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모저모 > 환경/복지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이 체제에 맞서다
콩나물신문편집위원회  |  kongpaper@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6.0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은 영국에 본부를 두고 기후변화 대응 시위를 이끌고 있는 단체의 이름이다. 지난해 8월에 만들어진 이 단체의 주장은 한마디로 지금은 “비상사태(It is an emergency)라는 말이다. 지금은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파괴에 이르고 있으며 차분히 대처할 수 없는 급박한 위험상황이라고 한다. 멸종저항의 비폭력 불복종 행동을 통한 시위는 영국 프랑스 등을 비롯한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15일 영국 의회광장, 워털루브릿지 등에서 벌인 시위로 1,000명이 체포되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환경의 불모지와 다름없는 우리나라에도 지난 4월부터 광화문에서 ‘멸종저항’을 알리며 1인 시위를 하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씨가 있다. 아래 글은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씨가 멸종저항 창립자 로저 할람과 나눈 영상 인터뷰 내용이다 - 편집자 주

창립자 로저 할람과의 인터뷰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2019.05.02 0 COMMENTS

재앙적 기후 변화에 맞서서, 크게는 사회를, 자세히는 정부로 하여금 혁명적인 대응을 하도록 압박하는 비폭력 불복종 운동이 지구 곳곳을 들불처럼 휩쓸고 있다.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은 몇 주 전 까지만 해도 생소한 이름이었으나, 기후 변화 토론의 양상을 바꿔놓고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취지로 시작된 이 운동은 엄청난 탄력을 받았다. 현재 런던에서 벌어지고 있는 총궐기 집회는 어쩌면 환경정책에 관한 정부측의 공식입장과 대중적 담론을 완전히 바꿔버릴지도 모른다.


로저 할람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의 창립에 있어 중심적 역할을 한 이는 로저 할람이었다. 물론 해당 캠페인에 참가해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보탠 많은 학자들이 있지만, 기후 변화 정책의 전문가가 아닌, 공공담론을 급진적이고 급격하게 바꾸는 방법을 잘 아는 이가 이런 운동의 일선에 서 있는 것은 드문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로저 할람은 긴 기간 동안 런던 킹스 칼리지의 연구자로서 작금의 상황에 가장 걸맞는 주제에 대해 연구해 왔다. 바로 효과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정치 캠페인을 설계하는 방법이다.

로저 할람은 시간을 내 아시아 연구소와의 인터뷰에 응했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총궐기 집회의 배경과 표면적, 그리고 암시적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 하기로 했다. 그의 말들은 인류가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가져다 주었으며, 교토 의정서와 파리 협약이 우리를 구해주지 못할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가늠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본 인터뷰는 인간 본성에 대한 씁쓸한 성찰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필자는 정부 고문이라는 일반적인 역할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던 예일대 교수인 거스 스페스의 전언을 떠올렸다.

 “전 가장 시급한 환경문제가 생물다양성의 손실, 생태계 붕괴 그리고 기후변화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저는 30년동안의 과학 발전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전 틀렸습니다. 가장 시급한 환경문제는 이기심, 욕심 그리고 무관심이었으며,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문화적 정신적 탈바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과학자들은 그 방법을 모릅니다.”

우리는 곧 할람과 그의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이 런던에서 벌이고 있는 집회가 얼마만큼의 성공을 거둘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기후 변화 정책에 대한 토론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우리는 앨 고어와 우스꽝스러운 탄소배출권 그 이상의 환경 운동을 목도하게 될 것이며, 인간의 무관심과 이기심에 대한 싸움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로저 할람과의 인터뷰

 

Emanuel Pastreich :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은 화석연료 사용 중단을 30년 뒤가 아닌 지금 당장 실시하라는 내용으로 런던에서의 총궐기 집회를 준비중이고, 그에 더해 전세계적인 운동도 준비중입니다.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요?

Roger Hallam : 일단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의 창립을 도와준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이야기부터 하고 싶습니다, 공식적인 발언으로 남기고 싶네요. 그렇긴 해도, “라이즈업 네트워크 (Rise Up Network)”에 지난 1월 기고한 “진짜 문제에 집중하라 (Pivoting to the Real Issue)” 라는 제목의 글을 쓴 건 제가 맞습니다. 라이즈업 네트워크는 익스팅션 네트워크 창립과 그 과정에 연관된 활동가, 학자, 연구자들의 모임이며, 이 다급한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깊게 생각해 보는 모임입니다.

그러니 아홉달, 열달쯤 걸린거죠. 2019년 4월에 이 자리에 서기까지요. 지금 우리는 서방 정부들에 대항한 사상 최초의 대규모이자, 유의미하며, 비폭력적인 봉기가 될지도 모를 운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달리 드릴 말씀이 있겠습니까? 얼마만큼의 흥분과 긴장감이 혼재되어 있죠.

다른 기후 변화 관련 활동과는 다르게, 이 운동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로터리 혹은 교

   
 

량 다섯 곳 정도를 수천명의 사람들과 함께 점거하는 것이죠. 제가 기대하는 점거농성의 결과는, 정부 인사들이 영국과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젊은 청년들과 만나 눈 앞에 닥친 생태계 붕괴 위기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가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정부측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확대하여 웨스트민스터로 통하는 도로들을 막기 시작할 겁니다. 이 지역은 런던의 정부기관들이 집약되어 있는 곳이죠. 이렇게 해도 정신을 못 차린다 싶으면, 기차역의 상하행 열차들을 막아설겁니다. 우리는 시민 불복종 운동의 확대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이번 주말쯤엔 체포당해서 감옥에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저항 할 것이고, 사회를 깨울겁니다.

Emanuel Pastreich : 이번 시위에서 화석연료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과 연대하실 건가요? 예를 들면, 생산과정에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은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플라스틱, 석유 혹은 석탄의 사용을 강요받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겠군요.

Roger Hallam : 이건 제 개인적 해석이긴 합니다만,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로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음번엔 다른 사람들을 취재해도 상관 없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의 우선 목표는 국적을 초월한 사람들이 뜻을 모아 다음 30년 내로 죽을지 살지를 결정하는 정치적인 장을 여는 것인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현재 시점에서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란, “지금처럼 하다가 죽을 것인가, 자세히 말 하자면, 우리 아이들에게 사지와 다름 없는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라고 봅니다. 바라건데 저는 그 답이 “살고싶다”였으면 하고 있습니다. 살고 싶다는 것이 대답이라는 것을 확실히 한 다음에야, 그렇다면 이 너무 뒤늦게 현실을 깨달은 지금, 이 거대한 사태를 헤쳐 나갈 확률을 최대한 높일 방안을 고민하는 차원에서 여러가지 기술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질문들에 답할 수 있겠죠.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은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자세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혼란과 희생을 통해, 또한 위법의 여지가 있는 대규모 정치적 행동을 통해 힘을 모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이 방향이 가장 효과적이며 – 또한, 객관적으로 보건데 – 지금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릴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저는 사회적인 위기가 없다면 해결되는 것 또한 없음을 모두가 알았으면 합니다. 차후 10년 동안 인류는 탄소 배출을 50% 줄여야 하는데, 점진적인 기존의 정치적 행위들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목표입니다.

전 킹스 칼리지의 정치 과학자이며, 저의 학자적 식견으로 보았을 때, 인류가 위기의식 없이 이 문제를 대한다면 결코 해결에 이르지 못 할 거라는 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도출되는 결론입니다. 이건 개개인의 정치적 의견이나 관점과는 상관 없는 문제입니다. 구조적 사회학 차원의 문제이죠. 불행하게도 사회는 혼란 없이 급변할 수 없습니다.

본 질문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우리의 이루고자 하는 건 연대의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탑다운 방식의 단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해결책에 관해선 우리를 따라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들이 아니예요. 우리는 민주적으로 한 데 뭉쳐, 어떤 정책과 변화가 필요한지를 결정할 의사결정의 장을 만들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Emanuel Pastreich : 기후 변화 토론의 장을 볼 때 마다, 고등교육을 받고 진보적인 학자들이 기후 재앙을 애써 무시하려 하거나 화석연료 이익집단에 연루된 단체를 통해 간접적 지원을 받는 모습이 어느 사회에든 존재한다는 점이 참 충격적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이 학자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Roger Hallam : 사실 심리학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개개인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믿으려고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를 우울하게 만드는 점이죠. 우리중 대부분, 특히 서구사회에서는, 우리가 이성과 개개인의 고차원적 사고를 통해 우리의 진로를 결정한다고 믿는, 그리고 우리는 우리 주변의 환경에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보는, 어찌 보면 조금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가 속한 사회가 객관적으로, 그리고 분명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우리 스스로를 사회에서 분리시키는 건 어렵습니다, 특히나 우리가 그 잘못된 방향에서 단기적으로는 이득을 얻는 특권계층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일수록 더 부유한 편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어찌 보면 약간의 역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부유한 사람일수록 이런 메시지를 듣고싶지 않아할테니까요. 그렇기에 영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수 많은 토론들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식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보다 현실을 더욱 더 빠르게 파악하고, 지식인들은 기득권 엘리트들이 만들어낸 죽음의 교단에 파묻힌 상태인 거죠.

Emanuel Pastreich : 정말로 심각한 문제죠. 예를 하나 들어 드리죠. 인터넷 상에 널려있는 진보 혹은 좌파 – 전 이런 단어 사용을 정말 싫어하지만 사용해야겠네요 – 웹사이트들은 제국주의와 침략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기후 변화에 대해선 슬쩍 비켜가거나 문제를 못 본 척 하곤 하죠. 제가 본 가장 흥미로운 경우는 미국이었는데요, 극좌파인 사회주의 평등당의 웹사이트에서 자본주의자들이 자동차 공장 노조들을 파괴하는 행위를 규탄하면서도, 자동차를 만드는 일 자체에 대한 비판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죠.

Roger Hallam : 제가 보기에 우리에겐 큰 문제가 있습니다. 지난 수백년간, 우리는 자연을 아

   
 

무렇게나 착취해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을 것이라 믿어왔습니다. 이 믿음이 큰 문제예요. 그런 믿음은 어느정도 선 까지는 맞았습니다, 자연은 스스로 착취 당한다는 생각을 하거나 의식적인 저항을 하지 않으니까요. 말하자면 노동계급처럼요. 자연은 우리와 같은 의식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각각 있어요. 긍정적인 면은 그 덕에 우리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자원을 착취해왔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면은, 자연이 우리를 파괴하러 나섰을 때 말로 설득할수도 없다는 겁니다. 자연 앞에 서서 “우리가 지난 200~300년동안 그쪽을 망쳐놨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미안한데 북극의 빙하를 다시 얼려주실 수 없을까요?” 하고 요청할 순 없어요. 얼음은 어쨌든 녹을겁니다. 우리가 후회하든 말든 상관 없이요. 지금 인류의 좌파와 우파는 인류 생존의 가장 기초적인 사항들에 대한 합의에조차 이르지 못한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수백년 동안 – 특히 최근 40년 동안 – 우리는 자연이 그대로 갚아줄 거란 의식도 없이 자연을 망쳐왔으니까요.

그런 버릇들이 문화에 녹아드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어떤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스스로 해 온 일들이 완전히 잘못된 일임을 인정하는 건 심리적으로 극히 불편한 일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 경험을 통해 그 점을 잘 알고 있죠. 저는 도덕적인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분석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에겐 버릇이라는 게 있어요.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고, 사람들을 함부로 하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깨달음이 도래하지만, 진정 깨닫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버릇”을 사회적 혹은 정치적인 차원으로 확대해 보세요. 우리는 세상이 A라고 생각해 왔지만 사실은 B였다고요. 이 점 만큼은 좌우와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커다란 혼란이 없이 이런 버릇은 고쳐지지 않아요. 지금 단계에선 그렇게 밖에 해결할 수 없습니다.

Emanuel Pastreich : 지금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화상 채팅처럼, 우리는 화려하고 흥미진진한 기술의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과학적인 사유와 분석은 소위 말해 “끈 떨어진” 상태에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인류는 어쩌다가 과학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Roger Hallam : 그 질문에 이미 답을 드린 것 같네요. 인간은 원하는만큼 지적인 존재가 될 수 있지만, 결국 우리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공간을 살아요. 기본적으로 우리의 심리가 이성을 이기는 것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나쁜 일을 한다면, 우리는 지적인 존재가 될 잠재성을 갖추고 있음에도 주변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교수님 같은 별종이 있기도 하고, 저같이 깨달음을 얻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모든것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이 때, 일정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을 인식하게 만들 수 있는 체제상의 임계점이 있습니다. 믿고 싶지 않다고 해서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도 깨닫는거죠. 우리는 지금 이 단계에 와 있고,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뭉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상황의 현실과 대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아졌어요.

Emanuel Pastreich : 최근 들어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하원의원과 그녀가 주창하는 그린 뉴딜에 대한 많은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좀 깊게 들어가 보면, 너무 허점이 많아 화물트럭도 드나들 수준이더군요. 하지만 이마저도 소위 말하는 진보 정치 그룹들 사이에선 신성시 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허점을 찔러보거나 진정한 의미를 알려고 하지 않아요. 그린 뉴딜이 정말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Roger Hallam : 우리가 자연과의 착취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환상은 그대로 둔 채 생태학적 위기에 대응해 보려는 시도는 있을법합니다. 이러한 일부 좌파들의 대응은 아직 상황이 좋은 편이라는 믿음의 발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좋은” 상황이 실제로도 좋은 건 지 질문해 볼 수 있겠죠. “지금 같은 소비자적 생활습관을 유지하면서도 위기에 대응이 가능 할까요?” 하고요. 현 상황의 심각성을 두고 보았을 때 이는 더 이상 불가능함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가 있습니다. 이미 전세계 온도 상승폭은 섭씨 2도를 넘어섰음을 분명히 해야할 것 같습니다.

과학 이야기도 잠시 해 보죠. 파리 협정은 탄소 지연, 대기로 유입중인 탄소, 대기를 벗어나는 오염물질로 인한 태양광량 감소등에서 오는 고정된 온도 상승을 고려하지 않은 근본적인 결함을 안고 있습니다. 결국 지구 온난화는 진행되고 있죠. 이건 북극 얼음이 녹으면서 가져올 기하급수적인 온도상승은 고려조차 안 한 수치입니다.

우리는 이미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지금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미래를 도모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그렇긴 해도 진짜 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긍정적인 신호라고 봅니다. 제가 지난 1월 “진짜 문제에 집중하라”라는 제목의 글에서 밝혔듯이, 진짜 문제는 지난 200년간 우리에게 있었던 모든 진보가 사회 붕괴로 인해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인류가 멸종할 가능성은 높습니다. 인류가 없다면 진보적인 문화도 없겠죠.

Emanuel Pastreich : 정치권에서의 논의 중에서도 보수주의에 대한 질문들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본 많은 언론에선 보통 “우리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보수주의자들은 우리의 기후변화 대책에 반대하니, 우리가 그들을 천천히 설득시켜 진실을 보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보고 들은 것으로 판단할 때, 적어도 1980년대부터 자연에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위험 물질 사용을 주창 -약 40년에서 50년 동안이죠 – 해온 작은 기업 집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저나 선생께서 그랬다면, 아주 적은 양이라도요, 내일쯤 감옥에 갇히고 모든 재산이 압류될텐데 말입니다. 그럼 왜 우리는 이런 범죄 모의를 “보수주의”라고 포장해주고 있는 걸까요?

Roger Hallam :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은 죄를 짓고도 무사하죠. 악인들이 얼마나 악한지 성토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쓸 수도 있습니다. 급진 혹은 진보 좌파들중에 이런 악인들이 얼마나 “나쁜놈인지” 분석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죠.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왜 나쁜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는지 아는 건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그건 지금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문제는, 우리의 생존을 보장해줄만큼의 경제적 혁명을 완수할 시간이 10년 정도 남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가 정치적 급변의 실용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악인들이 얼마나 “나쁜놈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정치적인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엉뚱한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지금의 상황에 적합하지 않아요. 제가 제안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필요한 변화를 이끌어 내느냐이고, 어쩌다보니 제가 전공하는 분야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의 제안사항들은, 넓게 말하자면, 사회를 바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파괴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가진 부와 권력에 어떤 조치를 취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 대중의 참여를 등에 업은 시민 불복종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이 주창하는 근본적인 요점입니다.

우리는 분석과 정보, 그리고 기존의 캠페인 방식을 지양하려고 합니다. 이메일을 보내고, 기부금을 보내고, 로비스트들을 이용하는 기존의 방식들 말이죠. 그게 완전히 틀렸다거나 효과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좋은 뜻을 가진 많은 이들이 이런 일들을 해 주고 있어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객관적으로, 경제 체제를 10년 안에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아마 실현되지 못할 겁니다. 안된다는 증거도 있어요, 지는 30년동안 전세계 탄소배출은 60% 정도 상승했습니다. 2017년의 상승률은 1.6%였고, 2018년엔 2.7%였습니다. 즉 우리가 과학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만큼이나 상황은 재앙적으로 다급하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메커니즘을 실행해야 합니다. 법을 어기고 사회와 정부, 정치적 계층에 정변을 일으켜, 우리 사회에겐 권리만큼의 책임도 뒤따른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정치계층도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권력을 유지할 정치적 정당성도 없는 거죠. 이것이 기초적인 골자입니다.

Emanuel Pastreich : 비준법 투쟁에 관한 토론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법 자체의 부도덕함을 짚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치 노예제 폐지 투쟁처럼요. 노예제는 합법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노예제를 경제의 긍정적인 단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화석연료처럼, 노예제로 인해 값싼 에너지가 생겨났죠. 하지만 노예제에 대항해 나가고 노예제를 불법화 하는 과정에서, 법 자체가 부도덕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주지시켜야 했습니다.

Roger Hallam : 맞습니다. 그리고 노예제 비유는 기후 재앙과 아주 밀접하게 연곤됩니다. 노예제의 경우, 권리를 가장 크게 침해당한 쪽은 흑인들이었습니다. 기후 변화에 있어서 가장 크게 권리를 침해당할 쪽은 젋은 사람들입니다. 결국 지금 시작되는 기후 변화가 파괴하게 될 것은 젊은 세대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니까요.

결국 우리는 모든 인간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도덕률이란 “남이 그대에게 해 줬으면 하는 일을 남에게 행하라”임을 이야기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 말 자체는 기독교에서 나온 것이지만, 어떤 문화권에서든 같은 의미를 지닌 도덕률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manuel Pastreich : 함무라비 법전에서도요.

Roger Hallam :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을만큼 분명한 이야기죠. 그리고 그 내용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범 문화적 도덕률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정도면 가당찮은 방법으로 우리의 근본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체제에 대한 봉기와 혁명을 정치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정당화 해 주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린 그 점 때문에 지금 이렇게 들고 일어 난 것이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Emanuel Pastreich : 그렇다면 제가 무엇을 해야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서, 저는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물건은 안 사기 시작 했습니다만, 서울의 수많은 사람들 중 이런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과연 플라스틱 포장 된 물건을 사느니 굶거나 목마른 채로 있으려고 할까요? 어떻게 해야 수백, 수천, 수만 혹은 수십만명이 “나는 화석연료를 사용해 운반한 것은 아무것도 사지 않고,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그 어떤 물건도 사지 않을 것이며, 석탄 석유와 모든 연을 끊겠다”고 선언할 수 있을까요?

Roger Hallam : 네. 방금 물어보신 것은 기본적으로 사회과학적인 질문입니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어떻게 정부의 행동양식을, 그리고 사회의 행동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까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서로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전 두 가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주장합니다. 사회를 먼저 바꾼 다음 정부를 바꾸거나, 혹은 그 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이런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상호 연결된 사회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정부와 사회에 동시에 맞서야 합니다. 또한 관련 연구에 의하면 이 일을 하는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엔 집단 행동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총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기 때문이죠. 개개인의 행동이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나, 지금 우리가 이야기 하는 문제는 경제의 전기화나 주택의 단열처리 같은 정부 정책으로 풀어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방금 말씀드린 사업들은 대규모 기반시설 사업들이지 않습니까? 경제 기조에 달린 문제인 것이죠. 자, 이제 총체적 문제를 풀기 위해선 총체적 접근을 통해 총체적 행동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데 까지 이야기가 왔군요.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어떻게 가장 효과적인 총체적 행동을 만들어내느냐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총체적 행동을 구축하느냐의 문제겠죠. 저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번째로 혼란이 필요합니다. 그게 우리가 던져야 하는 첫번째 주사위입니다- 관심을 모으기 위함이죠. 이러한 선을 넘어서, 준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비준법의 영역으로 가야 합니다. 법을 어기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회에 혼란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인 즉슨 도시를 폐쇄시키고 벽에 낙서를 하며, 납세를 거부 하는 거죠, 이러한 행동들이 모두 총체적 비준법의 형태들인 것입니다.

문헌을 연구해보고 싶다면, 진 샤프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정부의 법을 어기는 투쟁을 통해 근원적 변화를 가져오는 방법을 200여가지 정도 연구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개개인이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많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점은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혼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혼란과 가장 가까운 개념이 바로 희생입니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바꿔야만 그들의 경제적 이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경제적, 물질적 존재가 아니며, 감성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스스로의 자유를 걸고 우리의 이익에 혼란을 준다면, 그러한 행동은 우리의 양심을 깨우기 마련이죠.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게 반응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반응하는 이들도 한날 한시에 각성하진 않겠죠. 하지만 자신의 믿음을 위해 고통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 특히 자신과 같은 편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그러한 행동에 동참할떄, 사람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 뜻이 제대로 전해졌는지 모르겠네요.

예를 들어 2011년의 이집트 혁명때, 타흐리르 광장에 10만명이 운집했습니다. 경찰이 머리를 때리고 끌고 나가며 진압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고통받았지만, 고통받은 이들의 친구, 친지, 그리고 문화권에 속해 있던 수십만명이 “이 모습을 지켜볼 수 만은 없다. 그들을 돕겠다.”고 마음먹고 거리로 나선 것입니다.

그 단계에서는, 이른바 역풍이라는 것이 생기는 거죠. 당신이 초래하는 혼란으로 인해 상대가 당신을 핍박할 때, 사람들은 거리에서 물러나는 대신 더 많이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한국에선 이러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규모 참여와 시민 불복종 운동의 사례 말입니다.

국가는 사람들이 사람들을 거리에서 해산시키려 하지만,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세 번째 문제는 존중이죠. 여기서 또 한 번 인간 심리의 기본적인 면을 이야기 해야겠네요. 바로 당신의 반대편에 선 사람을 모욕한다면, 그것이 맞는 말이라고 할 지라도, 그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대접에 화가 나 추후에도 당신을 돕지 않으리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이가 우릴 좋아해주고 존중해주길 원합니다. 그리고 이 점은 도덕적인 관점 못지 않게 실용적인 관점에서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들의 의견에 찬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언어에서 문명이라는 말이 지니는 의미를 기억해야 하죠. “우리가 거리로 나왔다” 고 이야기 한 순간, 그건 혼란이 됩니다. “우리는 감옥에 가도 좋다” 고 이야기 하면, 그건 희생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이 우리 의견에 동의하지 않음을 존중하다. 하지만 우린 이런 것을 원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존중입니다.

말씀드린 이러한 사항들이 한 데 뭉쳐 최적의 설계를 만듭니다. 물론 최적화 된 설계 같은 것이 없이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최적화 된 설계를 하더라도 성공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결국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이 이야기 하려는 바는 “이것이 최적화 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고려해야할 점이 또 있습니다, 바로 “무엇을 해야 하지”하고 혼자 생각하는 바를 어떻게 구체화 시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끔 하는 것이냐는 점이죠.

기본적으로 그렇게 하려면 총체적 혼란 유발을 기획하는 공동체들 간의 소통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 해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많은 학자들은 이 부분을 쉽게 잊어버리곤 합니다. 올바른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 거죠. 물론 아이디어를 잘 내야겠죠.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 혹은 아이디어 그 자체는 정치적 변화를 실제로 이뤄내는 데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사회 속으로, 공동체 속으로 나아가 사람들과 만나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 해야 합니다. 또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사람들이 스스로 이 상태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행동의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변화가 없이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물려줄 세상도 없을 것이란 깨달음에 사람들이 눈물을 보일 때, 아직 무언가 할 수 있는게 남아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는 것입니다.

무언가 할 수 있는 것, 그건 바로 혼란을 유발하는 행동에 참여하는 것, 희생하는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할 지가 명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두 번은 시위에 참여할 것이며, 길을 막아서고, 난리를 피울 것이다 처럼요. 그 다음엔 다시 지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활동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죠.

결국 동원과 행동이라는 두 가지 방법 사이에 상호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동원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냥 행동만 한다면, 사람들을 동원할 수 없게 되겠죠. 사람들을 동원하는데에만 그치고 행동은 없다고, 사람들은 지루해 할 것이고 용기도 잃겠죠. 결국은 운동을 떠날 것입니다. 물론 더 자세한 사항들이 있겠지만, 말씀드린 것들이 가장 기초적인 부분들입니다.

Emanuel Pastreich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젋은 이들에 대해 이야기 하셨는데, 분명히 젋은 사람들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울이나 뉴욕에선 젋은이들이 나서서 “학교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계속하는 한 학교에 가지 않겠다” 고 하지 않으니까요.

전 젊은이들이 그런 요구를 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교수님께선 이렇게 길을 막고 상업을 방해하는 행동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그들이 “학교에 가는 것이 양심에 찔린다, 비닐포장 샌드위치를 사는 것이 양심에 걸린다, 운전을 하거나 비행기를 타는 것이 양심에 찔려 그럴수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Roger Hallam : 음, 일단 지금의 비관주의와 [기득권의] 권력 탈취를 정치적 무능과 연결짓진 말아야겠습니다.

정치적인 변화는 지난 200년간 많이 일어났습니다. 어렵긴 해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조금 더 정교한 시각일 것입니다.  그런 일이 쉽다고 말하는 건 물론 순진한 소리입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소리는 사회학적으로 틀린 주장입니다. 결국 문제는 어떻게 정치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사람들을 동원할 확률을 최대화 하느냐가 됩니다.

이를 테면, 교수님은 한국에 계시고, “다음 단계로 넘어 가려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계시죠.

결국 이런 운동은 단계적인 절차입니다. 그리고 기초적인 원칙들이 있죠. 가장 기초적인 원칙은 행동과 동원의 사이를 오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원칙은 가진 것부터 시작해서 운동을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시위에 나가 금요일 하루를 보내는 것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이룰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요.

아이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맨 땅에서 바로 혁명을 일굴 수는 없습니다. 분석을 시작하는 현명한 방법 또한 아닙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 교수님이나 이 영상을 보는 다른 분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백지 한 장을 펼쳐놓고 가지고 있는 자원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하라는 겁니다. 하루에 24시간이 있고, 어느정도의 돈이 있고, 얼마만큼의 노력을 해야 생활이 유지 되겠죠, 그만큼을 제외하고 가용한 자원이 어느정도나 되는지 확인해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당장 내일 근무하시는 학교에서 기후 사태에 대한 공청회를 열기로 결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취할 수 있는 행동의 목록을 소개해 주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전세계적인 금요 시위에 대한 참여도 있을 수 있겠죠. 그럼 소셜 미디어 상에서, 한국판 금요 시위와 공감대를 같이하는 수백명의 지지자를 확보하게 되는 겁니다.

이 또한 진전이지만, 우리는 그것만으로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알죠.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을 동원하는 단계입니다. 4개월~5개월 간 영국에서 우리가 처했던 상황과 비슷하죠. 지난 1월 활동가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지금 교수님이 한 말씀을 그대로 했죠. “요즘들어 아이들이 일선에 나서고 있어요. 버밍햄에서 수십명, 맨체스터에서 50여명, 그리고 런던에서 200~300명 정도의 아이들이 금요 시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반응이 별로인 것 같아요” 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정말 잘 된 일이네요,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죠” 라고요.

그 다음 단계는 모든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 성명을 발표하는 날짜 하나를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2월 15일로 날짜를 잡았고, 영국의 도시 네다섯 군데에서 많은 사람을 동원할 수 있도록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소식을 퍼뜨렸습니다. 우리는 3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참여할 줄 알았습니다만, 실제로 5,000여명이 나타났어요. 한 단계 나아간 겁니다.

그 다음 단계는 그 자리에 모인 아이들에게 금요 시위에 참가하는 것은 정말 놀랄만한 일이지만, 그 시위 하나  때문에 엘리트 기득권들이 하던 일을 바꾸진 않을 거란 이야길 해 주는 겁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야 해요. 그래서 지금 우리 사무실엔 시민 불복종을 이어나갈 서른 명 정도의 청년들이 함께 있습니다. 런던의 젊은이 2~3천명이 길을 막아서고 런던을 며칠간 마비시키는 것도 가능한 일인 거죠.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체제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본 게임에 돌입한 겁니다.

우리가 50% 가량 왔다고 봅니다. 이제 런던을 열흘간 봉쇄해 줄 20,000여명의 젊은이들이 필요합니다. 이 정도라면 정부도 주택 단열 정책을 고려하기 시작하겠죠. 제 말씀이 이해 되시나요? 어떤 식으로 점차 나아가는지?

Emanuel Pastreich :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저같이 순진한 사람들이 보기엔, 젊은 학생들이 단호하게 나서서 “단열처리를 할 때 까지 학교에 나가지 않겠다”는 식의 선언을 하는 게 나아 보입니다.

Roger Hallam : 우리가 사회에 가하는 혼란의 형태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효과가 있다면 형태는 상관 없습니다. 기준은 그거 하나죠. 말씀드린 것 외에도 여러가지 다른 방법들이 있습니다. 진 샤프가 “사회적 권력과 정치적 자유(Social Power and Political Freedom)”에 쓴 대로, 이런 방법에는 200여 가지가 있습니다. 단식 농성을 할 수도, 등교거부를 할 수도, 납세거부를 할 수도 있고, 불매운동을 벌일수도 있죠. 여러가지 접근법이 있습니다.

요점은 이른 바 “임계 질량”을 확보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런 절차가 이 메커니즘을 효과적으로 만들어줍니다. 결국 머리수가 중요한 겁니다. 학생 다섯 명이 등교 거부를 하기로 한다면 그것대로 의미있는 일이지만, 효과적이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학생 2만 혹은 3만 명이 예를 들어 한 달 가량 학교를 가지 않고 주택 단열처리를 정부에 요구한다면 어느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를 모으려면 여섯달에서 아홉달 정도가 걸리겠죠. 지금 이 대화부터 시작해서요.

당장 내일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5년씩 걸릴 일도 아닙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가 분석을 진행할 때 지나치게 큰 기대를 품었다 나중에 씁쓸해 할 필요도, 너무 시니컬해 질 필요도 없는 겁니다.

우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계획을 짜야 합니다. 그렇기에 여러분과 이 영상을 보는 모든분들께 계획을 만들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계획의 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현지에 계신 분들이 현지의 사정, 혹은 잠재력에 대해선 더 잘 아실테니까요.

그리고 활동가로 활동하는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건데, 여러분도 사실 그런 자세한 사항을 잘 모를 겁니다. 계획이란 기본적으로 시작점입니다. 한국의 어떤 학교에 들어가서 대뜸 “우리 같이 사회혼란을 초래합시다”라고 얘기했을 때 그들이 시위에 참가하는 대신 길을 막고 나서길 택한다면, [원하는 결과가 나왔으니] 어쨌든 별 상관 없는 것 아닌가요? 중요한 건 결정을 그들이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역할은 동원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니까요.

전술의 방법론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Emanuel Pastreich : 운동을 범세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대화는 정말 훌륭했지만, 중년의 학자 두 명이 1대1로 이야기 하는 것엔 분명 한계가 있을 겁니다. 담론을 시작하기에 좋은 환경이긴 하겠습니다만, 기후적 재앙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분명히 중국이 큰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운동이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나라들 – 그 나라들의 언어를 통해 그 나라의 국민들 사이에 자리 잡아야 할 것이라고요. 전략적인 차원에서 어떤 행동이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 하시나요? 어떻게 진전해야 할 까요? 옥스포드대 교수들이 티타임을 가지는 것으론 분명 안되겠죠. 다음 단계로 어떻게 넘어가야 할까요?

Roger Hallam :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이 대화에서 나왔던 것들 중 가장 중요한 질문이네요. 왜냐하면, 저와 교수님이 나누는 지금 이 순간부터 세상이 변화하기 시작하니까요.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는 순간부터 세상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시공간과 우주 속 단 한 순간이 중요한 겁니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바로 지금이야! 하고요.

자각이 있는 두 사람이 자각있는 태도로 스스로의 존속을 계획하는 이 놀라운 순간을 우리는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다음주면 전세계적으로 보도 될 대규모의 비폭력적 대치가 시작 됨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 행동으로 전세계인들 10만여명을 고무시킬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그 사람들이 희생적인 혼란초래 활동에 총체적인 수준으로 나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멸종을 막을 만큼의 급진적인 변화를 이뤄낼 수 있겠죠. 그 정도의 숫자라면 무언가 이루는 게 있지 않을까요?

제가 제안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국제적인 웹사이트에서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 그리고 그들이 한국 혹은 일본이나 대만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현재 교수님과 많은 사항을 조정해준는 조나단 같은 사람들이 현실적인 질문들에 대해선 연락을 취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이제 다음 단계입니다.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큰 집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약 백명 정도가 참여할만한 규모로요, 그리고 지금부터는 세부사항에 대해서 말씀을 좀 드리려고 합니다, 세부사항도 중요하니까요.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괜찮으시면 좋겠네요.

Emanuel Pastreich : 괜찮으시다면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지금 보여드리는 건 제가 만든 스티커입니다. 보이실 지 모르겠는데요. 영어로 되어있고, 한글로 된 것도 있습니다. “no  plastic”이라고 써 져 있죠, “기후변화, 침묵은 이제 그만” 이라는 문구도 있습니다. 공공 화장실이나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 붙이려고 합니다. 일을 도와 줄 친구 몇 명도 있고요. 저희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네요.

Roger Hallam : 정말 잘 된 일이이네요, 하지만 이해를 하셔야 할 게 –

Emanuel Pastreich : 말씀 하시죠.

Roger Hallam : 동원이란 상호작용의 과정이라는 겁니다, 조직과 행동같은 각기 다른 요소들을 한 데 묶는 최상의 상호작용이요. 교수님은 행동이 있음을 보여주셨지만, 조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조직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없다면 운동은 시작될 수 없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대로 시작되긴 어려울 겁니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앞으로 며칠간 우리가 할 일은 런던 한복판에서의 대규모, 그리고 총체적인 행동입니다. 이 행동으로 인해 한국에서 500명 혹은 1,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싶어 하게 될 겁니다.

Emanuel Pastreich : 정확합니다.

Roger Hallam : 행동으로 향하는 길이 없다면 이러한 변화는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을 대규모 참여로 유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를테면 시민 불복종 같은 일에 끌어들이려면, 한국 사람들이 한 데 모일 수 있는 온라인 광장이 필요합니다. 저 혹은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쪽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이 영상에서 이야기 하는 주제로 토론하고, 사회적인 운동의 정치적 성공을 위한 사회과학적 요소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겠죠. 그리고 온라인 광장에 섰던 사람들이 서울의 여러 도시들에서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이는 중국이나 일본에도 똑같이 적용 될 겁니다) 운동의 방향을 설정해나가겠죠. 그 다음 단계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행동을 취할 프로그램을 정해, 우리가 이미 영국에서 정립한 담론들을 이야기 하게 만드는 겁니다. 분명지역적인 상황과 맥락, 전통, 그리고 손에 잡히는 것들에 맞춰 조정해나가야 할 것들이 있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모든 담론은 사람들이 기후 변화에 대한 진실을, 사회 과학에 대한 진실을 다뤄야 할 겁니다. 시민의 불복종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은 비상상황에 처한 사회를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라는 진실 말입니다.

세번째로, 사람들에게 행동으로 향하는 길을 제시할 때, 참여 방식은 가두 점거 농성이 되거나 등교거부가 될 수도 있겠죠, 많은 학교에서 동시에 이런 운동이 일어난다면 효과가 있겠죠.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선 우리가 조언을 해 줄 수도 있을 겁니다. 여하간 이런 행동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다뤄지고 한국의 언론으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면, 한국인들 또한 서명운동을 벌일 수 있겠죠.

그 다음,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토론을 나눌 또 하나의 인터넷 광장이 생기고, 또 그들이 대면접촉을 하며, 대면접촉을 한 사람들은 다시 총체적인 행동을 취하겠죠. 이 과정이 반복되는 겁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그림이 보이시나요? 이건 상승나선이고, 한 번의 선순환을 이루는 게 중요한 겁니다. 우리가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의 기본적인 요점은 바로 이 과정을 이해하는 것에 있습니다.

서울 곳곳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하나의 생태계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나요? 스티커를 붙이는 행위로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은 들 수 있겠죠, 물론 교수님이 하신 일을 폄하하는 게 아닙니다. 환상적인 아이디어임엔 틀림없으니까요. 저도 런던에서 스티커를 붙이고 다닙니다. 요점은 사회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사람들이 그 안에서 모이게 하고, 총체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을 시스템 안으로 편입시켜 더욱 큰 도전을 해 나가도록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교수님이 이해하셔야 하는 게 있습니다, 인류 존속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이 과정들이 모두 선형으로 이루질 순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문제를 풀어내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아이들이 죽음으로 내몰릴 것임을 사람들이 깨닫는 순간, 수십만명이 서울의 거리로 뛰쳐나올 겁니다. 그건 제가 보장해드립니다.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Emanuel Pastreich : 그 메시지를 모두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요.

Roger Hallam : 맞습니다. 결국 그 점을 극대화 하는 겁니다. 물론 도덕적 의무가 우리를 재촉하기도 합니다, 만약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너무 오랜 사간이 걸린다면 결국 해결 자체가 불가능할테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사회과학 법칙을 따를 도덕적 책무를 지고 있는 겁니다. 이 분야는 연구 된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안 되고, 연구가 이루어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이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제안하는 겁니다. 만약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면, 어쩌면 교수님이 이 영상통화를 말미에 이메일 주소를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행동으로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겠죠. 사람들이 저 혹은 교수님에게 연락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쪽에서 교수님과 잘 연락해 대규모 온라인 광장을 앞으로 2주 내로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의도는 그 정도 입니다.

Emanuel Pastreich : 로저, 오늘 시간을 내주시고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에 대해 이야기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영상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요, 전 세계의 동지들과 자신의 동네에서 접촉할 기회가 생겼으면, 그리고 시청자들 스스로도 하루 하루의 모든 순간 운동을 조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Roger Hallam : 예! 이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의 웹사이트가 있습니다. 국제 웹사이트이니 이 영상을 보는 분들도 접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은 임마누엘 교수님, 본인 웹사이트가 있으면 사람들이 교수님과 직접 연락할 수 있도록 주소를 공유하시는 것도 좋겠네요. 어느 방향이든지, 행동을 향한 길이 있습니다. 이 영상을 보시고 온라인에서 함께 모입시다. 물론 억지로 하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걸 할 권리가 있지만, 우리가 토론한 것들이 사회 변화를 빠르게 가져올 최선의 길임에 동의하신다면, 연대하고 행동해야죠. 정말 훌륭한 일이 아닐까요? 그러니 연대합시다. 그리고 정말로 감사합니다!

Emanuel Pastreich : 훌륭한 일이죠,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기분이 나쁠까봐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진실을 이야기 해야 해요.

Roger Hallam : 진실을 말하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답게 행동합시다.

   
 

Emanuel Pastreich : 감사합니다!

Roger Hallam :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고마워요.

[관련기사]

콩나물신문편집위원회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4516 경기도 부천시 수도로 69(삼정동, 담쟁이문화원 3층)  |  각종문의 : 032)672-7472  |  팩스 : 032)673-7474
등록번호 : 경기, 아50581  |   등록일 : 2013. 1. 18.  |  발행연월일 : 2014. 2.19. | 사업자등록번호 : 130-86-90224
발행인 겸 편집인 : 박상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재성
Copyright © 2019 콩나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