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올해의 미숙 글/그림: 정원 출판사: 창비

5월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붉은색이 어떨까 싶다. 게다가 반드시 붉은 장밋빛이어야 더 잘 어울린다. 그리고 ‘5월’ 하면 사랑하는 누군가가 우리 집 대문 앞에 붉은색 포장지로 정성스럽게 싼 상자를 안고 서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그 상자 안에는 가슴 설레는 선물이 가득 담겨 있을 것이 틀림없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선물들로 – 따뜻하고 온화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그 무엇, 상상만 해도 우리로 미소 짓게 하는 것들이 - 한가득 채워진 채 말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 날, 부처님 오신 날, 스승의 날, 가정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그리고 우리를 책임 있는 시민으로 불러 세우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의 날까지 5월은 온통 붉은색이다. 사랑, 정열, 자비, 은혜, 젊음, 감사 그리고 저항의 붉은색이다.

  정원 작가의 ‘올해의 미숙’이라는 책 표지에 왜 눈이 갔을까? 어쩌면 주인공 ‘장미숙’이 두른 붉은 목도리가 어색해 보여서는 아닐까? 그래, 이상하다. 저 붉은 목도리는 내가 좋아하고 기대하고 느끼는 5월의 붉음과 사뭇 다르다. 그런데 묘하게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냥 외면하기에는 그녀가 두른 붉은 목도리가 궁금하다. 혹시 우리가 미처 모르는, 애써 외면하고 묻어 버린 또 다른 5월의 붉음은 아닐까?

 

  ‘어? 이건 아닌데,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닌데..’라는 경험이 무수히 쌓인다. 그럴 때마다 바락바락 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네 실상은 그러지 못한다. 용기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싸울 때, 어린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살붙이가 아파 죽어갈 때, 친구들과 사귈 때, 실직했을 때, 헤어졌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무엇보다 내가 나를 모를 때 어떻게 해야 하지? 나도 내가 처음이니 나도 나를 모른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여기에 위로가 있다.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니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 그 사람도 모른다. 그래 우리 모두가 미숙이다. 어느 누구도 처음 아닌 인생은 없다. 그러니 미숙은 흠이 아니다. 인간 됨의 완벽한 증거이고 너와 나의 공통분모다. 그러니 부끄러워할 연유도 없고 주눅들 이유도 없다. 오히려 인정하고 사랑할 지점이다. 우리 기억하자. 이렇게 말하는 것은 미숙한 자들의 못난 자위가 아니다. 우리네 가능성이고 내 삶의 진실을 오롯이 반영하기 때문이다.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미숙이의 붉은 목도리. 가만히 보니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아니 잘 어울린다. 저 목도리는 미숙이의 목도리다. 다른 이가하면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 평가도 판단도 부질없다. 탐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다만 저마다의 목도리를 소중하게 여기면 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깊은 심호흡을 한다. 우리의 낯섦이 반복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낯섦에 익숙해지지 않는구나. 항상 새롭기 때문이겠다. 하여 우리 모두는 ‘올해도 미숙’이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영원히 미숙하게 살 가능성이 100%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미숙한 사람끼리 보듬으며 살을 맞대고 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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