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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효대(孝臺)
이종헌 조합원  |  h2on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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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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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당 인문기행>

일주일 만에 화엄사를 다시 찾았다. 새벽같이 노고단에 오르느라 각황전과 동서 5층 석탑만 살짝 둘러보고 발걸음을 돌린 것이 못내 아쉬워서였다. 특히 이른바 효대(孝臺)라고 불리는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과 ‘석등(石燈)’의 존재를 알고 나서는 하루라도 빨리 화엄사를 다시 찾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국보 35호인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은 통일신라 전성기인 8C 중엽에 건립된 것으로,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석탑의 쌍벽을 이루는 걸작이다. 화엄사 창건자인 연기조사의 아름다운 ‘효(孝)’ 이야기로 더욱 유명한 이 탑은 2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1층 기단의 각 면에는 천인상(天人像)이 새겨져 있으며, 2층 기단은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네 마리의 사자가 탑신부를 떠받치고 있다. 이 사자들 사이에 합장하고 서있는 스님상이 곧 연기조사의 어머니이며, 바로 앞 석등 하단부에 탑을 향해 꿇어앉은 채 차를 공양하는 스님상은 연기조사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조선 성종 18년(1487), 남효온이 쓴 「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에 수록되어 있다.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과 석등. (사진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밥을 먹은 뒤에 내려와서 황둔사(黃芚寺)를 구경하였다. 절의 옛 이름은 화엄사(花嚴寺)로, 명승(名僧) 연기(緣起)가 창건한 것이다. 절의 양쪽은 모두 대나무 숲이었다. 절 뒤에 금당(金堂)이 있고, 금당 뒤에 탑전(塔殿)이 있는데, 전각이 몹시 밝고 산뜻하였다. 차 꽃과 큰 대나무와 석류나무와 감나무가 그 곁을 에워싸고 있었다. 넓은 들판을 내려다보니 긴 시내가 가로로 걸쳐 있는데, 그 아래가 웅연(熊淵)이다. 뜰 가운데에 석탑이 있었다. 탑의 네 모퉁이에 탑을 떠받치는 네 기둥이 있고, 또 부인(婦人)이 중간에 서서 정수리로 떠받치는 형상이 있다. 승려가 말하기를 “이것은 비구니가 된 연기의 어머니입니다.” 하였다. 그 앞에 또 작은 탑이 있었다. 탑의 네 모퉁이에 또한 탑을 떠받치는 네 기둥이 있고, 또한 남자가 중간에 서서 정수리로 떠받치며 탑을 떠받치고 있는 부인을 우러러 향하고 있는 형상이 있으니, 이것이 연기이다. 연기는 옛날 신라 사람으로, 그 어머니를 따라 이 산에 들어와서 절을 세웠다. 제자 천 명을 거느리고서 화두(話頭)를 정밀히 탐구하니, 선림(禪林)에서 조사(祖師)라고 불렀다.

아침 일찍 서울 남부터미널을 출발하여 화엄사에 닿으니 어느덧 정오가 다 된 시각이다. 일주일 전에 왔을 때는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커다란 싸리비를 들고 절 마당을 쓰는 스님들 모습만 보였는데 일요일 한낮의 화엄사는 관람객들 발길로 제법 붐빈다. 먼 길 달려오느라 배가 고팠던 탓에 먼저 공양간으로 달려가 한 끼 식사를 청하니 마음씨 좋은 보살님, 밥과 반찬통을 가리키며 직접 떠서 먹으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늘 주는 대로만 먹다가 막상 음식을 직접 떠서 먹으려니 생각보다 양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양을 너무 많이 하면 불가(佛家)에서 경계하는 탐욕을 스스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요, 그렇다고 너무 적게 하면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니, 많음과 적음, 탐욕과 무욕의 경계는 과연 어디쯤일지? 작은 밥그릇 하나에도 부처의 도(道)가 깃들어 있다.

   
   
보제루.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로 1636년 건립되었다. 용도는 법요식 때 승려나 불교신도들의 집회를 목적으로 지어진 강당건물이다

공양을 마친 후, 본격적인 경내 구경에 나섰다. 보제루(普濟樓)를 지나 대웅전 앞마당에 서니 화엄사 안에 또 하나의 화엄사가 있는 듯 지금까지와는 사뭇 그 느낌이 다르다. 일주문으로부터 보제루 이하까지의 당우가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 봄꽃과 같은 것이라면, 보제루 위의 적묵당, 대웅전, 각황전, 봉향각은 낙엽이 진 후의 나목(裸木)을 닮았다. 동서 두 5층 석탑 사이에 서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나도 잠시 한 그루의 나목이 되어본다.

   
   
화엄사 대웅전과 현판. 현판 글씨는 선조의 서자인 의창군 광이 썼다.

계단을 올라 대웅전 앞에 서니 낯익은 현판 글씨가 눈길을 끈다. 선조(宣祖)의 아들인 의창군 광(珖)의 글씨로 서울에 있는 조계사와 진관사의 대웅전 현판은 모두 이 글씨를 모각해 쓴 것이다. 몇 해 전 진관사에 갔다가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됐는데, 막상 원본 글씨를 대하고 보니 흡사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본 것처럼 감회가 새롭다. 찬찬히 현판을 들여다보니 말미에 “皇明崇禎九年歲舍丙子仲秋義昌君珖書(황명숭정구년세사병자의창군광서)”라는 글씨가 또렷하다. ‘숭정 9년 병자(丙子)’는 서기 1636년(인조 14)이요, ‘의창군 광’은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宣祖)의 서자이다. ‘세사(歲舍)’는 ‘세재(歲在)’. ‘세차(歲次)’와 같은 뜻으로 간지(干支)를 따라서 정한 해의 차례를 말한다. 화엄사 대웅전은 오늘날 화엄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636년 벽암 각성이 중건했다.

대웅전 오른쪽에 대웅전보다 더 큰 규모의 당우가 우뚝 서있으니 곧 국보 제67호인 각황전(覺皇殿)이다. 각황전의 본래 이름은 장육전이며 7~8C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장육금신(丈六金身, 석가여래의 모습만한 금색의 불상)을 안치하고 사방 벽에 화엄석경을 새겼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조선 숙종 28년(1702) 계파대사가 왕실의 후원을 받아 중건했다. 이 계파대사가 누구인가 하면 바로 조선 숙종 37년(1711), 승군들을 이끌고 북한산성의 축성을 지휘한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 성능(聖能)이다. 성능은 북한산성 축성 이후에도 약 30년간 성내에 있는 중흥사에 머물며 산성의 수비를 지휘하였으며 영조 21년(1745)에는 북한산성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담아 『북한지(北漢誌)』를 편찬하였다. 이 책은 앞뒤에 각각 북한도(北漢圖)와 성능의 발문이 붙어있으며 본문 내용은 도리(道里), 연혁(沿革), 산계(山谿), 성지(城池), 사실(事實), 관원(官員), 장교(將校, 궁전(宮殿),사찰(寺刹), 누관(樓觀), 교량(橋梁), 창름(倉廩), 정계(定界), 고적(古蹟) 등 14개 항목으로 구성 되어 있다.

   
화엄사 각황전. 앞면 7칸, 옆면 5칸 규모의 2층 집이며 건물 안쪽은 위·아래층이 트인 통층으로 3여래불상과 4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인데, 벽쪽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성능의 스승인 벽암 각성 또한 팔도도총섭으로 인조 때 남한산성 수축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니 화엄사와 팔도도총섭, 남한산성과 북한산성, 왕실과 각황전 등의 연결고리를 밝혀보는 것도 흥미 있는 연구가 될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각황전 중창 설화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계파선사가 각황전 중창 불사의 화주가 되었는데, 문수보살의 계시로 산문을 나선 후 처음 만난 거지노파에게 시주를 청한다. 거지노파는 계곡물에 몸을 던져 죽고 후에 숙종의 공주로 환생한다. 태어나면서부터 한쪽 손이 펴지지 않던 공주는 우연히 계파선사를 만나 손이 펴지게 되는데 거기에 ‘장육전’이라는 글씨가 씌어 있었다. 공주의 손이 펴진 것을 기뻐한 숙종은 계파선사를 만나 각황전 중창 소식을 듣게 되고 이에 중창 비용과 ‘각황전’이라는 편액을 하사한다.

   
각황전에서 만난 고양이. 숙종이 사랑했던 고양이 금묘(金猫) 이야기는 이하곤의 『두타초』, 김시민의 『동포집』, 이익의 『성호사설』 등에 실려 있다.

각황전을 둘러본 후 다시 효대로 향했다. 적멸보궁이라고 쓰여 있는 입간판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서 보니 황금빛 고양이 한 마리가 각황전 뒤꼍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각황전이 숙종과 관련된 건물이어서인지 문득 숙종이 사랑했던 고양이 ‘금묘(金猫)’ 이야기가 뇌리를 스친다. 궁궐에서 임금의 고기를 훔쳐 먹은 죄로 절간에 유배된 금묘는 숙종의 죽음을 알고는 식음을 전폐한 채 울부짖다 끝내 목숨을 잃고 만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고양이가 혹시 금묘의 환생은 아닐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오르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가 눈앞에 있다. 그러나 아뿔싸, 이게 웬 날벼락인가? 천만 뜻밖에도 효대는 한창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탑 높이보다 더 높은 가림막에 에워싸인 채 잠시 세상과 격리된 효대, 공중부양이라도 할 수 있으면 모를까? 한주일 내내 내 마음을 지배했던 효대의 친견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준비의 부족을 자책하며 효대를 등지고 서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멀리 구례 시가지와 주변의 너른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벌써 이십여 년 전 일인가 보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지리산을 찾은 적이 있었다. 둥근 보름달이 지리산 상봉으로 솟아오르던 그 밤은 마침 내 생일이었다. 그 밤 홀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끄적거렸던 시 한 수를 오랜만에 다시 읊조려본다.

頭流山下彩雲垂  지리산 자락에 황혼이 드리웠는데
忽出東峰桂一枝  문득 동쪽 봉우리 위로 계수나무 한 가지 떠오르네
慈母久前行彼世  어머님 오래 전에 저 세상으로 가셨는데
次兒生日尙知之  둘째 아들의 생일을 아직 기억하고 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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