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매일같이 하는 여러 활동 중의 하나에 걷기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거의 제한 없이 아무 때나 허용되는 평범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인 거죠. 제 경우이긴 하지만 걸을 때만큼은 어디에도 불편한 데가 없습니다. 온 몸의 부분들이 편해서 자유롭고 유연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도 걸을 때 보다 더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요즘 느끼는 건데 잠자리에서 일어나 나올 때의 몸놀림이 가장 불편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허리가 뻣뻣해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잠자는 시간이 허리에겐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는 뜻일까요? 가장 완벽한 휴식이어야 할 잠이 몸에 오히려 부담을 준다니, 그렇다고 잠을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나이 탓인가 싶으면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휴식도 힘든 거라면 회복을 추스릴 방법이 없을테니요. 일어나서 조금 움직이고 오이둥치에 물 호스를 대주고 밥상도 들고 나면 금방 부드러워지긴 합니다만 이 허리와 잠의 비밀은 끝내 풀리질 않습니다.

 

걸을 때만큼 우리 몸의 모든 부분을 고르게 쓰는 움직임도 없습니다.

팔과 손은 물론이고 발과 발가락이며 다리와 엉덩이와 어깨, 그리고 허리가 걷는 일에 협력하기 마련입니다. 가는 길에 위험이라도 있을까 싶어 눈은 살펴야 하고, 귀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걷는 속도에 맞추어 호흡이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하느라 숨쉬기 계통도 적당히 분주합니다. 그리고 이 때만큼은 몸 안의 장기들도 어느 때보다 편한 제 위치에서 보행 리듬에 맞추어 조금씩 출렁거려도 될만큼 자기 몫의 공간을 확보하기 마련입니다. 모든 장기가 협력적이기도 하고 독립적이기도 한 셈이죠. 그래서 걷고 있을 때만큼 온 몸과 마음이 편한 때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때로는 걸을 수 없기도 합니다. 특히 몸이 불편할 때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걸을 수 없는 다른 경우는 대개 우리가 선택한 것입니다. 대개는 문명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기들을 이용할 때입니다. 이동해야 할 거리가 길거나 시간이 없어서 걷기보다 빠른 다른 이동수단을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직접 가지 않고도 가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기후 스트라이커로 유명해진 툰베리는 오는 12월 칠레에서 열리는 유엔기후회의에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아직 결정을 안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엄청난 탄소배출을 수반하는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될 다른 참여 방법을 찾고 있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 이를테면 영상연설 같은 거겠죠?

16살 어린이가 세계적인 유명 기관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음에도 어린이답지 않게 나와 가족과 이웃과 온 인류의 기후 안녕을 생각해서 비행기를 타고 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이런 고민만으로도 가장 실천적이고 강력한 멸종저항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반도에서만 일 년 동안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2017년 현재 7억톤을 넘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이 숫치가 멸종의 근거입니다. 이 배출량을 순제로로 하기 위해선 거의 모든 경제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의식의 전환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걷기가 온 몸을 쓰는 정신활동이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걷기는 단순한 이동활동에 그치지 않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 하나에도 눈길을 주면서 나를 둘러싼 바람도 햇빛도 한껏 받아들이고, 내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의식하고 값을 매겨 보는 정신활동 중의 하나입니다. 내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이 있다면 내 걷는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도 생각하면서 가장 평화롭고 넉넉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손가락끝에서도 힘을 빼고 바람을 받는 품으로 걸어 갑니다. 다른 생각들은 이 때만큼은 쉽니다. 몸을 많이 쓰는 정신, 정신을 편하게 하는 몸. 몸과 정신을 다 즐겁게 하는 걷기가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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