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지기가 읽은 만화책>

도서: 까대기. 글/그림: 이종철. 출판사: 보리

 

 

만화 미생에 본 것으로 기억한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것이 다르다.’라는 대사가 있다. 상황에 달라지면 기존의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한다. 조금 멋진 표현으로 기억하는 것은 칼 맑스의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말이다. 이 말을 붙잡고 여러 논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자신의 처지와 환경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서 있는 곳이 전혀 다른 분들이 선거철이 되면 낮은(?) 곳으로 환한 미소를 머금고, 또는 비장한 모습으로, 한 손에는 빗자루를 또 다른 손에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강림하시어 한바탕 사진을 찍으시고 올라가셔서 ‘내가 아노라. 그들의 상황과 처지를 밝히 보았노라. 오직 나만이 그들을 대변할 수 있다.’하기도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겨우 20-30분 스치듯 지나가서 이해될 인생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정치인들의 그런 ‘쇼’를 보면 그들이 타인의 삶을 가볍고 하찮게 여기는 것 같아 심히 불쾌하다.

  반면 이런 의문이 든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것이 다르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위치에 있는 분들을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사회가 유지될까? 아직까지 사회가 붕괴되지 않은 것을 보면 온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동일한 인간으로 느끼는 감정이 있고 공통분모로 양심과 상식을 갖고 있기에 오롯이는 아니라도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알아가려고 애쓴다면 충분히 교감을 나눌 수 있다.

 

  ‘까대기’는 작가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택배계’를 그린 만화다. 택배 회사에서 일하는 분들과 나는 서 있는 곳이 다르다. 나는 택배를 받는 입장이고 작가 이종철씨는 택배회사에서 일을 한다. 인터넷 쇼핑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택배를 기다리지만 사실 어떤 시스템으로 우리 집까지 오는지 잘 모른다. 사실 알 필요도 없었다. 그저 언론을 통해 일이 고된 만큼 수익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배달을 하면서 마음고생도 적잖다는 사실을 알고, 엘리베이터 없는 5층까지 택배를 가져다주는 분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말 한마디로 충분했다.

  그런데 어찌하다보니 반백년을 살았고 소위 ‘어른’이 됐다. 어른이 된다는 것, 성숙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식이 많아지는 것이라면 나이 듦에 따라 있던 지식도 사라지니 분명 지식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제적 부유함으로 따지면 미성년자 건물주들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하니 그것도 아니다. 진짜 성숙해지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비록 서 있는 곳이 달라도 비슷한 곳을 볼 수 있는 사람, 처지가 달라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어른이고 성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공감하고 이해하고 같이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이 어른이겠다. 나도 어른이 되고 싶다.
 
 만화 ‘까대기’. 까대기를 하시는 분들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이웃으로 살고 있다. 생각해보니 아는 동생도 ‘까대기’를 했었다. 여전히 까대기를 하는 친구도 있다. 이웃과 친구의사정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어른스러움이 까대기를 덮으며 한겹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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