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에서 아산까지, 산학교 “도보” 들살이

바람이 차가웠다. 다리는 앞으로 가고 있지만, 깃발과 모자는 자꾸만 뒤쪽으로 날아가려 했다. 2019년 봄 들살이는 작년보다 한 달 앞당겨져서인지, 바다 옆을 걸어서 인지 유독 바람이 많이 불었다. 때문에 아픈 어깨, 발, 다리와의 사투와 함께 불어오는 찬바람도 이겨내야 했다. 정해진 숙소까지 도달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바람은 시간의 편이 되어 다리를 붙드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바람만 불지 않으면 훨훨 날아갈 수 있을 텐데’라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는 마음에 부채질을 더하고 있었다.

 

가끔 무언가를 하고 아쉬움이 남거나 후회가 될 때, 나를 지킬 변명거리를 찾곤 했다. 그러면 왠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이 덜 흔들리고 안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자기 위안의 유통기한은 그리 길지 않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은근 슬쩍 넘어갔던 일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를 찾아오곤 했다. 반면에 늘 최선을 다할 수 없지만, 매 순간마다 스스로와 했던 약속을 지켰을 땐 그 뒤에 표현할 수 없는 자기만의 성취와 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엇갈린 표정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결정된다.

“힘들지만 눈 딱 감고 한 번만 참아보자. 지금 너무 하고 싶지만 나중에 하면 되지.”라는 말들과 “이번 한 번인데 어때. 다음에 잘 하면 되지. 너만 이러는 게 아냐.”라는 생각들은 언제나 함께 귓가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이 둘 가운데 한 쪽으로 어느새 몸을 돌려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런데 신기한 건 몇 발짝 내딛지 않아도 이 선택의 결과를 명확히 알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면 한쪽은 걸은 만큼 앞으로 나가 있지만, 반대편은 전진했다고 생각했지만 제자리에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오늘까지 8박9일간 우리는 같은 거리를 함께 걸었다. 하지만 이 시간 동안 우리가 걸은 마음의 거리는 서로 다를 것이다. 함께 정한 약속을 지키고, 스스로 택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다양한 표정을 짓고 변명거리를 찾기도, 만족을 얻기도 했을 것이다. 차가운 바람과 따스한 햇살보다 더한 추위와 온기를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길지 않은 시간이 특별한 건, 이 시간을 통해 낯설었던 ‘너’를 알 수도 있지만, 새로운 ‘나’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은 붙들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기에, 함께 했던 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많이 남는다. 길을 걸으며 만났던 수많은 동물들과 식물들, 우리를 응원해주며 손을 흔들어 주셨던 분들, 숙소에서 우리를 정겹게 맞이해주고 신경 써 주셨던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 긴 거리를 함께 걸으며 내 발자국 위에 발자국을 더하며 동무가 되었던 중등의 친구들과 교사들. 2019년 3월29일부터 4월4일까지 내 인생의 시간은 이들과 더불어 있었기 때문에,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지난 9일간 차가운 바람 앞에서 몸과 마음의 숨통이 되어 주었던 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잊지 않을게!

 

도보 들살이를 마치고....

도보들살이에서는 매일 일찍 일어나서 아침 먹고 짐정리하고 도보를 하고 숙소에 도착하면 식사당번은 밥 준비를 하고 씻고 밥 먹고 일지 쓰고 하루 나눔하고 정해진 취침시간에 자고 평소 집에서의 생활보다 내 몸이 부지런해지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도보들살이는 걸으면서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조금 더 가까워지고 원래 친했던 사람과는 그 사람을 더 알게 되고 더 편해지는 그런 들살이라고 생각한다.(한결)

나의 목표, ‘인간관계에 익숙해지기.’ 목표실천 결과는 성공이었다. 아직 힘든 부분과, 맞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단체생활을 점점 두려워하지 않음과 동시에 남들에게도 맞춰 다가가다 보니 어느 새 같이 생활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도언)
뭐든 함께해야 더 행복하고, 더 재미있다. 난 뭐든 함께하는 걸 좋아한다. 힘든 것도 함께 해야 재미있는 것 같다.(상민)
들살이에 와서 서로에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고 친해지는 게 들살이에 장점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도보 들살이도 함께는 갈 수 있지만 혼자서는 못 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역시 들살이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 밀린 것들 해야 하는 것들이 들살이 오면 없으니깐 너무 좋다. 이것 또한 들살이에 장점인 것 같다.(성민)

이제 더 이상 걷지 않는 다는 것이, 매일 잠자리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더 이상 함께한다는 즐거운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 실감 났다. 7일 동안 같이 걸으면서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 못 봤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산중등 사람들이 있어 나를 다시 돌아 볼 수 있었다.(새나)
도보 할 때는 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는데 마지막 날에 다음날 집에 간다니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현우)
내가 매년 도보들살이 때마다 공통되게 느꼈던 것이 하나 있는데 들살이는 나에게 당연했던 것들이 감사해지는 순간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그게 이 마지막 도보가 끝난 이후에도 이 들살이를 잊지 말아야 할 가장 큰 이유이다.(아영)
거센 바람, 소나기, 맑은 하늘, 넓은 갯벌, 긴 방조제, 알록달록 우비, 노랫소리, 끝말잇기, 수다, 보드게임, 간식, 물집, 파스, 뚜비뚜벅 도보 깃발, 쉬는 시간, 화장실, 고마운 햇살, 귀여운 강아지, 까망 돼지 가족, 시끄러운 당나귀, 갈매기들, 연못, 삽, 곡괭이, 돼지감자, 피자, 장날, 딸기...... (봄 들살이 중에 만났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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