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저항에서 추첨민주주의를 꿈꾼다

지난 6월 20일 영국 하원의 6인선출직위원회는 기후위기 '시민의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이 위원회는 그 이름과 같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하기 위한 모든 실행계획을 논의하고 결정할 것입니다. 기후위기 계획을 논의할 이 '시민의회' 구성은 멸종저항의 세 번째 요구사항이었습니다.

영국의회의 멋진 항복?
멸종저항은 지난 해 10월, 정부는 물론 정치인들과 그 의회에 기후위기의 해결을 맡겨 놓을 수 없다는 전제 위에서 출발했습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영국이나 하나 같이 탈정치화 하면서 이런저런 현안들을 정치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 하는 함정에 빠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이유가 선거로 대의자를 뽑지만 당선되고 나면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대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선거로 뽑힌 대의자들이 국민을 대표하기 보다는, 자신의 재선을 도모하는데 골몰하면서 선거민주주의의 불신을 초래한지 오래입니다.

▲ (사진출처) Extinction Rebellion (멸종저항) 홈페이지

초헌법적 요구 통하다
멸종저항은 이 헌법기관으로서의 선거의회에 기후위기문제를 맡기지 않기로 하고, 아예 제비뽑기 즉 추첨으로 대표자를 뽑는 추첨의회를 설계하여 멸종저항행동 안에 포함했습니다.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계획을 세우되 헌법기관인 현존 의회의 통제를 받지 말고 대신 추첨의회의 통제를 받아서 결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초헌법적 요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런 법률적 권위 조차 부여 받지 않은 일개 시위대가 영국정부를 향해 이런 초헌법적 요구를 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멸종저항의 이 요구를 의회가 주도적으로 수용한 것입니다.
영국 하원의 발표가 그것입니다. 영국 하원은 이미 지난 5월 1일 기후비상사태를 선포했는데요, 여기서 그들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2010년 기준 50%까지 감축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2025년까지 탄소배출 네트제로를 목표로 세우라는 멸종저항의 두 번째 요구에는 크게 미치지 못 하지만, 전 영국적 시스템의 변화는 말할 것 없고 경제•정치•사회적 전환이 요구되는 문제임에도 이 기후위기 대응계획의 논의를 시민의회에 넘긴 것입니다. 의회 스스로 그 권한과 책임을 포기하고 멸종저항이 설계한 시민의회로 하여금 기후위기를 해결할 엄청난 규모의 탄소배출 네트제로 계획 수립을 논의 결정하게 한 것입니다.
국가 수준의 의사결정구조에 가히 혁명적 수준의 균열을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혁명적 수준의 균열
그러나 멸종저항의 공동설립자 중 한 사람인 로져 할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권고하는 시민의회를 갖게 되었다"고. 이 시민의회에게 법률적 구속권 즉 입법권이 부여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추첨으로 뽑힌 시민의회가 의회를 대신해서 숙의결정하고 어떤 수정 없이 입법화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민의회의 입법권 문제는 두고 볼 문제입니다. 멸종저항은 의회를 굴복시켜 왔기 때문에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의회의 항복을 받아내기를 희망합니다.

시민의회의 입법권?
여하튼 올 가을 쯤이면 추첨에 의해 뽑힌 소우주로서의 시민의회가 구성될 것입니다. 진짜 보통사람들이 시민의회의 의원이 되어서 탄소배출감축에 대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학습 하면서 숙의과정을 거칠 것입니다.
기득권 세력과의 아무런 유착이 없어 보다 자유롭고 공정한 의사결정을 끌어 내리라 기대됩니다. 제비뽑기로 뽑힌 보통사람들의 수고로 이 지구가 다시 살아날지 모릅니다. 회복적 지구를 보면서 전 세계인들은 안도의 숨을 쉴지 모릅니다.

변화해야 산다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풀뿌리 민의가 권력화에서 멀어지고 제도화 기대가 무산되면서 우리도 시민의회나 민회, 추첨민주주의, 제비뽑기민주주의 등의 이름으로 논의가 이어져 왔습니다. 나아가 좀 거칠게 말한다면 기본소득제가 경제의 기본틀을, 탄소배출 제로가 경제와 환경의 근본 프레임을, 추첨민주주의가 정치의 오래된 상식을 근본적으로 뒤엎을 한 묶음의 개혁의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부천에서도 민회를 구성하기 위한 준비모임을 지난 3월 이래로 하고 있습니다. 민회 내지 추첨시민의회가 이제 시작하는 XRKOREA행동에 연동한다면 머잖아 우리 부천에서 풀뿌리형 버틈업 형태의 경제•환경•정치의 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 멸종저항 기후위기 실천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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