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얼굴 글/그림: 연상호 출판사: 세미콜론

 

 

어떤 모임에 참여했는데 아이스브레이크를 진행하는 강사가 활동을 마무리 하면서 서로 칭찬을 하라고 하니 옆에 계신 분들이 애써 하실 말을 찾다가 “인상이 참 좋아요!” 하신다. 사실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인상이 좋다는 말은 종종 듣는다. 이건 복이고 행운이다. 가끔은 내면보다 훈훈하게 잘 포장된 ‘좋은 인상’의 덕을 보기도 한다. 한 일도 없이 한 수 먹고 들어갈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잘 생긴 얼굴보다는 인상 좋은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간다. 멋진 얼굴은 감탄으로 끝나지만, 좋은 인상은 상대로 하여금 더 알고 싶은 마음을 주고 근거 없는 신뢰감까지도 준다. 그래서 사기꾼치고 인상 나쁜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유명인들 가운데 얼굴이 변한 분들이 있다. 성형 수술을 받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예전의 인상보다 고약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호감가지 않은 인상이었지만 갈수록 훈훈한 분위기로 변한 분들이 계신다. ‘인상’은 ‘얼굴’과 달리 타고나지 않고 만들어진다. ‘얼굴’은 신의 영역이다. 신의 영역에 참여할 수 없는 우리에게는 그저 복불복인 영역이다. 애초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부모님들께서 각 시대와 문화에 맞게 멋지고, 아름다운 얼굴로 낳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

  나는 부모도, 자신도,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얼굴’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타고난 얼굴에 우리의 책임, 역할은 1%도 없다. 그러니 누군가의 ‘얼굴’, 심지어 자신의 얼굴에 대해서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 없다. 그 누가, 무슨 자격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만약 누군가의 ‘외모’를 평가한다면 그는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죄를 짓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인상’은 다르다. 인상은 단순한 외모가 아니다. 마음과 성품의 발현이고 그 사람됨이다. ‘좋은 인상’을 타고나는 분도 있지만 많은 분들을 보건데 ‘인상’은 만들어지고 빚어지는 것 같다. 더구나 저절로 선하게 빚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인상’은 그들이 무엇을 꿈꾸는가에 의해 빚어진다는 생각한다. 아니다. 솔직히 좋은 인상과 나쁜 인상은 각자가 꿈꾸는 꿈처럼 만들어져 한다고 말하고 싶다. 타인을 도구나 수단으로만 보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인상과 이웃을 공존과 공생의 길벗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빚어내는 인상은 다르면 좋겠다.

  영화 ‘부산행’으로 잘 알려진 연상호 작가의 작품 ‘얼굴’은 연작가의 그래픽노블 첫 작품이다. ‘일종의 오해야... 우리처럼 안 보이는 사람일수록 눈 멀쩡한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볼까 하는 고민을 남들의 배로 한단 말이지’ 라는 대사로 첫 장을 시작한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역설적 대사를 보며 묘하게 만화에 빠져든다. 그리고 작가는 ‘얼굴’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쯤 앞이 안 보이는 사람도, 보이는 사람도 보지 못하는 그 무엇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책이 아니라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를 봤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의 얼굴을, 아니 당신을 진정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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