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시에 거주하고 있나? 이주민인가? 생활인인가?

 

 마을, 또는 마을 공동체 등을 이야기할 때, 예전의 시골 마을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안다. 도시에서 마을공동체를 지향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관계’의 문제이다. 지금의 도시의 특성, 현대 사회의 특성에서 ‘관계’를 어떻게 공동체로 풀어가 볼 것인가. 다른 표현으로는 ‘소속감’일 것이다. 도시에서 거주(居住)하고 있으나 생활(生活)하고 있지 못한 도시 거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소속감’이다. 직장과 가정 외에 제3의 만남이 필요하다. 집값, 교육문제, 이직 등의 여러 이유로 끊임없이 ‘이주민’으로 살아가기에 우리에겐 무엇보다 그 ‘소속감’이 떠나지 않을 이유를 주고, 지속가능한 좋은 도시를 가능케 하지 않을까.

 마을공동체는 무엇을 남겨야 하나?

 마을 또는 마을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많은 사업과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속도와 방향은 다를 수 있고, 여러 상황들로 결과는 예상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 그리고 진행되는 과정에서 무엇을 의도하고 있고, 지향하고 있는가. 우리는 질문해야한다. 최소한 ‘마을 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이는 사업 또는 프로그램이라면 말이다.

그 사업 또는 일이 마쳤을 때, 딱 하나가 남는다면 ‘사람’이어야 하고, 한 개가 더 남는다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어야 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발전할수록 도시 속에서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 공동체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함’을 만들어주는 힘이 될 것이다.

‘마을과 시민이 정치를 도구화하지 않으면 시민은 정치(인)의 도구가 되어버리고 만다.’

마을에서 이루는 공동체를 이야기한다면 작은 집단일 수 있다. 한 지역으로만 존재할 수도 있다. 작지만 작지 않은 모임, 지역에 존재하나 그 지역을 넘는 만남들이 존재해야한다. 작은 모임 안에서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늘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에 의해 지쳐가지 않나. 마을은 더 노련해져야 한다. 마을을 위해, 시민들의 생활을 위해 정치는 도구와 수단이 되어야한다. 정치를 혐오하는 순간, 정치를 분리하려는 순간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마을과 시민은 공무원과 정치인의 도구와 수단으로 소비되어지고 만다. 수많은 이슈들의 당사자인 마을과 시민, 우리는 함께 정치해야한다.

 권력은 마을에 있다. 권력은 시민에게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_헌법1조2항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은 정치인들에게 가는 것인가? 그래서 주권자는 정치인에게 무릎 꿇어야 하는가? 우리는 아니란거 알고 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권력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다. 국민이 모여 토론하고 의견을 모을 때, 정치인은 그 이야기를 듣고 실행하고, 법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한다. 동네마다 시민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시민의회’가 간절히 필요하다. ‘타운홀미팅’ 방식의 모임들이 동네마다 열려야한다. 정치인이 주관할 수도 있지만 마을 단위의 모임들에서 다양하게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부천 전체에 2-30명이 아니라 동네마다 2-30명이 모인다면 의미 있지 않을까? 권력이 마을에, 시민에게 있게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수 있을까. 권력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자.

 다시 시작하자.

 무엇인가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은 어떤 자격이나 사업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가 아니다. 지금의 마을에서 하고 있는 일들과 그것들의 연결에 있다. 안전한 도시를 위해 CCTV를 설치해야하고, 편리함을 위해 개발을 해야하겠지만, 무엇보다 필요한건 점과 점이 이어져 선을 이루고, 그 선과 선이 만나 ‘면’을 이루는 경험들을 ‘마을’에서 하는 것이다. 그것이 힘이고, 그것이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거주민들이 생활인이 되고, 이웃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수많은 문제들속에서 ‘도시 회복력’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웃의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보자.

엄기호는 그의 책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100만에 대한 열광 속에서 봤어야 하는 것은 내 옆에 선 이들의 '얼굴'이다. 민주주의를 만드는 협력은 내가 기꺼이 점이 되는 것에서 시작되고, 존엄은 옆에 선 이를 점이 아닌 동등한 목소리이자 얼굴로 기억하는데서 시작된다”, 나와 우리 모두에게 제안하고 싶다. 도시, 마을, 시민사회에서 옆에 있는 이의 얼굴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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