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난꽃이 피었다고 어떤 분이 sns에 사진을 올렸다. 10년 동안 지극 정성으로 난을 키웠으리라 본다.

오래전 어느 고수가 난을 괴롭히면 꽃이 핀다고 내게 말했다. 물을 듬뿍 주었다가 바짝 말리는 것을 몇번 반복한단다.
"아~ 힘들어 죽겠네. 이 인간이 나에게 제때 물 줄 생각을 안 하네. 이러다 내가 죽는게 아닐까?"
그래서 난이 꽃을 피워 씨앗을 만들고 죽음 이후를 대비한다는 것이다.

최근 버섯전문학교에 다니고 있다.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서,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만난 일이다.

버섯은 동물도 아니고 식물도 아닌 미생물이다. 농수산부 소관이고, 식품 코너에서 채소와 함께 놓이는데다가, 물을 주면 자라는 모습이 식물과 비슷해서 식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공부하는 과정에서 버섯이 고통으로 생긴 결실이라는 대목에서 깜짝 놀랐다. 따뜻한 봄날 적당한 온도와 수분을 이불삼아 포자에서 눈을 뜬 미생물이 썩은 나무에서 양분을 빨아먹으며 하얀 균사체로 세력을 넓힌다.
그러다 문득 찬바람이 불며 가을 빗방울에서 한기를 느끼는 순간, 죽음을 깨닫고 버섯을 만들고 키를 미친듯이 쑥 키운다. 죽기 전에 포자를 퍼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버섯을 재배한다는 것은 미생물에게 온도와 수분을 조절하여 삶의 동기를 부여했다가, 죽음을 느끼게 하는 과정이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구나. 
나무와 풀이 싹이 트고 무성하였다가 가을에 열매를 맺는 것은 사는 것이자 죽음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었구나. 전쟁 이후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느는 것으로 치면 동물도 죽음같은 상황에서 생명을 더 많이 잉태하려고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온도를 쾌적하게 맞추고 충분히 물을 주면 10년동안 난은 꽃을 피우지 않는다. 난이 꽃을 피운 것은 은혜를 갚은 것이 아니다. 주인이 최근에 해이해진 탓에 환경이 예사롭지 않으니까 난이 위기를 느낀 것뿐이다.
사람 사이, 인생살이도 그저 무탈하게 지내는 것보다 고통을 겪어야 제대로 열매를 맺지 않을까? 
삶이 힘든 분들께 이렇게 위로해봅니다. 고통스런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겁니다. 힘내세요.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