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Night Train to Lisbon, 2013
요약 스위스, 포르투갈/ 로맨스, 멜로/ 2014.06.05/ 15세이상관람가/ 111분
감독 빌 어거스트 출연 제레미 아이언스, 멜라니 로랑, 잭 휴스턴, 마르티나 게덱

줄거리
한 권의 책, 한 장의 열차 티켓으로 시작된 마법 같은 여행

오랜 시간 고전문헌학을 강의 하며 새로울 게 없는 일상을 살아온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는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우연히 위험에 처한 낯선 여인을 구한다. 하지만 그녀는 비에 젖은 붉은 코트와 오래된 책 한 권, 15분 후 출발하는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레고리우스’는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끌림으로 의문의 여인과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잭 휴스턴)를 찾아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게 되는데…

 
2주전쯤 부천버스터미널 소풍CGV에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았다. 본 영화에 대한 대다수의 평가는 ‘권태로부터의 일탈’, ‘혁명속에서의 격정적이며 지적인 사랑’,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 리스본으로의 여행’ 그리고 ‘주인공 제레미 아이언스의 지적인 외모와 연기력’ 등의 이유로 한결같이 상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감상 후기는 전혀 상이하다. 솔직히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 즉, 배우와 연기(특히 원작과 다른 제레미 아이언스의 외모와 연기는 몰입을 심하게 방해했다), 엉성한 극적 구조(plot) 그리고 결정적으로 현 시기엔 이미 낧을대로 낧아빠진 혁명타령(이 부분은 이 땅에서 미완으로 이미 지나가 버린 민주주의혁명에 대한 나의 실망감에 기인한 바가 클 것이다) 등은 심한 결점이었다. 영화를 보고난 후 솔직히 내 삶이, 또한 영화 속 주인공들인 그들의 삶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이 남한 땅에서 넘쳐나던 8~90년대의 혁명과 그 주인공들의 사랑타령에도 질렸으니까.

영화 속의 시대상을 살피자면, 부르조아 정치평론가들이 포르투갈의 70년대 시대변화상을 ‘카네이션 혁명’ 운운하며 성공한 정치혁명으로 평가하는데 실제 포르투갈의 그것은 도무지 혁명이라고 얘기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당시의 포르투갈 독재자 살라자르에 대한 사후 평가는 남한의 박정희 사후 신드롬과 완전히 닮은꼴이고 소위 혁명 후에도 대내외적으로 오랜 기간 낮은 차원의 무수한 혼란이 있었다. 또한 격렬한 정치투쟁의 와중에 유명을 달리한 자들과 상처 입은 자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도덕적 원죄와 부채의식 그리고 배신의 이야기들 역시 80년대 말엽 어느 여류 시인의 평가처럼 ‘잔치가 끝난 후’의 쓸쓸함만으로 남아 있을 뿐더 이상 드라마틱한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과거를 회상할 때면 어김없이, 조각미남과 같은 외모에 독재권력에 부역하는 지배계급 출신의 의대생이었던 주인공 아마데우가 사후 단100권만 출판했다는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의 주요한 구절들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나름 진지해야 할(?) 이 영화의 리얼리즘적 주제의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몽환적 슈퍼리얼리즘으로 이끄는데 상당한 일조를 하고 있다.
-어느 장소에 간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 얼마나 짧은지는 상관없다-
-단지 꿈 같은 바람일까? 지금 내 모습이 아닌 완전히 다른 삶을 선택하길 원한다면-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다-
-여행을 떠나고 나서야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도 시작된다-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가 된다. (주인공 아마데우의 묘비명)-
한결같이 하나마나한 공허한 이야기들일뿐...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간명하게 표현하자면 통속적인 사랑과 인생의 덧없음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포르투갈의 부르조아 혁명의 역사가 남긴 상흔으로 왜곡되고 상처받은 4인의 젊은 인생들을 경유하면서 그들의 오랜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며 달리는 열차이다. 영화 연출 면에서 눈에 띄는 소품은 나래이션 주인공인 그레고리우스의 안경이다. 그의 안경은 안목이 늘 안경을 통하여 형성된다는 표시이자 안경테의 협애한 스케일로만 세상을 보는 단절된 그의 일상과 사고를 보여주는 장치다. 그러나 리스본 현지에서 그의 안경은 사고로 깨져버린다. 안경점에서 맞춘 새 안경은 그의 새로운 안목과 타자의 인생 즉 가보지 않은 새로운 인생의 길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역설적이게도 나는 남한의 격렬했던 80년대 정치투쟁을 겪어보지 못한 이 땅의 많은 젊은 벗들에게 이 영화를 한번 감상해 보기를 추천한다. 이미 구조화되어버린 이땅의 부패와 시들어가는 민주주의에 아직 분노라는 감정이 남아 있다면! 혁명 속에서 싹트는 불꽃같은 낭만적 사랑을 갈구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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