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동 골목 안에 자리 잡고 있는 1976년생인 단독주택은 곧 빌라 건축을 위해 무너질 예정이다. 지난 12월부터 3월 초까지 다섯 번에 걸친 이사를 마친 이후에 점거를 하여 예술가들과 전시를 하던 4월 초였다.
여러가지연구소의 공유텃밭이었던  ‘참견텃밭’에는 연둣빛 싹들이 싱그러움을 머금고 자라고 있었다. 제비꽃과 민들레, 질경이가 나지막한 자리의 봄을 담당하고 있었고, 벽에는 담쟁이가 자라나고, 초봄까지 마른 열매를 떨어트리던 고염나무는 어느새 윤기나는 잎을 뽐내고 있었다.
 
   여러가지연구소의 마당을 스스럼없이 드나들던 동네 이웃들은 정원이 ‘참견텃밭’이 되도록 한 주인공들이다. 참견장이들은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의 거처를 걱정했다. 우리는 힘을 모아 풀과 나무를 최대한 파내어 옮겨심기로 했다. 건물이 무너져 식물들이 묻히기 전에 우리는 힘을 내어 살리기로 했다.

 

 

여러가지연구소의 장독대에 장가르기 날을 가늠케 해주던 모란부터 식물 이주하기는 시작되었다. 모란이 생긴 그대로 생을 이어가도록 벗들이 한 삽, 두 삽 떠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어느 봄보다 화려하게 꽃을 피워낸 황매화를 참견장이들과 파내었다. 이름 모르는 풀들 중에 마음에 들어오는 것들을 다 파내지 못해 아쉬운 우리들이 나눈 이야기. “이 풀들도 말을 한다면, 살 곳이 있어 다행이야 라고 말을 하겠지.”

   빌라 건축 계획으로 지난 시간 삶의 공간을 급하게 비워야 했지만, 식물들을 이사시키며 삶의 공간은 닫히지 않았음을 느낀다. 힘이 닿지 않아 이사시키지 못한 단풍나무는 올 가을 빨간 빛깔로 물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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