고 큰소리치는 버스운전사 아저씨는 뜨뜻한 버스 안의 제왕이었습니다. 차비가 없는 날에는 오목교에서 영등포에 있는 영남초등학교까지 20여리의 길을 걸었습니다. 트고 갈라진 손등이 아프고 시려워서 호호 불며 걸어가면서 '어른이 되면 버스운전사가 될 거야'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걸어서 학교에 가는 날이면 잰걸음으로 아바이를 뒤따라갔습니다. 앞창은 벌어지고 뒷굽은 다 닿은 낡은 구두를 신은 아바이는 고달픈 피난 인생길을 헐떡거리며 걸었습니다. 술 취한 날이면 북녘 고향을 그리며 오마니를 목메어 불렀습니다. 38선이 가로막아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 꿈에 보셨다는 고향 '평안남도 대동군 용연면 천리'를 영혼으로라도 찾아가셨을까. 아바이의 간절한 꿈은 오매불망 오마니 만나는 것이었는데 신발이 다 떨어져서 고향에  못 가셨을까, 이제라도 아바이를 만나면 앞창도 뒷굽도 튼튼한 구두 열 켤레라도 사드릴 텐데….

"청소년 친구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습니다"
 

 

지난 3월 28일 '소년 희망, 봄 파티'를 잘 마쳤습니다. 파티에 참석한 아이들은 입을 모아 "재밌었어요!", "행복했어요!", "파티 또 해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래, 파티를 또 열어줄게!"라고 대답했지만 비용 등의 부담 때문에 다음 파티는 여름에 열 계획이었습니다. 차례로 봐도 봄 파티 다음엔 여름 파티, 그 다음엔 가을 파티, 그 다음 다음엔 겨울 파티를 여는 게 순서니까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이들의 바람을 엿들으신 걸까요? 

<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를 통해 '소년 희망, 봄 파티'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가슴 아픈 아이들이 행복했다는 이야기에 마음 따뜻해진 한 후원자님이 "청소년 친구들에게 밥 한 끼니 대접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습니다. 아이들의 외침이 후원자님께 닿은 것입니다. 그래서 5월 파티를 준비 중입니다. 마침 5월은 청소년의 달이니까요. 그냥 파티를 여는 것도 좋긴 하지만 뭔가 의미를 부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꿈 파티'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5월 청소년의 달, 부천역 청소년 꿈 파티'라는 제목으로 꿈 파티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상금도 걸었습니다~^^

부천역을 떠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위기청소년들에게 
과연 꿈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아직은 꿈이 없다는 아이들과
꿈이 있으면 뭐하냐는 아이들의
꿈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요?

이야기든 고함이든 노래든 춤이든 뭐든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하면 어떨까요?
청소년의 달인 5월에 꿈 파티를 열면 어떨까요?

<꿈 파티 안내>

▶일시 : 2019년 5월 2일(목) 오후 7시
▶장소 : 부천역 청개구리식당
▶부문 : 단체 꿈 자랑/ 개인 꿈 자랑
▶방식 : 춤, 노래, 연극, 악기연주, 이야기 등
※단체 최우수상(20만원 상당의 상품), 우수상(10만원 상당의 상품), 참가상 1만원 문화상품권 증정

부천역 아이들의 꿈은?
 
'때밀이'와 '버스운전사'를 꿈꾸었던 건 추위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습니다. 배고픔 다음으로 고통스러웠던 것은 추위였으니까요. 제가 겪은 아픔을 아는 분이라면 나이 좀 드신 분일 겁니다. 지금은 배고픔과 추위가 거의 사라져서 그 아픔을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모르는 게 낫지요. 우리 세대가 겪은 고통을 후세에게 물려주는 것은 끔찍한 일이니까요. 이 고통을 끊으려고 열심히들 일했습니다. 풍요의 시대는 그냥 오지 않고 눈물 고개를 넘어 왔지요.
 
차고 넘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아이들은 꿈이 없다고 말합니다. 넉넉한 가정에서 부모 사랑을 맘껏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 중에는 꿈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꿈을 개간할 땅조차 남겨두지 않은 채 땅을 마구 파헤친 어른들의 잘못이란 소리도 들립니다. 꿈을 개척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세상, 나만 잘사는 게 꿈인 세상, 가난한 아이들의 꿈을 빼앗는 세상이 과연 잘사는 세상인지 저는 의문입니다. 이 땅이 자꾸만 황무지가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서울소년원 출신인 봉수는 액션 배우가 꿈이고
김천소년교도소 출신 영진이는 헤어디자이너가 꿈
술주정뱅이 아빠에게 맞으면서 자란 철민이는 가수가 꿈
계모 학대에 시달리다 자살을 시도했던 지혜는 작가가 꿈
 
부천역에서 만난 거리 아이들의 꿈입니다. 엄마 없이 자란 봉수는 소년원을 세 번 갔다 왔고, 김천소년교도소 출신인 영진이는 엄마와의 불화 때문에 거리를 떠돌고, 가수가 꿈인 철민이는 술에 취하면 소주병을 던지는 아빠가 무서워 거리를 떠돌고, 가출팸 생활을 하는 지혜는 자신처럼 학대받는 아이들, 거리를 뒹구는 아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서 소주를 마셨습니다.
 
배우, 헤어디자이너, 가수, 작가… 아이들의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태어난 곳에서 알을 낳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꿈을 이룬 아이들이 부천역으로 돌아와 희망을 부화시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따뜻한 밥을 먹는 꿈을 꾸다 깨어난 후에 엄습하는 추위와 배고픔이 더 힘들었습니다. 꿈은 꿈을 꾸는 게 목적이 아니라 짓는 게 목적이니까요. 반석 위에 꿈을 지어야 비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데 거리 아이들의 꿈은 모래성 같아서 비바람은커녕 파도가 슬그머니 적시기만 해도 허물어지고 맙니다.

 

사랑의 밥을 주신 그대여, 고맙습니다!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내몸은
그 무엇 찾으려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
 
(노래 '황성옛터' 가사 일부)
 
꿈꾸어봐야 소용없다! 면서 들려주는 절망의 노래를 중단해야 합니다. 허물어진 빈터처럼 엄마가 떠난 빈집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절망의 잔을 그만 건네야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학과 자해와 자살하는 아이들입니다. 돌을 그만 던지셔야 합니다. 이 아이들을 나쁜 아이들이 아니라 아픈 아이들입니다.
 
정글 같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양육강식입니다. 각자도생입니다. 그럼에도 살만한 것은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해 불러주는 그대의 따뜻한 노래 때문입니다. 배고픔과 외로움으로 헤매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사랑의 밥을 주시는 그대 때문입니다. 생명이 자라지 않는 아스팔트 틈새에서도 푸른 생명이 자라는데 하물며 꿈의 씨앗을 나눠주시는 그대가 곁에 있는데 부천역 아이들이 왜 꿈꾸지 아니할까요.
 
밥 귀한 줄 모르는 세상이라고, 한 끼니의 밥이 무슨 소용 있냐고들 말합니다. 배부르고 등 따신 분들에겐 그럴 수 있습니다. 사는 게 바빠서 힘겨운 이웃들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사는 분들에겐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해둘 게 있습니다. 가난하고 외로운 아이들에게 주신 한 끼니 밥은 아이도 살리고 세상도 살리는 생명의 밥입니다. 추위에 떠는 아이들에게 봄볕으로 다가가셔서 따뜻하게 안아주신 것은 결코 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이들도 따뜻해지고 그대도 따뜻해지면서 우리들의 세상을 훈훈하게 만드는 사랑의 불씨를 폄훼해선 안 됩니다. 그대의 밥과 사랑이 이 아이들을 꿈꾸게 합니다. 아이들을 살리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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