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시화공단을 중심으로

직업계(특성화 고등학교)는 현장실습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2016년부터 도제형 일학습병행제도의 도입으로 또 다른 형태의 현장실습도 운영되고 있다. 현장실습생들의 잇따른 죽음으로 현장실습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하고 있으며, 다양한 연구 결과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자들은 노동권의 사각지대에서 일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천시에 소재한 4개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확인할 수가 없다. 이에 경기도 안산시와 시흥시에 소재한 반월시화공단을 대상으로 진행된 실태조사 결과를 발췌하면서 현장실습생 출신 노동자들의 노동세계, ‘노동자로서의’ 경험, 다시 말해 현장실습생으로 ‘조기취업’한 노동자들이 어떤 기대와 꿈을 가지고 노동현장에 진입했는지, 노동현장에서 이들은 어떤 노동경험과 인식을 갖게 되었는지를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하려고 한다. ( 본 자료는 2018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환경 및 노동세계진입실태조사 자료집- 발간 전국금속노조, 전국불완전노동철폐연대, 현장실습대응회의 –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⑹ 노동경험을 통한 미래전망에 대하여
 
 노동세계 진입 기대의 때 이른 좌절
 현장실습, 조기취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기대는 현장실습의 시작과 함께 빠른 시일 내에 무너져버리는 경향이 있다. 취업기관과 업무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 없이 무방비상태로 나가게 되는 취업, 전공과 무관한 업무배치, 여기에 예상치 못했던 혹은 예상을 뛰어넘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최저임금에 고정된 저임금, 어린 미성년 실습생에 대한 사회적 무시와 차별 등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기대는 빠른 시일 내에 무너진다. 그 결과 대부분이 현장실습기간 중에 혹은 현장실습 종료와 동시에 노동현장을 떠나게 된다.

 왜 이른 실망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이 가는 업체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 없이 취업이 연결된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현장실습제도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지적했던 점은 취업 현장에 대한 사전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취업현장과 업체에 대한 충분한 검토나 사전정보가 부족하다보니 생각과 전혀 다른 노동현장을 접하면서 좌절하게 된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 참여한 많은 조기취업 노동자 들은 업체에서 자기 전공과 무관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공업계 고등학교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생산직으로 연결되어 일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열악한 노동조건, 위험한 작업환경
 조기취업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검토해보자. 이번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들의 현재(2018년) 월 임금 총액은 평균 169만원, 주당 노동시간은 무려 51.4시간에 달한다. 주 40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계산한 2018년 월 최저임금이 약 157만원임을 감안한다면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사실상 최저임금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51.4시간에 이르는 주당 노동시간을 감안한다면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경우도 다수일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간의 경우 현장실습생의 경우 관련법에 따라 하루 7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경우에 따라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 1시간 연장노동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법적 규정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현장실습표준협약서와 근로계약서에 기입된 것과 달리 회사 사정에 따라 노동시간이 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처럼 보인다.

 기숙사 : 무책임한 주거 공간
 타 지역에서 반월시화공단으로 오는 현장실습생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 회사가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생활을 한다. 그런데 기숙사라는 공간에 대해 회사가 그리 친절하진 못하다. 기대와 전혀 다른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상당수의 현장실습생들은 학교 졸업과 동시에 혹은 그 이전에 직장을 그만두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불안정한 조건에서 회사는 이들 현장실습생들에 대해 별도의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타지에서 온  현장실습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기숙사를 운영하긴 하지만, 그 환경에 대해 회사는 대체로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 기숙사는 타지에서 온 조기취업 노동자들이 애로사항으로 가장 많이 지적하는 것들 중의 하나이다. 심지어 이번 면접참여자 중에는 기숙사에서 한방에 16명이 거주하는 무지막지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근로기준법 위반
근로기준법 위반도 상당히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은 조기취업 노동자들의 근로계약서 미 작성 사례이다. 조사에 참여한 대부분의 조기취업 노동자들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상태였다. 처음 현장실습을 나왔을 때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지만, 졸업하고 현장실습생의 신분을 벗어난 상태에서 새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위험한 작업환경과 산재사고
 면접참여자들이 경험한 일터는 노동안전 확보를 위한 조치들이 미흡한 매우 유해하고 위험한 환경이었다. 기계소음, 높은 열과 습도, 미끄러운 바닥, 안전장비 없이 일하는 모습 등 위험한 환경... 이에 한 면접참여자는 ‘무서웠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작업장의 위험 또한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이번 조사에서 작업중 다친 경험에 대해 응답한 13명의 응답자 중에서 다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무려 9명에 달했다. 비용은 개인 비용으로 처리하거나 좀 큰 경우 공상으로 처리한다. 회사에서 비용처리가 너무 부담될 경우에 한해서만 산재로 처리된다.

 다쳤을 때는 대부분 간단하게 회사에서 치료하거나 병원을 다녀온 후 바로 일하는 패턴이 일반적이었다.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한 경우 회사로부터 미운털이 박혀 유무형의 막대한 불이익을 경험하기도 한다.

 어린, 실습생에 대한 차별
도제반의 경우 16~17세부터 산업체에 나간다. 고 3때 조기취업을 나가는 경우도 17~18세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노동세계에 들어선 만큼, 조기취업 노동자들의 연령대가 매우 낮고 사업장에서 거의 막내인 경우가 많다. 한편 학교라는 공간과 회사라는 공간의 조직문화가 확연히 다르다. 산업체는 당장 일할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훈련을 시키며 기다려주고, 실수하면서 경험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어리다는 이유로, 잘 모른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기도 한다.

  현재 일과 무관한 미래계획
 주목할 만한 사실은 조기취업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들이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는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지금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와 노동으로부터 탈출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물론 지금 자신의 일의 연장선에서 미래를 계획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는 절연한 상태로 미래를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현재로부터 탈출하는 미래를 꿈꾸기는 하지만 사실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현장실습을 왔다가 중도포기하고 돌아간 경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대학진학 준비를 하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또 나중에 결국 다시 공단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시화공단에서 혼자 거주하는 청년 노동자들에 대한 한 사례연구를 보면, 사례가 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정도까지 이런저런 아르바이트와 사업 등을 시도하다가 결국 20대 후반 이후에 제조업 공단으로 찾아오는 현실을 보고하고 있다.

⑺ 대안적 목소리의 부재: 침묵과 순응을 강요하는 제도
힘들고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부당한 대우를 경험하면서도 조기취업 노동자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자신에게 강요되는 상황에 맞설 수 있는 대안적 목소리를 내는 것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다. 친구나 동료들을 만나 자조 섞인 한탄을 하거나, 장기적으로 이곳을 떠나는 것을 꿈꾸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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