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안녕!”, “안녕하세요~” “응, 얘들아 안녕. 오랜만이야!”
 8월 26일 월요일 아침, 산학교에 오랜만에 아이들 목소리가 들립니다. 평소보다 훨씬 밝고 큰 목소리네요. 오늘은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하는 날입니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당연히 방학을 더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학을 마냥 슬퍼하지는 않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은 하나같이 다들 밝고 기운이 넘칩니다. 몇몇 아이들은 ‘개학해서 행복해.’라고 하기도 합니다. (참 감사하지요!) 길게는 한 달 넘게 못 본 얼굴들이라 반갑고 기쁜 마음이 흘러넘칩니다. 그런 이유로 개학날 아침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다들 신나게 방학 지낸 이야기를 나누며 왁자지껄하게 보냅니다.

 산학교 아이들도 그렇지만 산학교 교사들 역시 방학을 사랑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이십 몇 년 전, 제 나이가 한자리 수에 머물렀던 시절에는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먹고 자며, 학교에서 산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어리고 우스운 상상이지만, 어린 마음에 선생님들이 ‘학교에 지각하지 말고, 결석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선생님들은 학교를 너무너무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어린이들과 똑같이 방학을 기다린다는 걸 전혀 몰랐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선생님한테도 엄마아빠가 있다는 걸 알고 굉장히 놀라는 일과 비슷하지요?

 

 산학교의 방학기간은 다른 학교에 비해서 긴 편이지만, 교사들의 방학은 아이들과 똑같이 길지는 않습니다. 방학 다음 주와 개학 전주에 일주일씩 평가회의와 계획회의를 하기 때문입니다. 매 학기마다 우리가 학교에서 했던 일, 앞으로의 단기적인 계획과 장기적으로 이루어나가고 싶은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부족할 때도 있습니다. 이 긴긴 회의를 지나고 나야지만 드디어 방학이 찾아옵니다. 교사들마다 여행을 가거나,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러 가거나, 정말로 ‘쉼’을 하거나 등등 각자의 계획을 가지고 방학을 보냅니다.

  온전한 쉼이 가능하다는 것 말고도 교사들이 방학을 기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이 보내는 편지도 있습니다. 산학교에서 내려오는 전통적인 방학 숙제인 「교사에게 편지쓰기」 는 아이들의 자율성에 따라, 하고 싶은 아이들만 하면 되는 숙제입니다. (물론 반마다 필수 숙제로 정하기도 합니다.) 초등학생부터 스마트폰을 쓰는 시대에 우편으로 주고받는 편지라니, 정말 우아한 전통이지 않나요?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쓴 글씨가 주는 사랑스러움과 다정함은 직접 받아보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깊이가 있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은 대부분 편지를 보내지만 어느 정도 크고 난 이후-5학년 즈음부터는 아무래도 편지를 보내는 일이 드물어집니다. 귀찮기도 하고 뭐 이런저런 사정이 있겠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통합교사로 지내며 정해진 반이 없었던 저는 더욱이 아이들에게 편지를 받을 일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방학 때 아이들이 보낸 편지를 받으면 그 기쁨과 반가움은 참 뭐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큽니다. 특히 매년 빠지지 않고 편지를 보내주는 아이가 있다면 더욱 반가운 마음이 크지요.
 올해에는 2학년 남자아이 한 명과, 6학년이 된 여자 친구 한 명이 여름 방학에 저에게 편지를 한 통씩 보냈습니다. 2학년 남자 아이와는 1학기에 서로 아웅다웅하며 지낸지라, 방학 때 그림 선물까지 보내서 정말 놀랐지요. 방학기간 연수차 영국에 나가있던 도중에 택배가 도착하여, 잃어버리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했었습니다.

 6학년 친구는 저에게 매년 방학 때마다 편지를 보내줬던 유일한 아이입니다. 한 번쯤은 빠트릴 수도 있는데 한 번도 잊지 않고 보내주는 그 마음이 참 고맙지요. 이 친구 이야기를 조금 풀자면 입학할 때에는 맨 앞니 두 개가 쏙 빠져서, 웃는 얼굴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말괄량이였습니다. 신나게 웃는 만큼 울거나 힘들 때는 목 놓아서 펑펑 우는, 감정 표현이 참 확실하고 불같은 친구였지요. 얼굴에 항상 웃음이 떠나질 않는 타고난 장난꾸러기에 바깥에서 노는 것을 정말 좋아해서, 교실이나 책상에 앉아서 가만히 있는 걸 참 힘들어하기도 했지요. 저와는 그림을 같이 그리면서 많이 친해져서 그런지, 2학년 때 보내준 편지에는 꾹꾹 눌러쓴 글자와 함께,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예쁘게 그린 저의 그림이 같이 있었습니다. 매년 보내주는 편지에는 갈수록 내용이 늘어서 저는 방학 때 뭘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 하거나, 자기는 무얼 하고 지내는지 빼곡하게 써주어서, 직접 만나지 않아도 뭘 하는지 훤히 알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6학년이 되니 퍽 점잖아진 모습답게 편지 내용도 훨씬 어른스러워졌습니다.

 

 지난 6년간 모아두었던 편지를 다 읽어보니 아이와 함께 지냈던 순간순간이 스쳐지나갑니다. 그 때의 작고 귀여운 말괄량이가 언제 이렇게 컸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아쉽게도 내년에는 다른 학교로의 진학을 생각하고 있어서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 동안 저에게 보내준 고마운 마음과 사랑만큼은 변하지 않고 서로에게 그리움의 한 페이지로 남겠지요.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 번 고맙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이제 정말로 개학입니다. 산학교의 개학 첫 날에는 다같이 모여서 2학기에는 어떤 것이 달라지는지 이야기 나누고, 서로 지켜야 할 약속을 확인하는 “산회의”가 열립니다. 또 다음 주에는 추석잔치며, 9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있을 입학설명회까지, 앞으로 준비해야 할 중요하고 큰 일정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학교의 일정을 준비하면서 정말로 여름방학이 끝났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네요.

 

 마지막으로 홍보 하나만 하자면, 9월 28일 오후 3시에 산학교에서 신·편입 입학 설명회가 있습니다. 학교 교육과정에 대해서 나누고, 아이들과 실제로 하는 수업을 함께 할 예정입니다. 설명회 중에 아이 돌봄이 가능하니, 그동안 산학교 소식을 들으면서 궁금하거나 더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들은 꼭 오셔서 풍성한 이야기 나누어 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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