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사람은 노동자 박종현이다. 그는 현재 한국노총 부천김포지역지부(이하 지역지부) 의장과 부천근로자종합복지관 관장을 맡고 있다.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해달라는 말에 그럴듯한 직함 대신 “깜상”과 “여수 촌놈”이라고 답한다. 깜상이란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그의 얼굴을 표현하는 말인 듯하다. 그의 고향은 전라도 여수다. 학교에 있는 시간을 빼고 대부분의 시간에 농사를 짓고 땔감을 하러 다녔다고 하니 여수 촌놈이란 별칭도 붙었나보다.

남쪽 끄트머리 여수에서 공고 3학년 현장실습생으로 먼 길을 떠나던 날, 어머니가 쥐어주시던 만원짜리 두 장을 박종현 의장은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런 그가 노동현장에 들어서면서 깜짝 놀란 것이 있다. “관리직 직원이 이모나 고모뻘 되는 현장노동자들에게 반말과 막말로 일을 시키는 거예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입장에서 처음보는 일이라 많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86년 9월 현장실습생으로 신한일전기에 입사하며 노동현장에 입문한 노동자 박종현은 이후 격동의 8~90년대 한국사회, 특히 어느 지역보다 치열했던 부천에서 현장노동과 노동조합 할동을 전개하며 자신을 노동자라고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인터뷰란 이름으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어설픈 인터뷰 보다는 그냥 소주나 한 잔 마시며 이야기 학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순 없었으나 노동자 박종현이라는 사람의 향기를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혹시 글을 일고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 그건 순전히 내가 글을 못쓴 까닭이다. 아래 내용은 노동자 박종현이 들려 준 이야기다.

 

   
 
한국노총 부천김포지역지부는 지역사회의 책임있는 주체입니다.

1980년 5월 1일 출범한 한국노총 부천김포지역지부는 노동계의 현안사항이 발생할 때마다 모범적인 투쟁으로 개척한 한국 노동운동의 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방선거, 총선 등에서 노동계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정책연합을 통해 노동자정치의 전형을 창출하여 노동운동의 전도를 개척해온 지역노동운동의 모범조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1998년에는 사회적 합의기구의 모태인 ‘부천지역 노사정협의회’의 발족과 운영에 결합하여 지역사회의 이슈와 의사결정에 책임 있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주민의 든든한 벗인 근로자종합복지관 등의 운영을 통하여 지역주민의 미흡한 사회안전망을 보완할 수 있는 노동복지 제공 및 평생교육, 평생고용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천과 인연을 맺고 정착하기까지

1986년도 9월 3일에 공고 3학년 현장실습생으로 신한일전기에 입사하면서 부천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당시는 전라도쪽에 산업단지가 별로 없어서 현장실습을 하기 위해 인근 대도시로 나가거나 수도권으로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신한일전기에도 나주공고, 전북기계공고, 이리공고, 군산공고 출신 실습생들이 많았는데, 여수출신으로는 제가 처음이었어요.

일단 군대 갈 때 까지만 다니자 했습니다. 그런데 87년 노동자대투쟁 때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형님들을 따라 다녔죠. 그리고 신한일전기도 어용노조를 바꾸기 위하여 9일간 파업투쟁을 했어요. 함께 모여 노동가를 부르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결의를 다졌죠. 어린 마음에도 그런 모습이 좋았어요. 투쟁이 끝나고 형님들의 권유로 88년 봄에 노동조합 총무차장으로 노조 일을 시작했습니다. 형님들이나 사람들과 많이 친해지다 보니 군대 다녀와서도 그냥 눌러앉았죠. 아무래도 노조활동을 시작했던 게 부천에 정착을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봐야죠.

92년에 제가 노조 문화부장을 했을 때, 위원장이셨던 유병유 형님이 저를 많이 데리고 다니셨어요.  그렇게 문화부장 6년을 하다가 다시 현장에서 프레스를 밟았죠. 그러다 97년부터 노조 사무장으로 9년간 활동을 하다 선거에 져서 다시 현장에서 열심히 프레스를 밟았죠. 2008년에 위원장에 당선되면서 9년간 연임을 하다 2017년부터 지역지부 의장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더디 가더라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살피며 가자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빛나던 비정규직노동자의 영원한 동지이자 특수고용노동자의 벗, 故 장진수 의장님의 말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저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의지를 지속시켜준 신념입니다.


저를 비롯한 지역지부가 해야할 우선적인 일은 지역 노동자의 조직화입니다.

부천지역에는 기본적으로 사회 문화 예술 등 각 분야마다 전문성 있는 사람과 단체들이 요소요소에 있습니다. 따라서 시민단체가 해야 할 영역이 있고 노동단체가 해야 할 영역이 있는데 노동단체가 모든 영역에서 활동하기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각자 해야 할 역할들을 하면서 필요에 따라 올바른 일에 연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개별 노동조합의 상급단체인 지역지부의 입장에서 봤을 때 부천의 노동활동 환경이 매우 좋지 않다고 봅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부천에 중견기업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98% 이상이 50인 이하 사업장이고 5인 이하 사업장도 많아요.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노동자를 조직화 하고 지원하는 게 저희 지역지부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국적으로 노동조합 조직율이 평균 9% 남짓인 반면 부천은 5% 남짓밖에 되지 못하고 있는 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넓게 생각해도 전국 평균보다 조직률이 낮다고 봐요. 큰 사업장이 떠나고 50인 미만 사업장만 남다보니 노조를 조직하는 일이 쉽지 않은 까닭이죠.


 지역지부 의장과 지역 복지관 관장을 겸임한다지만 저의 정체성은 노동자입니다.
 
지역지부 의장이 부천근로자종합복지관 관장을 겸임하도록 되어 있어요. 노동조합 활동은 오랫동안 해온 일인 반면 복지관 관장이란 역할이 또 다르더라고요.

지역지부에는 금속, 화학 등 제조업종과 문화재단, 환경기동반, 보건복지 등 공공부문업종 그리고 택시와 버스를 비롯한 운수업종 등 다양한 사업장이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관심 현안들이 다양합니다. 그런 다양함을 하나의 힘으로 단결하고 결집해 내는 것이 항상 고민입니다,
복지관 내에도 운영팀을 비롯한 어린이집, 도서관, 취업성공패키지, 취업센터, 문화센터, 이주민지원센터 등 여러 조직과 업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담당자와 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그들이 능력을 충분히 펼쳐낼 수 있도록 운영비를 현실화 하고 노후된 건물의 환경개선 등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관장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저희 복지관이 2018년 일자리창출 대통령상을 수상했습니다.

복지관은 1년 단위의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담당자 등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반면 노동조합 활동은 매일매일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거든요. 조직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조합 활동이 더 힘들어요. 그래도 만약에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노동조합 활동에 더 비중을 두고 싶어요.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이고 의장 선거를 통해 나를 지지해준 사람들에 대한 신뢰라고 생각해요.

노동이 존중 받는 사회의 기본은 불평등 해소입니다.

지금은 일자리가 복지인 시대입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 사회 양극화 해소,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노동의 미래,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의 보장, 저출산 등 우리사회는 심각하고 절박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노동존중사회의 기본은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라 봅니다. 불평등을 극복하고 균형 잡힌 사회로 가는 일은 쉽지 않은 숙제입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발상과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사회구성원들과 노사정 제주체들의 지혜와 합의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제가 발생하고 불이익이 생겨야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해요.

얼마 전에 00정밀이란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찾아왔어요. 그 회사는 80년대 나름대로 잘나가던 회사라 주문이나 생산이 많아서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을 만들 필요성을 못느꼈다고 해요. 그런데 아들이 경영권을 승계 받고 2세 경영체제로 바뀌면서 사업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사업자가 다른 일에 관심을 두다보니 주문이 떨어지고 회사가 어려워져서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어요. 그때서야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낀 한 두명이 상담을 받으러 찾아왔어요.
대다수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비슷해요. 뭔가 나에게 충격적인 문제가 생겨야 비로서  노동조합을 만들지 잘나갈 때는 만들려고 하지 않아요. 삼성에 노조가 잘 생기지 않는 이유가 사측의 방해도 있지만 비슷한 이유도 있을거라고 봐요.
노동조합을 통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높이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가 된 듯해서 안타까워요.

노동에 대한 교육이 정규 수업에 들어가야 해요.

 저는 그 이유가 교육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영어 수학 역사 미술 등을 교육하고 공부하는데, 가장 중요한 노동에 대한 교육이 없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데 거기에 필요한 교육이 빠져있다는 것이죠. 고작해야 수능이 끝나고 한 두 시간 특강으로 들어가 있어요. 사회에 나가 노동자가 되면  최저임금이나 근로조건, 부당노동행위, 노동3권 등을 알아야 하는데 배운 적이 없어요. 그러다보니 내가 노동자인지를 모르거나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관심도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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